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으면 배신을 하느니 아부를 하겠다. 어제(4.27) 어느 언론 매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었다.《洪 “계엄 원인은 깐족댄 한동훈”…韓 “尹에 아부한 홍준표 책임”》‘어느 언론 매체’라고 말했으나 저 내용은 신문마다 다 실렸을 것이고, 홍준표는 앞서 한동훈을 일러 배신자라 말했었다. 세상도 대충 그렇게 알고들 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나 같으면 배신을 하느니 아부를 하겠다. 홍준표가 윤석열 전 대통령께 무슨 아부를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그의 아부에는 호오(好惡)가 없지만 한동훈의 배신에는 외면하고 만다.

아부가 무언가?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리는 것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알랑대는 것은 지극 정상이요 대구시장이 대통령께 아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못해 차라리 아름답다. 그걸 갖고 무슨 우세나 되는 듯이 “尹에 아부한 홍준표”라 말했는데 한동훈은 상관에게 잘 보이려 애쓴 적이 없단 말인가. 문재인 치하에서 박근혜를 벌주던 시기를 자기의 ‘화양연화’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던가.

‘아부’는 주관적인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 잘 보이려 노력하는 것을 아부로 볼 사람도 있고, 친절을 아부로 볼 사람도 있고, 순종을 아부로 보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아부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아부로써 얻은 권세나 이익을 나쁘게 사용할 때에 비로소 아부는 나쁜 것이자 부끄러운 것이 된다. 공자는 “아부 잘하기는 오뉴월 밭농사보다 힘들다.”고 했다. 아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한동훈의 ‘아부론’은 가치 전도다. 반면에 홍준표의 ‘배신론’은 이미 세상에 통용되고 있다.

거듭 말하거니와, 아부의 결과가 해롭게 됐을 때에나 아부가 나쁜 것이 된다. 결과가 좋다면 ‘아부’라는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만약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재에서 기각 판결을 받았다면 “尹에 아부한 홍준표”라는 말은 하지도 못할 것이다.

반면에 배신은 시(始)도 종(終)도 다 나쁜 것이다. 혹 누군가가 아부나 배신 중에서 택일을 해야만 한다면 선택할 당사자는 물론 구경꾼조차 배신에 침을 뱉을 것이다. 그런데도 배신자가 도리어 아부꾼을 꾸짖는다. 이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이 현상이 범국가적이다면 그 나라는 필경 망한다. 곡(曲)이 正을 꾸짖고, 수하(手下)가 수상(手上)을 범하고, 강상(綱常)이 무너지고서 성한 나라는 없었다. 그래서 남이 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모욕한 후에 남이 모욕하고,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이 업신여기며, 집안은 스스로 망가뜨린 후에 남이 망가뜨리며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후에 남이 친다.”고 했잖은가 (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 家必自毀, 而後人毀之 國必自伐, 而後人伐之) -맹자-

한동훈은 언변술사(言辯術士)처럼 말솜씨가 화려하고 거침이 없다. 그가 법무장관일 때 국회에서 더민당 의원의 질문과 호통을 맞받아치는 모습은 우익의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윤석열이 그를 끌어 주었을 때에만 네 활개를 마음껏 펼쳤던 것이다.

그는 법무장관을 물러나고서 며칠 되지도 않아서 그의 본심을 흘리고 말았다. 사형에 관한 주무장관은 법무장관이다. 한동훈이 법무장관을 퇴임하고서 이내 말하기를 “사형제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진실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기가 법무장관일 때 논의했어야 했다. 자기의 일일 때는 저런 말도 꺼내지 않았으면서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이 되자 저런 말을 했다. 사형제도 존폐라는 풀기 어려운 방정식을 자기는 풀지 않다가 다른 사람이 들어오자 그에게 떠넘긴 것이다. 물론 우연히 그렇게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男兒一言重千金에서 많은 근수(斤數)가 빠져나간 것은 사실 같다.

한동훈이 자기의 ‘배신’에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홍준표의 ‘아부’에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아부가 배신보다 나쁘다는 생각이 마음에 굳어 있으니 말로 되어 나왔을 수 있다.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본인의 성향대로 말하고 행하는 법이다. 자신의 가치관대로 언동하기도 한다. ‘가치관’이란, 특정 행동 양식이 다른 행동 양식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신념체계를 이르는 말이다. 아마도 한동훈의 가치관은 배신이 아부보다 나은 모양이다.

홍준표가 계엄의 원인은 깐족댄(배신한) 한동훈 탓이라 하자 한동훈은 “尹에 아부한 홍준표 책임”이라 했다. 배신과 아부를 동렬에 놓은 것이다. 배신과 아부가 어찌 같은 크기이며, 같은 수준, 같은 성질이겠는가. 마음이 허(虛)하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속을 뒤집어 보이는 법이다.

조선이 당쟁으로 나라를 말아먹었듯이 지금은 정치가 나라를 거덜내고 있다. 배신자가 도리어 아부꾼을 꾸짖는 것이 상식이 된 나라에 어찌 가망이 있겠는가. 천년 뒤에라도 저런 패악이 없어진다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파 나는 천년을 살아보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