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라! 기록하지 않으면 살아도 죽은 것이다!' 벌써 5년이 지난 일이다. 전화가 왔다. 전화를 준 분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서울에 계신 열렬 태극기 부대원이었다. 암에 걸려 병원에 있는데 운명하기 전에 전화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병문안 가려고 하니 한사코 말리신다. 병문안 오라고 전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 떠나기 전에 그냥 인사하고 싶은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 분은 6·25 참전 용사이시다. 이 분은 내가 하는 대북 풍선 운동을 적극 지지하셨다. 한편 좌파 친북적 노무현 정권 때부터 활약한 태극기 부대원이다. 이명박 정권 때는 광우병 촛불에 분노하여 반대시위에 참여하신 분이다. 말도 안되는 저 촛불들을 다 날려버리고 싶다고 하셨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에도 분통을 터뜨리시던 태극기 부대원이다. 광주 5·18 북한군 침투설을 적극 믿는 분이다. 근거를 가지고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듣지 않으시고 오히려 화를 내실 정도이다. 자식들과도 대화가 안 되고 관계가 좋지 않다고 했다. 자식들이 자기를 너무 몰라준다는 것이다.

이 분과 동지인 포천시에 사시던 또 한 분의 태극기 부대원이 있었다. 북한 함경도 출신이다. 인민군에 있다가 수류탄을 까고 탈출하였다. 남한 깡패들을 쥐어 잡을 정도로 완력과 기상이 대단했다고 한다. 머리 받기도 잘 했고 맨 손으로 돌을 깨어부술 정도였다고 한다. 잘 생긴 만큼 잘 생긴 부인을 얻었고 딸은 큰 백화점에 다닌다고 했다. 빨갱이와 좌파라면 이를 가는 분이다. 대북 풍선을 돕고 싶은데 이젠 나이가 들어 힘이 없다고 한탄하신다. 길거리에서 캔들을 수집하여 팔아 돕고 싶다고 하셨다. 이 분도 언젠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들었다.

또 한 분은 이름까지 아는 우리 단체 고문으로 모셨던 분이다. 교회 장로라고 하지만 6·25전쟁 때 미국 유학하신 대령 출신이다. 노태우 전두환 대통령이 자기 하급이었다고 한다. 군 출신이지만 학자풍이시다. 만주 국립도서관 서기로 근무 경력이 있다. 저택에 가보면 책 속에 계셨다. 일본 책도 우리나라 책처럼 보신다. 정보 장교 출신으로 대북 풍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저절로 찾아오셔 봉사하셨다.

84세의 나이로 백령도 현지까지 풍선 차를 몰고 함께 하셔 15년 전 정기 모임인 조갑제 대기자 강의 끝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분이 비교적 정정하실 때 자서전을 남기시라고 적극 권고했다. 글 쓰는 것이 힘들어 하시다 94세에 병원에 입원하셨다. 글 쓰는 것도 건강하실 때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젠 안되겠다고 봉사로 직접 대필하여 드리려 했다. 몇 장 써가는데 갑자기 자기 손녀에게 맡기겠다고 하신다. 수고비를 줄 바에는 손녀에게 주면서 작성하겠다는 것이다. 저는 무상 봉사임을 밝혔지만 그래도 미안하신 모양이시다. 일 년 후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갔다. 그 자제분들에게 자서전을 쓴 것 있으면 보내 달라고 했다. 기다려도 안 오는 것 보니 완성을 못한 것이다.

이런 태극기 부대원들, 애국자들이 세월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 분들이 떠나가니 기억들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이 드신 몸으로 광화문 광장에 밤낮 나가시는 만큼 기록들을 남겼으면 얼마나 좋았을 가 하는 아쉬움이다. 어쩌면 광화문 광장 시위보다 기록을 남기는 운동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한다.

또 나이 들면 들수록 기록 남기는 것이 더 적성에 맞는 힘찬 운동이라는 것이다. 기록을 남기면 영원한 운동이기도 하다. 자식과 후세에게도 이처럼 좋은 대화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이처럼 큰 유산 물림은 없다고 본다. 쓰기 힘들면 녹음만 해도 요즘 책이 되는 시대이다. 그 런 의미에서 조갑제 기자의 <자서전 쓰기 운동>의 중요성을 상기하게 된다.

북한에 있을 때 정치 보위부원들만 보는 책을 접한 적 있다. <일본육군 나까노 학교>라고 기억나는데 어느 구절 생각이 난다. 일본 사람들의 특징은 기록을 잘 남기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를 북한에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여 비판한다. 미군이 일본군의 일기장을 수집하여 정보를 얻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민군은 절대 일기장을 쓰지 못하게 한다. 사회에서도 기록 남기는 걸 무서워한다. 지식인으로 북한에서 가장 불행했던 것은 함부로 글을 남기기 어려운 것이다. <짧은 혀 때문에 긴 목이 날아 난다>란 새로운 속담이 생길 정도이다. 말도 그런데 글은 꼼짝 못하는 근거인 것이다.

중학교 때 소설을 시도했고 전문대에 이르러 작품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미성년이 아닌 이제는 안된다고 판단하신 부친이 한사코 막으신다. <창조하지 말라! 너와 우리 가족이 다 죽는다!>

맞는 말이다. 자기 의지를 담았다가는 큰 코 다치는 것이다. 오직 수령께 충성만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 영화나 작품들이 재미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탈북하여 남한에 와서 가장 행복한 것은 마음대로 말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좀 생뚱 맞은 소리이지만 <북한에서는 불행한 줄 몰라 불행하고 남한에서는 행복한 줄 몰라 불행하다.> 여기 분들은 이 감사가 뭔지 잘 모르지만 저는 잘 안다.

하지만 글쓰기가 간단치 않다. 먹고 사느라 정신없는 인생 수준과 늙어가는 나이가 더욱 힘들게 느껴진다. 여력이 있다면 이런 분들을 도와 나서고 싶다. 이런 봉사 단체를 만들어 함께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기 전에 나부터 이 운동에 행동으로 나서려 한다. 자식들에게도 이런 문구를 각인시키고 있다. <기록하라! 기록하지 않으면 살아도 죽은 것이다!> 이 문구는 선산 돌 비석에도 새겨 놓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