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3월21일 청와대 경내 賞春齎(상춘재) 건물에서는 청와대 출입기자를 위한 만찬이 있었다. 청와대를 출입하다가 내근으로 돌아간 기자들도 초대되었다. 오후 5시 반쯤 朴槿惠씨와 함께 들어온 대통령은 기자들고 일일이 악수를 한 뒤 앉았다. 이날 식탁 위엔 김포 막걸리에 맥주를 섞은 술병이 놓여 있었다. 한 두 사발만 들이켜도 금방 酒氣가 오르는 술이었다. 기자들이 피운 담배로 연기가 자욱했다. 대통령은 “하루 3, 4갑을 피우던 담배를 최근 끊어가고 있다. 어제는 두 대를 피웠다”고 했다.
“나는 담배를 많이 피울 때에도 집에 오면 피우지 않았어요. 금연을 시작한 뒤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탤런트들이 담배를 멋 있게 피우고 있는 장면을 보면 또 유혹이 생긴단 말이야”
기자들은 하루 전 상춘재에서 車智澈 경호실장이 신임 여당 간부들과 국회 상임위원장들을 초청한 만찬을 주최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車 실장이 대통령 代役을 한 셈이었다.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의문을 풀어주었다.
“이 별채를 지은 뒤 집들이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마침 며칠 전 국회간부들이 새로 뽑혔으니 여당 신임간부들까지 합쳐서 (車 실장에게) ‘네가 한 잔 내라’고 얘기해서 어젯밤에 축하만찬이 있었지”
기자들은 대통령이 車 실장을 ‘네’라고 부르는 데 놀랐다. 대통령이 車智澈을 아들처럼 생각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朴 대통령은 신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金泳三 의원을 의식하는 발언을 이날 많이 했다. 화제가 두 달 전 무너진 이란의 팔레비 정권에 미치자 대통령은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삼이가 호메이니처럼 될 것으로 보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이야. 얼마 전 다녀간 홀브루크(미 국부차관보)도 한국의 정치는 한국이 알아서 할 일이고 자기로서는 말할 입장이 아니라고 했어. 그 사람은 심지어 ‘공산정권만 아니면 다 좋습니다’라고 말하더군”
朴 대통령은 金泳三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지명된 白斗鎭에 대한 취임반대 운동을 주도한 데 대해서 역정을 냈다.
“白 의장이 유정회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면 유정회 의원을 뽑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도 선출하는 만큼 나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뜻이 아닌가. 김영삼이가 유신체제를 뒤엎겠다고 나선다면 우리는 ‘예, 예’하고 손 놓고 있겠는가. 김영삼이가 지금까지 법을 위반한 것이 일곱 건이나 되는데 신민당 전당대회 전엔 절대로 안잡아 넣을 거야. 김영삼이가 신민당 총재로 당선되는 일은 없을 거야. 내가 물러난 뒤 김영삼이든 누구든 집권해서 국민이 행복하게 된다면 그때는 언론이 밀어주어도 좋아요. 언론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충정에서라면 얼마든지 나를 비판해도 좋아요”
대통령의 박치기
당시 白斗鎭 파동에서 야당 편을 가장 강하게 들었던 동아일보 청와대 출입 강성재 기자는 불안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방패삼아 대통령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대통령이 소리쳤다.
“동아일보 강 기자! 강 기자 어딨어?”
“예, 여기 있습니다”
“내가 물러가고 김영삼이가 잡으면 동아일보가 행복하게 될 것 같애! 동아일보가 그러면 안돼!”
강성재 기자는 가만 있다가는 대통령의 힐난을 수긍하는 것처럼 될 것 같았다.
“언론자유가 있어야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고, 아픈 곳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정권에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닙니까. 동아일보가 야당 얘기를 많이 쓴 것도, 정부에 대해서 비판적인 기사를 쓴 것도 사실이지만, 모두가 나라가 잘 되라는 뜻에서 한 만큼, 이 점 각하께서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40대 초반 기자의 대통령에 대한 말대꾸에 분위기가 딱딱해졌다. 다른 기자가 화제를 재빨리 돌렸다.
“각하, 이제 치안도 정착되었으니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하실 용의는 없으십니까”
대통령은 조금 전의 화제를 잊은 듯 금방 대답했다.
“통행금지를 해제해달라고? 좋아요. 내일부터 밤 10시로 앞당기지 뭐”
웃음이 터졌다. 대통령은 醉氣(취기)가 오르더니 자신이 말을 너무 헤프게 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모두 오프 더 레코드야. (옆자리에 있던 근혜씨를 향해서) 아버지가 다 털어놓기 전에 사인을 보내!”
만찬은 저녁 7시30분쯤 끝났다. 대통령이 정원으로 나가 배웅할 자세를 잡자 기자들이 일렬로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평소 대통령은 취해 있다가도 일어날 때는 금방 당당한 자세로 돌아가곤 했었는데 이날은 좀 흔들렸다. 朴 대통령과 악수할 차례가 강성재 기자에게 오자 林芳鉉 대변인이 “동아일보 강성재 기잡니다”라고 새삼 소개했다.
그 순간 다소 흔들리던 대통령은 중심을 잡고서 “뭐, 강기자라고?”하더니 자신의 머리로 姜 기자의 이마를 약하게 들이받았다. 姜 기자가 어리둥절하게 서 있고 朴 대통령은 머리를 만지면서 “얼얼한데”라고 했다. 대변인과 딸이 대통령을 양쪽에서 부축하여 청와대 본관쪽으로 모셨다. 姜 기자는 흐트러진 대통령의 뒷 모습을 바라보면서 뭔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10여일 후 청와대 기자단은 무슨 일로 상춘재 아래 잔디밭에서 대통령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21명의 출입기자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앉자 朴 대통령이 정색을 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듣자 하니 지난번에 내가 동아일보 姜 기자에게 실수를 한 모양인데 이 자리를 빌어 강 기자에게 정식으로 사과합니다”
강 기자는 “그 정도 가지고 공개 사과까지 하다니”하는 생각으로 坐不安席(좌불안석)이 되었다. 朴 대통령은 아랫사람들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에 철저했다. 이발 시간을 잡아두었다가 회의가 길어져 늦어지면 직접 이발소로 와서 이발사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 10분만 기다려주게”라고 말하고 갔다. 만취 상태에서 돌아와 아들 志晩군의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선 아들을 부른 뒤 “어제 밤에는 미안했다”고 사과하는 정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