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국가·조직·인간은 그 내면에 상반되는 두 가지 요소를 공유하되 그것들이 相剋하는 관계가 아닌 相生하는 관계로서 더 차원 높은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일종의 변증법적인 正-反-合의 승화이기도 하다. 오래 존속하면서 영화를 누리고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긴 세 국가 로마제국, 베니스, 신라는 엄격한 尙武정신과 유연한 文藝정신을 통합한 공통점이 있다. 朴正熙는 군인으로서의 강직함과 文人 같은 교양을 공유하고 있었다. 단순한 共有 차원이 아니라 相反되는 요소가 서로를 견제, 자극, 경쟁, 격려함으로써 제3의 단계로 진보하도록 하는 비결을 가진 것이 그였다.
1960년대 말 북한 金日成 정권의 도전에 직면한 朴正熙는 국가 건설과 국가 안보란 상반된 조건의 압박에 몰렸다. 다른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으나 朴正熙는 건설과 국방이란 상반된 조건을 다 살리면서 거대한 역사적 진전을 이루는 방향으로 대한민국을 끌고 간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거대한 전환, 즉 후진국으로부터 선진국을 향한 중진국으로, 경량급 국가에서 중화학 공업력을 지닌 重量級 국가로의 전환이 이뤄지는 것이고 남북간 힘의 逆轉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 위대한 逆轉과 轉禍爲福이 金日成의 도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뤄졌으니 국가의 운명에도 塞翁之馬가 있는 모양이다. 이런 전환의 시작엔 朴正熙의 남다른 안목이 있었다. 그는 공산주의의 침투를 막기 위해선 휴전선과 해안선을 봉쇄하는 것보다 빈곤층을 없애고 중화학 공업 기반을 건설하는 것이 근원적인 해결책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1965년 1월23일 「자유의 날에 즈음한 담화문」에서 이미 이런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우리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비단 밖으로부터의 침략만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보다 더 무서운 적이 우리 안에 있음을 명심해야 하겠다. 그 敵이란 다름 아닌 빈곤인 것이다. 우리 내부에 이 빈곤을 두고서 反共이나 勝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無用한 徒勞이며, 또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自招하였던가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공산주의의 不穩사상이 寄生하기 쉬운 빈곤을 추방하는 것 이상으로 더 효과적인 對共투쟁의 방법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일면 국방, 일면 건설이라는 이 두 가지 말은 똑 같은 뜻인 것이다. 국방 그 자체가 경제 건설이다. 왜냐 하면 국방을 잘 해서 북괴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해야 경제 건설이 되지 국가의 방위가 위험할 때에는 경제건설이 될 수 없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경제건설을 빨리 해서 모든 실력을 하루 속히 증강해야만 보다 더 국방의 바탕이 튼튼해지지, 경제건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방이라는 것도 될 수 없는 것이다(1970년 1월9일 기자회견에서)>
<그러기에 우리는 일하면서 싸워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싸우면서 일해야 한다(1968년 5월29일 고급 공무원에게 보내는 친서에서)>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는 우리의 현실이 벅찬 시련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시련은 과연 무엇을 위한 시련이며, 이것을 극복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겠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와 우리 후손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것이며, 번영과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1969년 6월25일 담화문에서)>
朴正熙가 1960년대 말의 위기를 70년대의 好機로 돌려세우는 데 있어서 취한 두 가지 가장 중요한 초치는 새마을 사업과 중화학 공업 건설이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경제건설의 참모장 역할을 했던 金正濂(김정렴)씨에 따르면 두 사업 모두 金日成의 赤化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考案(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즉, 새마을 사업(뒤에 가선 의료보험 실시)을 통해서 공산주의자가 침투할 수 있는 토양으로서의 빈곤을 없애고 중화학공업 건설을 통해서 자주 국방이 가능한 공업력을 갖추겠다는 계산이었다는 것이다. 金正濂씨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듯 경제적 목적을 두고 두 사업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국방을 염두에 두고 하다가 보니까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것이다. 朴대통령은 항상 국방에 대해 집무 시간의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했고, 다음이 경제였으며 정치는 우선 순위에서 아래 쪽이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