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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옛터
 金珍培 기자의 이 인터뷰는 한국언론사에 남을 만한 특종이 되었다. 석간인 동아일보 는 이날(1968년 5월30일) 오후에 호외를 발 행했다.
 金鍾泌은 오후 내내 집에 머물렀다. 2층 피 아노 앞에 앉아 「황성옛터」를 치기도 했 다. 이때 金澤壽, 楊淳稙, 芮春浩씨와 청와 대 趙始衡 정무수석비서관이 찾아와 사퇴를 만류했다. 金鍾泌은 그들에게 화를 냈다고 한다.
 
 
 『나를 꼼짝달싹 못하게 해놓고 무엇을 어 찌 하란 말인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만 물러나면 될 것 아닌가』
 
 金鍾泌은 미리 써둔 사퇴서를 趙始衡 정무 수석에게 주며 총재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 그는 또 공화당 탈당 신고서를 부여 지구 당에 등기우편으로 보내 그의 정치후퇴를 누구도 되돌려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당 시 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스스로 당적 을 이탈하거나 변경할 경우 의원직을 잃게 되어 있었다.
 
 芮春浩(공화당 사무총장 역임)는 언젠가 朴 대통령이 『종필이는 직접 이야기할 일을 남에게 시키는 버릇이 있다』라고 한 것이 문득 생각이 나서, 『의장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대통령 을 직접 만나뵙고 고충을 말씀하셔야 합니 다』라고 말했다. 金의장은 그 말을 일축하 고 趙始衡 비서관에게 사퇴서가 든 봉투를 건네 주었다.
 
 芮씨는 趙비서관을 따라 밖으로 나와 『이 봉투를 朴대통령께 전하지 말고 金의장이 괴로워하는 심정만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 』고 조언했다. 趙비서관은 청와대에 돌아 가서 대통령께 보고를 드리고 퇴근하는 대 로 예춘호와 만나 함께 의장에게 보고하자 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趙비서관은 최고회의 시절엔 反김종필계였 고 「5월동지회」에도 관계하였으나 그후 金의장을 이해하고 퍽 협조적인 인사였다. 저녁 6시경 趙비서관이 예춘호 집에 왔다. 두 사람은 金의장 집으로 갔다. 그때 벌써 소식을 듣고 온 주류의원들 수십 명이 좁 은 응접실을 메우고 있었다. 두 사람이 왔 다는 비서의 전갈을 받은 金의장이 2층에서 내려와 반겨 주었다.
 
 셋은 건넌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趙비서관 은, 오후 4시경 일선 사찰에서 돌아온 朴대 통령이 金의장이 취한 당무회의 전후의 상 황을 어떻게 보고받았는지 소상히 알고 있 더라고 전하면서 화를 내고 있는데다 令息 (영식) 志晩군이 감기로 열이 몹시 높아 신 경을 곤두세우고 있어 눈치만 살피다가 말 을 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세 사람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金의장 의 움직일 수 없는 결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 金鍾泌은 미국 평화봉사단을 위문하기 위하여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기자들이 동행했다.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이 끈덕지게 질문을 퍼부어도 金鍾泌은 『내 심정은 나만 알고 있다』면서 默默不答(묵묵부답).
 
 
 『나는 앞으로 한달 동안 입을 다물고 있을 테니 그동안 여러분들이 어떤 추측 기사를 쓰는지 두고볼 테야』
 
 그는 시종 창 밖을 응시하다가 손에 든 책 장을 넘기곤 했다. 그는 옆자리에서 자신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고 있던 아내 朴榮玉( 박영옥)씨에게는 『마치 남의 일같이 생각 하는군』이란 농담도 건넸다. 金의장은 부 산 수영비행장에 내린 뒤 동래관광 호텔에 들러 점심을 먹고 부산대학교로 달렸다. 이때 수영비행장에서 부산대학으로 오고 있 던 李厚洛(이후락) 비서실장 차와 만났다. 군용기로 급히 내려온 李실장은 차에서 내 려 金의장 차에 同乘(동승), 부산대학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곧장 총장실로 들어가 10여 분 간 요담했다.
 
 밀담을 나누고 나오면서 李실장은 『朴 대 통령이 金당의장의 탈당을 사전에 알지 못 하여 무척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전했다 』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金의장이 공직에서 사퇴하겠 다는 뜻이나 우리가 그의 번의를 권유하는 심정이나 모두 朴대통령을 위한다는 뜻에 서는 마찬가지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당의 장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둘러 수영비행장으로 향했다. 金鍾泌은 부산대학 강당에서 70분 간 연설 했다. 그가 들어올 때와 나갈 때 학생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연설을 마친 뒤 그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이의 해운대 컨트리 클럽 골프장으로 직행하여, 金澤壽 (김택수), 韓泰日(한태일) 의원 및 姜錫鎭 (강석진) 동명목재 사장과 함께 골프를 쳤 다. 하얀 골프화, 짙은 감색 바지를 입고 색안경을 낀 金鍾泌은 『공이 잘 맞는가』 란 기자들의 질문에 『항상 이렇다』고 답 했다.
 
 숙소인 극동호텔로 돌아온 金鍾泌은 경남지 역 출신 국회의원들과 저녁식사를 한 뒤 밤 10시부터는 尹天柱(윤천주) 의원과 바둑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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