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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편지
 朴正熙 대통령은 보통사람들보다 편지를 훨씬 많이 썼다. 전화 보급률과 거 의 무관할 만큼 그는 직접 쓴 편지를 여러 사람들에게 보냈다. 하루 24시간 을 쪼개어 그의 삶을 추적해 가면 언제 이렇게 자상한 편지를 일일이 써 보 냈을까 하는 기이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滄浪 선생」
 
 이 편지는 朴正熙 대통령이 1969년 7월18일 滄浪(창랑) 張澤相(장택상) 前 국무총리가 와병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쓴 위로의 편지이다. 장택상의 本家 이자 先親이 살았던 경북 칠곡군 북삼면 오태동은 朴正熙의 소년시절, 그의 仲兄 朴武熙(박무희)가 소작인으로서 자주 드나들기도 했었다. 소작인 집 안의 아들과 지주의 아들이 훗날 대통령과 前 국무총리로서 만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 한 통의 편지에선 소작인과 지주와의 계급적 갈등 같은 면모를 찾을 수 없다. 편지를 보낸 시점에서 朴正熙는 대통령이고 滄浪은 老정객에 불과했 지만 편지 내용은 오직 政界 大先輩의 건강을 염려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가 득하다. 대통령의 위로 편지를 받은 창랑은 그 해 8월1일 조용히 숨을 거두 었다.
 
 
 
 「鄭炯謨 畵伯」
 
 朴대통령이 보낸 이 편지의 수취인인 鄭炯謨(정형모) 화백은 1975년 8월28 일, 故 陸英修 여사의 초상화 작가로 뽑혀 청와대에서 朴대통령을 만났다. 그 해에 정형모 화백은 육영수 여사의 초상화를 사진만으로 크게 그려내는 데 성공, 청와대 거실에 그의 그림이 걸리게 되었다.
 
 첫번째 私信은 年賀狀 용지에 쓴 것이고, 그 다음 것은 메모지에 쓴 것인데 같은 날 같은 사람에게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써야 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 연하장은 그대로 연하장 봉투에 담겨 우편으로 발송됐고 메모지의 것은 봉투에 담겨 작은 선물과 함께 전달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朴대통령은 표현 을 달리해서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남을 배려하는 심정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만하다. 鄭炯謨 화백은 1979년 10월26일 朴대통 령이 서거하자 朴대통령의 影幀(영정)도 그리게 된다.
 
 
 
 「朴尙萬 先生님」
 
 이 두 통의 편지는 朴正熙 대통령이 구미보통학교 시절의 은사였던 朴尙萬 (박상만·1972년 작고) 선생(앞)과 그 가족에게 보낸 편지(뒤)이다. 朴尙萬은 朴正熙의 중형 朴相熙(박상희)와 친구지간이었다. 박상희는 박상 만에게 『우리 정희 잘 좀 부탁한다』고 했고, 그런 부탁을 받은 박상만 선 생은 朴正熙를 눈여겨 보며 보살핀 듯하다.
 
 대통령이 된 朴正熙는 청와대로 은사를 초빙하기도 했고, 스승이 돌아가시 자 恩德碑를 세우기도 했다. 뒤의 편지는 은사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로서 이 편지와 함께 50만원의 돈이 부쳐졌다고 한다.
 
 편지 속의 족자는 박상만 선생의 미망인이 수를 놓은 것으로 청와대로 부친 것이었다. 이 족자를 받아 본 朴대통령은 거실에 걸어 두면서 기뻐했다고 한다. 朴대통령은 그때 받은 족자에 준하는 선물로서 돈을 부친 것이라고 박상만 선생의 가족들은 증언했다. 스승과 스승의 가족에게 정성을 다하는 대통령의 편지 속에는 사람의 향기가 머물고 있는 듯하다.
 
 
 
 權泰興 社長 貴下(편지 6)
 
 이 글(한글 토는 편집자가 단 것)은 1978년 2월2일, 朴正熙 대통령이 버스 안내양들의 방한복을 제작하던 주식회사 태흥 사장(권태흥씨)에게 보낸 감 사 편지이다. 당시 버스 안내양들의 방한 코트 제작을 의뢰받은 주식회사 태흥의 權泰興(권태흥) 사장은 방한 바지를 함께 제작, 무료로 납품했다. 이에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이 감사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 편지에서 朴대통령은 버스 안내양들을 「어린 나이에 가정형편이 불행하 여 상급학교에 진학도 못하고 직업전선에 나와서 고된 일을 하면서 국민들 에게 봉사하고 있는 이들 少女(소녀)」라고 썼다.
 
 버스 안내양들의 입장을 이보다 더 가슴깊이 사무치게 대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급 노동자의 삶을 대통령이 챙기는 이런 모습이 當代(당대)엔 국민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홀아비가 된 朴(박)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권력의 장막이 이를 막고 있었고 밖에서는 유신 철폐를 외치는 야당과 재야 인사 들의 외침에 가려져 있었다. 朴대통령이 權泰興 사장에게 버스 안내양들을 대신해서 감사를 표시하는 문장들마다 마치 대통령이 안내양을 친딸처럼 여기는 마음씨가 곳곳에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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