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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日記 / 詩- 「건설하는 아침」
 정치 지도자의 人格과 思想을 탐색하는 데는 그 사람의 말과 글을 分析하는
 방법이 있다. 大衆을 의식하고 代筆者(대필자)를 동원하여 쓴 책들은 별무 소용이지만, 즉흥적인 대중연설·일기장·메모 및 편지 등은 정치적 大衆을 의식하지 않고 고독한 內面의 省察 과정을 거쳐 거의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의사소통의 수단이며, 그 사람의 가식없는 人格과 心中의 思想을 고스란히 기록한 증명서가 된다.
 
 故 朴正熙 대통령의 경우, 1979년 10월26일 사망하기 전까지 자신의 일기장 이나 메모를 통해 그 날의 感想이나 꼭 챙겨야 할 國政 事案들을 간간이 기 록해 남겨 놓았다. 月刊朝鮮은 1968년을 전후하여 故 朴正熙 대통령이 쓴 편지와 연설문 및 朴대통령의 장녀 朴槿惠 의원(한나라당 부총재)이 소장하 고 있는 아버지의 일기와 메모 중 일부를 입수하여 게재한다. 독자 여러분 과 함께 朴正熙라는 인물의 內面을 고찰하며 그의 人格과 思想을 탐색해 보자.
 
 대통령의 日記
 
 
 
 日記(일기)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란 점에서 인간의 가 장 은밀한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朴正熙(박정희)는 가로 14.8cm, 세 로 16.5cm 크기의 A4용지 절반보다 약간 작은 노트에 만년필로 일기를 쓰곤 했다. 朴대통령의 일기장을 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남겨 둔 일기 장은 노트 7~8권 분량으로 며칠에 한번씩 당시 상황이나 感想 혹은 메모를 적어둔 것이라고 한다. 1968년 12월1일 아침에는 한 편의 詩를 세 장에 걸 쳐 쓰고 있었다.
 
 
 
 詩- 「건설하는 아침」
 
 1968년은 북한의 對南도발이 절정에 달한 해였다. 1968년 1월21일에는 金新朝를 포함한 30여명이 청와대를 기습했고, 이틀 뒤엔 공해상에서 미 해군정 보함 푸에블로호가 납북되었다. 朴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을 대신해 對北 보 복을 하게 되길 기대했으나 미국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1968년 12월1일 일요일 아침에 쓴 것으로 보이는 이 詩는 「한 손엔 망치 잡고 한 손으로는 총을 든 채」 근대화와 자주국방의 길로 매진하던 당시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韻文(운문) 형식을 빌어 표현하기는 했지만, 서정적 인 詩心이 느껴지기 보다는 당시 불려지던 건전가요 가사처럼 건조하다.(日記1 참조) 일요일 아침, 함마소리,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젊은 군인들의 날카
 
 로운 눈동자 등을 朴대통령은 「巨創(거창)한 隊列」이라고 표현했다. 그리 고 이 「巨創한 隊列에 우리 다 같이 참여」하는 것이 「偉大한 나라, 偉大 한 歷史를 창조하는 보람」이라고 했다.
 
 네 구절을 연이어 읽어보면 당시 대한민국의 청사진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 목표는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고, 방법은 「부지런히 일 하는 것」이다.
 
 
 
 「5천년 만에 처음 보는 건설의 붐.
 쉬지 말고 쉬지 말고 앞으로 달리자.
 이 목숨 다하는 그 순간까지」
 
 이 구절을 세월이 흐른 지금 와서 읽어보면 그의 삶 전체를 압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가 쓴 한 구절, 한 구절은 단순히 문장으로서만 볼 때엔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 않는다. 현란한 修辭(수사)도 없고 현학적인 어휘도 없다. 단지 열심히 일하자는 다짐의 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글을 쓴 사람에 의해 역 사가 자신이 피력한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무미건조하던 문장들은 갑자기 생명을 갖기 시작하고 거대한 의미를 띠게 된다. 詩의 마지막 구절은 그의 소망과 다짐이 강조된 부분이다. 「먼 훗날에 슬기로운 조상이었다고 우리 후손들이 이야기할 수 있겠금. 위 대한 조상이었다고 자랑할 수 있겠금」
 
 
 
 1971年 1月1日
 
 1971년은 지금의 대통령인 金大中 당시 신민당 의원과 격돌하게 될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예정된 해였다.
 
 이날 아침 朴正熙는 창문을 열고 느낀 새해 아침의 감상을 추스려 일기장에 옮겨 놓았다. 그의 의식세계로 떠오른 주제들은 「조국의 중흥」 「중단없 는 전진」 「대약진」을 통해 「국토통일의 기반조성」을 염원하는 문장으 로 이어진다. 그리고 「민족적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용기와 분발」을 맹세 한다.(日記2 참조)
 
 그의 「용기와 분발」은 「새마을 운동」으로 본격화 된다. 「근면·자조· 협동」의 기치 아래 생활태도 혁신, 환경개선 및 소득증대를 통해 낙후된 농촌을 근대화시키기 위한 정부 주도의 지역사회 개발 운동은 全국가적 구 조조정이었던 셈이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 4월22일 朴正熙 대통령이 지방장관 회의에서 「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창, 동년 5월6일 새마을 운동 추진방안이 마련됨 으로써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1971년부터 1984년까지 새마을 운동 에 투입된 물량은 총 7조2000억원(연평균 5177억)으로 총액의 57%가 정부투 자, 11%가 주민부담, 나머지 32%는 민간단체 희사로 이루어졌다.
 
 隨想-우리나라의 季節-<1971.3.20>
 
 날씨 때문에 농사를 걱정하던 조선조 임금과 다를 바 없는 이 글은 朴대통 령이 겨울 날씨에 유독 민감함을 보여준다. 朴正熙가 육군 제 5사단장으로 재직하던 1956년 2월 말, 적설량이 3~6m에 달하는 폭설로 인해 부하 장병 59명이 사망하는 雪禍를 겪은 바 있었다. 3월20일자 일기 마지막 부분엔 한 줄을 그은 뒤 「3월24일 (水) 降雪」이란 메모를 추가하고 있다.(日記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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