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의 탄생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전화기를 드니 김재규의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셨습니까, 정 총장. 오늘 저녁 뭐 바쁜 일 있습니까?'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저도 별일이 없습니다. 그럼 오늘 우리 저녁이나 같이 하면서 조용히 시국이야기나 합시다.' '그렇게 합시다.'.
'궁정동… 전에 한번 와보셨지요… 알겠지요?' '압니다.'.
정승화 장군은 근 한 달 전에 김재규가 식사를 같이 하자고 연락 이 왔을때 선약이 있어 거절한 적이 있었다. 이날도 김종수 장군 송 별연을 취소하지 않았더라면 김재규와의 자리는 성사될 수가 없었다. 정 장군은 '그때 김재규의 목소리는 정중하고 평상 그대로였다'고 기억하면서 '나는 지금도 김재규가 나와 먼저 저녁 약속을 했고 그 직후에 대통령과 만찬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10·26사건의 미스터리 중 하나는 김재규가 정 총장에게 전화를 건 시각이 대통령과의 만찬이 있다는 연락을 경호실장으로부터 받은 뒤인가 그 전인가 하는 것이었다. 대통령과의 만찬이 있다는 연락을 받은뒤에 정승화 총장과 겹치기 약속을 했다면 이는 김재규의 살의 가 발동한 기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 쟁점에 종지부를 찍을 만한 자 료를 기자는 이번 취재에서 발견했다. 1979년10월29일 윤병서 의전 비서가 합수부에서 쓴 자필진술서는 자신이 4시40분(즉 대통령과 만 찬이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30분쯤 뒤)에 총장실로 전화를 걸어 김 부장에게 연결시켜주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화는 두 사람의 운명 뿐 아니라 이 나라의 진로를 바꾸어 놓는 중대한 인연을 만든다. 이 전화는 10·26에서 12·12사건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무대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날 밤 무대의 한 조연이 된 정보부 김정섭 제2차장보는 점심 때 조선비료 김덕엽 사장의 셋째 아들 결혼식장에 갔다가 감사원 엄 병길 감사위원과 재무부 조충훈 차관을 만나 신라호텔 일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국내 정치담당인 그는 남산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석간신문과 상황보고서를 훑어보았다. 오후 3시30분쯤 부장실에서 '보고할 것이 있으면 지금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김 차장보는 부장에게 '정운갑 신민당 총재권한 대행이 자기 체 제를 발족시키겠다는 발표를 했고 일본인 관광객이 한국인 접대부를 찔러죽였다'는 보고를 했다.
오후4시쯤 부장실을 나온 그는 4시30분에 시청 건너편에 있는 프 레지던트 호텔내 정보부 전용사무실 1720호실로 갔다. 이 방에서 신 민당 김 모 의원과 만나 당내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오후 5시쯤 보좌관 박영학이 들어와 '김 부장이 전화를 해달랍니다' 고 했다. 김 차장보는 대화를 중단하고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저녁6시30분까지 궁정동 사무실까지 오시오.'.
부장은 일방적으로 말하고는 이쪽의 이야기도 듣지 않고 끊어버 렸다.
김 차장보는 호텔 방에서 김 의원과 이야기를 마친 뒤 오후 5시 에 다시 궁정동 부장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윤병서 비서가 받았 다. 김차장보는 부장이 아까 전화로 저녁에 궁정동으로 오라는 것은 거기로 와서 업무보고를 하라는 뜻인 줄 알고는 '오늘 저녁에 친구 들과 선약이 있으니 지금 전화로 부장께 보고를 하겠다'고 했다. 김 부장에게 전화가 연결이 되었다. 김정섭 차장보는 신민당 김 의원과 나눈 대화를 설명하고 신민당 정운갑 대행 체제에 대한 전망을 보고 했다. 그러고는 '이상입니다'고 끝내려고 했더니 김 부장은 또 '저 녁 6시30분까지 이리로 오시오'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놓아버리는 것이었다.
궁정동 정보부 시설의 본관 2층에는 부장용 침실이 있었다. 그때 간치료를 받고 있었던 김 부장은 오후에는 여기서 한 시간쯤 낮잠을 자는 경우가 잦았다. 이날 정총장에게 전화를 건 뒤에 이 침실에서 한일에 대하여 김재규는 1979년11월8일에 작성한 자필진술조서에서 이렇게 썼다.
[금고에 보관하고 있던 32(밀리)구경 독일제 소형 권총을 꺼냈다. 실탄도 꺼내어 탄창에다가 일곱 발을 넣고 권총에 끼워 장전 점검을 해보았더니 이상이 없었다. 한 발을 장전하여 격발만 하면 발사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이 총을 언제라도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책장 상단 선반에 꽂혀 있는 '국제정보자료책' 뒤편에 숨겨두었다.].
이 권총의 내력은 오래이다. 김재규가 육군대학 부총장으로 있었 던 1960년 총장이던 이성가장군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이었다. 김재규 는 전역한 뒤 이 권총과 45구경 권총 두 자루를 주소지를 관할하는 서울 성북경찰서에 맡겨 두었다. 정보부장으로 취임한 이후인 1977 년에 경찰로부터 수령하여 금고에 넣어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장수행비서관 박흥주 대령이 1층 사무실에서 부장 친척들의 여 권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오후 5시쯤 윤 비서가 2층에서 내려오더니 '부장님이 조끼와 줄무늬 있는 양복을 보내라고 하신다'라고 했다. 박 대령은 부장공관으로 연락을 취했다. 이 바지에 특징이 하나 있 었다. 라이터를 넣는 호주머니 속의 호주머니를 유달리 크게 만든 양복이었다. 작은 권총이 들어갈 정도였다. 한 20분을 지나서 다시 인터폰을 받으니 부장이었다.
'좀 올라와.' '오늘 손님이 오시는데 식사 3인분을 준비해주게. 저녁 6시30분 에 손님들이 올 걸세.'.
오후 5시를 지나서 오늘 대행사의 관리책임자 박선호 의전과장은 직접 차를 운전하여 프라자 호텔 커피 숍에서 신재순을 만나 태우고 내자 호텔로 왔다. 당시 23세이던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3학년 신 재순은 광고모델로 일한 적도 있었다. 그 이틀 전 오후 약수동에 있 는 '대하'라는 살롱의 마담 숙경언니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 다음날 서교동에 있는 언니 집에 가서 만난 사람이 박선호였다. 박 과장은 이 자리에서 신양을 면접한 뒤에 내일, 즉 26일 오후 5시에 프라자호텔 커피 숍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박 과장이 예기치 않은 대통령과의 만찬에 대비하여 미리 약속을 해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박,신 두 사람은 내 자 호텔 커피 숍에서 심수봉이 나타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약 속시각보다 한 30분이 넘어 심양이 나타났다. 기타가 고장이 나서 늦었다는 것이었다.
무좀으로 고생하던 박흥주 대령은 오후에 좀 시간이 나자 부장 경호차를 타고 광화문 에스콰이어 양화점에 가서 검은 색 구두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이 구두는 이날 밤 곡절을 거치게 된다.( 계속 )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