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厚洛씨의 증언을 해석해 보면 金日成의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과 金大中씨의 공화국 연방제 통일방안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는 것이다. 金日成이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통일방안과 다른 金大中씨의 통일방안을 이용하여 북한정권-대한민국 정권-대한민국 내 소위 민주인사의 3者회담을 제의, 분열작전으로 나올 가능성을 염려했다는 것이다.
이런 3者회담은 한반도의 정치세력 구도를 2(북한측) 對 1(대한민국)로 만드는 것이다. 金日成도 노동당 간부들에게 연방제 통일방안이 바로 그런 구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즉, 연방제 통일방안을 對南공작에 이용하여 남한 내에서 공산세력의 자유로운 활동을 확보해 주면 4000만 국민 가운데 2000만을 북한 편으로 돌려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 주민 2000만과 합쳐서 자기 편이 4000만, 대한민국 수호 세력이 2000만이 되니 자유총선거를 해도 공산당이 이길 자신이 있다는 계산이었다.
金大中 대통령의 한 측근은 『그동안 金 대통령이 사상적으로 의심을 받아가면서도 자신의 통일방안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북한측도 신뢰하여 정상 회담을 수락하게 된 것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이 말엔 진실이 있다. 金大中씨는 1980년 5월에 계엄당국에 연행되어 가 조사를 받을 때도 자신의 통일방안을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이 통일방안의 위험성을 지적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金大中 대통령의 소신임을 의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金大中씨는 자신의 통일방안이 金日成의 연방제안과 다른 점을 강조해 왔으나 비슷한 점이 많았다는 것은 지난 6월 평양회담에서 뒤늦게 입증되었다.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金大中씨의 「연합제」가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방향으로 통일을 의논해 간다는 중대한(또는 위험한) 합의를 했던 것이다. 이 합의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북한의 對南적화 전략의 핵심인 연방제案의 일부 타당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인정의 연장선상에서 남한 내의 親北세력이 지난 1년 간 대담한 활동을 전개하여 대한민국 수호 세력을 反통일세력이라고 공격해왔음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 되었다. 즉, 金日成의 통일방안 일부를 金大中 대통령이 받아들임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의 對南 적화 공작에 일정한 공간을 제공하는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金正日 정권과 국내의 親北 세력은 이제 線과 線의 연결이 아닌 面과 面의 접촉으로 확대, 연동되어 金正日 정권의 조종대로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이 성숙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햇볕정책은 벼랑에 몰린 金正日 정권을 경제적, 군사적으로 기사회생시키고 한국 내의 對北 안보 체제를 약화시키고 있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1970년대부터 지속되어온 金日成-金正日 정권과 金大中씨 사이의 이해와 공감 때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