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熙의 통일 전략은 「평화를 통한 富國强兵」을 매개(또는 중간단계)로 한 한반도 전체의 자유화였다. 그는 통일이 외세의 힘을 빌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주체적 역량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66년 8·15기념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혹자는 국토의 양단이 他力에 의해 강요된 사실을 들어, 조국의 통일이 他力의 혜택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룩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주체성의 포기요 의타심의 소산인 것이다. 통일은 우리의 주체적 노력이 關鍵이다>
그는 1968년 8월15일 공화당 당원들에게 보내는 특별담화에서는 『통일은 결국 국내외적인 조건의 成熟과 더불어 이에 대비하는 우리의 주체적인 힘의 배양에 의해서만 이룩된다』고 강조했다.
<우리 자체의 內實을 키워야 되고 객관적인 여건이 성숙되어야 되고, 객관적인 여건이 성숙되었을 때 우리가 기민하게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 그 이전에는 통일이 안된다. 가장 좋은 기회야 8·15해방 때였을 것이다. 일본 군대 다 쫓고, 일본 사람 다 쫓아 통일 독립국가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기회였었는데도 우리가 못했다. 그때 우리는 內實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여건과 기회를 포착할 수가 없었다. 그런 좋은 기회를 놓쳤지만 앞으로 그런 기회가 나는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대비해서 우리는 지금부터 꾸준히 노력을 해나가야 되겠다. 하물며 衆口難防(중구난방)으로 무책임한 통일론을 함부로 떠들어서 우리 國論을 혼란하게 만든다든지 하는 행위는 통일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백해무익한 일이다(1972년 1월11일 기자회견에서)>
朴正熙는 「조국 근대화가 통일의 중간목표」이며(1969년 9월25일 저축의 날 치사) 근대화가 완성되면, 그 경제역량과 민주역량을 기반으로 한 남한이 통일전략 추진의 基地가 되어 북한을 자유민주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金日成 정권이 북한을 남한 혁명의 基地로 설정한 것과 대칭되는 전략 개념이었다.
통일의 중간 단계로서의 이런 근대화가 이뤄지려면 평화가 필요했다. 朴正熙의 사전에 나타난 평화통일이란 말은 평화를 통해서 번 국력으로써 남한이 주도하는 자유통일을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반도의 평화란 자유통일을 위해 꼭 필요한, 富國强兵을 위한 시간벌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말장난으로서의 평화가 아닌 전략 목표가 뚜렷한 평화였다.朴正熙는 1972년 1월11일의 기자회견에서 서독이 동독과 전쟁을 한 적도 없지만 평화를 확보하기 위하여 이중 삼중의 장치를 하고 있다는 점을 소개했다. <우리가 알기에는 유엔 동시 가입에 있어서 서독 정부는 20개의 조건을 지금 (동독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우리하고도 상당히 관계가 있고 흥미가 있는 조항, 즉 「무력 또는 위협의 상호포기」운운 하는 조항이 있다. 지금 동서독에서 전쟁 준비를 해가지고 서로 치겠다는 그런 상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력 사용 또는 위협의 상호 포기를 확실하게 다짐하자는 것이다. 이밖에 전쟁부인선언, 즉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동시에 하자는 것, 또는 쌍방이 평화공존을 저해하는 행위를 포기하자는 등 세 가지 조항이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다 뜻은 마찬가지이다. 무력 사용 안하고 폭력 사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표현을 바꾸어 가지고 두 번 세 번 못을 박아가면서 이런 조건이어야만 유엔에 같이 들어간다는 이야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