1968년 3월7일 金玩熙 박사와 함께 訪韓한 미국인 전자산업 전문가 일행은 9일 동안 국내 전자공업의 실상을 확인하며 상공부 등 관계기관 및 업체와 의견교환을 했다. 金박사는 3월13일, 이들과 함께 청와대를 예방하고 朴正熙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내 생각에 미국에 親한국적인 인사가 많아야 韓美 관계가 돈독해지고 미 국의 지원을 이끌어내 한국의 공업이 안정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朴대통 령은 특히 헐리 사장에게 大邱의 병참본부를 돌아보고 개선 방안을 건의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金박사가 5월 말까지 보고서를 작성하 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을 무렵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했다. 컬럼비 아 대학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흑인 거주지역 할렘街에서 소요가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학교 당국은 일몰 후와 휴일에는 학교 출입을 금지 시켰다.
그로부터 약 2주일 뒤인 4월18일 朴正熙 대통령과 존슨 美 대통령과의 頂上 회담이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리고 있었다. 金玩熙 박사는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는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던 것이다. 5월 초순이 되자 한국 총영사관에서 金玩熙 박사에게 朴대통령의 친서를 보 내왔다.
세로 줄이 그어진 두 장의 大統領 用紙에 朴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金玩熙 박사에게!
貴翰(귀한) 감사합니다. 하와이 방문은 많은 在美 교포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아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北美 本土에 계시는 교포들도 똑같이 환 영해 주시는 뜻을 잊지 않겠습니다. 덕택으로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4월20 일 귀국했습니다. 7월경에 귀국하신다니 또다시 相逢(상봉)의 機(기)를 苦待(고대)하면서-. 貴家庭에 萬福이 깃들기를 祝願합니다.
4월27일 朴正熙 拜>
『朴대통령으로부터 처음 받은 친서였어요. 봉투가 너무 초라해서 대통령이 보내온 서신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지만 내용엔 정감이 깊이 묻어 있더군요』金玩熙 박사는 그해 7월8일 귀국, 워커힐에 숙소를 정한 뒤 영어로 작성된 보고서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있었다. 7월15일, 대통령 비서실로부터 들어 오라는 연락이 왔다.
약 두 시간 동안 朴대통령은 金박사에게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사건 이후 미국의 움직임에 관해 상세하게 물어보는 등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리고는 『저녁에 金박사 환영회를 하려 하니 그때 우리 한 잔 합시다』라며 봉투 하나를 金박사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金박사, 오랜만에 가족과 같이 왔는데 아이들에게 선물이나 사 주시오』 봉투 안엔 100만원과 메모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날 저녁 金玩熙 박사는 다시 청와대로 들어갔다. 朴대통령은 불도 켜지 않은 컴컴한 집무실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었다. 金基衡(김기형) 과기처 장 관, 崔亨燮 KIST 소장, 申東植(신동식) 경제제2(과학담당) 수석비서관이 기 다리고 있었다.
金玩熙 박사는 朴대통령에게 과기처와 KIST 등의 중요성과 과학기술적 이해 와 안목 없이는 전자공업을 제대로 육성할 수 없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고 한다.
『전자공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첨단 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정책수립은 물론 지원도 어려운 분야입니다. 정책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리드해 가는 기술을 이해하고 그 진행방향을 짐작하여 정책에 충 분히 반영시켜야 하거든요. 그러지 않고서는 세계 시장에 발을 붙일 수가 없어요.
다행히 1960년대 말, 세계의 전자공업은 막 출발하려던 기차와 같았어요. 우리는 그 막차 맨 끝칸을 타려고 했던 겁니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기차 의 속도는 빨라졌고 지금은 제품이 시장에 나오면 3개월 뒤엔 다른 제품이 그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어요. 이런 판에 후진국들 이 제 아무리 흉내내며 따라오려 해도 불가능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우린 그때 참 운이 좋았던 거죠. 그런 면에서 朴正熙란 분을 대통령으로 만난 것은 한국민들에게 행운이었다고 봐요』
朴正熙 대통령의 환대 속에 청와대를 방문했던 金玩熙 박사는 그때까지 朴 대통령의 협조 요청에 결심을 굳히지 못했다고 한다. 金玩熙 박사의 결심이 선 것은 그날 회식이 끝난 뒤였다.
『그날 자리를 파하고 일어나 청와대를 떠나려는데 朴대통령이 현관까지 배 웅하러 나오셨어요. 우리들이 차에 탈 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심호흡 을 하시더군요. 그리고 차가 떠날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계셨습니다 .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朴대통령이 너무나 외로워 보였습니다. 말끝마다 가난한 한국을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朴正熙 대통령을 도와 드려야겠다고 그때 차중에서 결심했던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