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위해 과감하게 자기를 던져 버릴 수 있는 사람. 어떤 사람이 대통령의 자질이 있을까. 오래 전의 일이다. 나와 친한 메이저 신문의 정치부장이 이런 말을 했었다.

“농민 단체가 관광을 하다가 국회 구경을 왔는데 한 국회의원과 십분 동안 얘기하는 순간이 있었어. 그 의원은 고추값이 근당 얼마고 배추값이 어떻고 하면서 가격을 훤히 꿰뚫고 있는 거야. 짧은 순간에 농민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걸 봤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냐고 내가 나중에 물어봤더니 매일 경제신문을 따라가면서 공부한다는 거야. 노력이 대단한 것 같았어. 그 의원은 사람들하고 얘기를 할 때도 항상 메모를 하면서 머리에 익히는 모습이었어.”

능력 있는 대통령의 젊은 날의 모습이었다. 국정원장을 지낸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을 하고 IMF가 기금을 풀까 어떨까 생각하고 있을 때였어.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김대중이 사회주의자인가를 테스트해보려고 질문서를 만든 적이 있지. 질문받기 직전에 우리가 그 정보를 알아냈어. 김대중 대통령이 다급하게 쓴 참모들의 답변보다 훨씬 앞서가는 대답을 해서 클린턴이 다른 소리를 못하게 하는 걸 봤어. 그게 대통령의 능력이 아닐까. 김대중 대통령이 한번은 국정원장인 내게 ‘벤치마킹’이 뭐냐고 해서 간단히 설명해 드렸더니 다음번 연설에서 그 오백 배는 써먹는 거야. 김대중 대통령은 쉬지 않고 공부를 하고 그것들을 써먹는 걸 옆에서 봤어.”

현직 대통령의 모범생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 노태우 대통령이 공약을 적은 작은 수첩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하나하나 실행해 갈 때마다 줄을 쳐서 지우는 모습을 화면에서 본 기억이 있다. 국민에게 약속을 했으면 그걸 구체적으로 법을 만들고 집행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선거캠프에 있었던 한 국회의원한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대통령 선거에서 근본적인 화두는 경제 민주화였어. 그런데 내가 모시던 대통령 후보가 그 개념에 대한 공감이나 근본적 이해가 없는 것 같았어. 그냥 벼락치기 과외로 공부하고 남의 정책을 도용해 버린 셈이지. 그런 대통령 후보들도 많아. 정책을 진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하고 입만 까는 건 전혀 다른 거지. 대통령은 진짜를 뽑아야 하는 거야.”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읽고 그 해결에 노력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스스로 가난해 봤다.

팔십년대는 배고픈 걸 벗어나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기 때문에 민주화가 시대적 과제였다.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은 군사독재의 압박을 체험했다. 그리고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

이천이십오년 지금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통합과 행복이 아닐까. 리더십은 싸우는 게 아니라 테이블에서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통합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하려면 과감하게 자기를 던져 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당의 원내총무를 지낸 분이 내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노무현은 올인하는 성격이었어. 노무현이 대선후보일 때였어. 정몽준과 단일후보를 내기 위해 협상하고 싶은데 나보고 다리를 놔 달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먼저 한 마디 했지. 협상이라면 이쪽에서 대통령 후보를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지. 사실 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은 그걸 포기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그런데 노무현은 그거 당연한 게 아니냐는 거야. 의외였지. 자기로서는 승부수를 거는 건데 대단한 거지.”

지금 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행복이 아닐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안정된 직장을 가지게 해야 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해야 하고 빈부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내가 자라던 오육십년대의 가난은 참혹한 전쟁이 남기고 간 것이기 때문에 가난이 부끄럽거나 무능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가난했다. 그러나 지금은 부자 따로 가난한 사람 따로다. 그게 빵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아파서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정신적으로 성장해야 진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국민들의 영혼을 이끌 대통령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통령 후보들의 토론방송을 봤다. 정책은 뒷전이고 막말로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면서 물고 뜯고 있었다. 대통령 후보들의 영혼 중에 사탄의 아바타는 없는지 걱정이다. 대한민국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대통령을 하늘이 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