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9월13일, 오전 10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서 金박사의 보고가 시 작됐다. 朴正熙 대통령, 朴忠勳 상공부 장관, 申範植 대변인, 韓準石 비서 관 등이 참석했다. 金박사는 생각보다 참석자가 적어 실망스런 마음으로 설 명을 시작했다고 한다.
두 시간 반 동안 보고를 진행하던 金玩熙 박사는 처음으로 朴正熙란 인물에 대해 호감이 갔다고 한다.
『朴대통령은 정말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차트에서 눈을 뗀 적도 없었습니 다. 교단에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왔지만 朴대통령만큼 집중해서 듣는 학 생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보고를 하면서 보니 다소 전문적인 내용까지도 朴대통령은 이해하는 듯했어요』
보고는 12시30분에 끝나고 金박사는 朴대통령과 식사를 함께 했다. 朴대통 령은 金玩熙 박사의 숟가락 위로 깻잎을 얹어주며 말했다.
『金박사, 이거 기억납니까?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金박사가 왔다니까 집사람이 준비한 모양이오』
金玩熙 박사의 회고.
『대통령의 식단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검소했어요. 肉類라고는 유일 하게 갈비찜이 전부였어요. 그 갈비찜도 朴대통령이 거의 다 내 밥 위로 올 려주곤 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朴대통령은 金玩熙 박사를 서재로 안내했다. 잠시 후 朴대통 령은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탁자 위에 놓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金박사, 미국 모토롤라社가 한국에서 이걸 만들겠다고 하면서 공장 부지 매입을 허가해 달랍니다』
탁자 위에 올려진 것은 작은 트랜지스터였다.
『요 쪼매난(조그마한) 것이 한 개 20∼30달러나 하고, 손가방 하나면 몇만 달러가 된다고 합디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면직물밖에 수출하지 못하니 …. 차로 한 곳간을 채워도 손가방 하나만큼도 못하니…. 내, 이래서 金박 사를 보자고 한 겁니다. 金박사, 우리나라도 전자공업을 육성하고 싶은데 도와주시오』
金玩熙 박사는 잠시 생각해 본 뒤 『저 혼자 힘으로는 벅차고 미국에 돌아 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朴대통령은 비용이 얼 마나 드냐고 물었다.
『어림잡아 20만 달러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일을 시작하려면 우선 10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작별인사를 하고 청와대를 나오려는데 朴대통령이 2000달러가 든 누런 봉투 를 金玩熙 박사에게 주었다. 이 액수는 당시 약 100만원에 해당하는 돈으로 미국을 왕복하는 항공료와 비슷했다. 1979년 10월26일 朴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매년 3∼4차례 한국을 드나들게 된 金玩熙 박사에게 朴대통령이 직 접 준 돈봉투엔 항상 이만큼의 액수가 들어 있었다.
이날 오후 2시쯤 청와대 현관에서 대통령과 작별 인사를 하려는데 난데없이 상공부 尹禎宇 계장이 나타났다. 朴대통령도 놀랐다. 尹계장은 차트를 들 고 金박사를 따라 청와대로 들어온 뒤 집무실 옆에 있는 대기실에 갇혀 있 다가 보고가 끝난 뒤에도 경호원들이 무서워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털어 놓았다. 꼬박 4시간 동안 대기실에 앉아 있었던 셈이다. 朴대통령도 그 말 을 듣고 껄껄 웃었다. 이날 저녁 라디오와 신문에서는 정부의 전자공업 육 성방침을 발표하고 있었다.
1967년 9월 말, 金박사가 미국에 돌아오니 상공부로부터 그에게 10만 달러 가 송금되어 있었다.
『가난한 한국 정부가 거액의 돈을 부친 것을 보니 그만큼 朴대통령이 전자 공업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재촉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밀린 업무를 처리한 뒤 본격적으로 보고서 구상을 하기 시작했지요』金박사가 세운 목표는 한국 실정에 맞는 「한국형」 전자공업. 그는 다른 나라의 성공사례를 알아보기 위해 미국 內 전문가들에게 조사 용역을 의뢰 하고 한국에 있는 KIST를 통해 전자공업에 관한 한국의 실정을 조사해 달라 고 용역을 주었다.
1968년 1월, 金玩熙 박사는 용역처로부터 보고받은 자료를 토대로 「전자공 업센터 설립 계획안-국가의 기초산업과 수출산업으로서의 전자공업 중점 육 성책의 근거」란 보고서를 작성했다.
金玩熙 박사가 다시 한국을 찾은 때는 1968년 3월7일, 중간보고를 위해서였 다. 이때 金박사는 컬럼비아 대학 공과대학장 헤네시 박사와 음향과 오디오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전기 및 건축학 교수인 해리스 박사, 시장조 사 전문업체인 체이스社의 체이스 회장, 방위산업체 하버드 인더스트리를 경영하는 국방전자공업 전문가 헐리 社長 등을 帶同(대동)하고 방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