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민주화 1세대인데, 내 애창곡은 '아침이슬'이고...

 1992년 12월 대한민국 전 국토에서 민주 샴페인이 터졌다. 그 후 5년마다 12월이면 어김없이 광란의 민주 파티가 시작되어 두 달씩 계속되었다. 파티의 꾸밈이 그러하고 샴페인의 거품이 그러하듯, 주최측의 날뜀과 하객의 들뜸은 짧다. 대신 피로와 환멸은 길다. 

 한국식 민주 세력의 가장 큰 자산은 정통성이다. 이 과거의 자산 하나로 그들은 현재의 성공과 미래의 희망은 절로 자기편이 된다고 생각한다. 박수 받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정통성만 확보되면, 경제도 정치도 교육도 국방도 절로 굴러간다고 확신한다. 만약 잘 안 되면, 그것은 자신들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정통성 없던 시대에 호사하던 자들의 발목 잡기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풍차를 향해 달려가는 돈키호테처럼 대대적인 음모자 색출 작업에 들어간다. 없는 음모자가 나올 리 없다. 방법은 있다. 역사를 새로 쓰면 된다! 해방 이후 역대 정부를 난도질한다. 언어능력을 상실했거나 언어가 차단된 과거정부는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역사심판의 도마에 오른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1992년 12월부터 5년마다 새로 시작된다.

 요상한 것은 그 사이 60년 생지옥 북한의 정통성은 은연중에 소련군 대위의 입북과 더불어 반석 위에 올라선다. 알고 보면, 정통성은 정통성 맹신도들에게 조선시대에 그러했듯이 남북 공히 가장 큰 자산이자 가장 큰 부채다.

  마라톤 경기에서 출발은 부정선수가 아니라는 것밖에 의미가 없다. 100m 달리기에서는  출발이 마라톤보다 훨씬 중요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결승 테이프를 누가 먼저 끊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정치는 어쩌다가 100m 달리기가 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마라톤이다. 정통성은 운동경기로 말하자면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출발의 중요성은 100m 경주는 출발선에서 10m, 마라톤은 42.195km에서는 출발선에서 1m에 머문다. 각각 나머지 90미터, 42.194km이 훨씬 중요하다. 특히 결승선이 가장 중요하다. 1992년 12월부터 한국은 내내 출발선에서 머물렀다.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

'나는 부정선수가 아니다, 나는 출발 전문 선수다, 출발만 잘하면 그 다음은 볼 것도 없다, 그 후는 내 졸개와 팬들이 나 대신 기가 막히게 잘해 줄 것이다.'  

 도대체 어째서 이승만 정부보다 김일성 도당이 정통성 있으며, 박정희 정부보다 김영삼 정부가 정통성이 있고, 전두환 정부보다 김정일 도당이 정통성이 있단 말인가. 이 자체부터 지극히 자의적이고 교조적이다. 또한 그 후 실제 달리기에서 누가 잘했는가. 결승선에서 비교해 보면, 하늘과 땅이다. 천국과 지옥이다.

 나는 김영삼 정부부터 민주 정부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 오히려 운동권 정부라 부른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운동권 1세대가 아니라, 운동권 2세대다. 운동권 곧 반정부 세력 1세대는 김영삼과 김대중 등이다. 2세대는 이명박과 이재오 등이고, 3세대는 김근태와 정동영 등이고 4세대는 386 운동권이다. 노무현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운동권 4세대에 속한다. 2007년 대선은 운동권 2세대와 3세대의 다툼이었는데, 여기서 운동권 2세대가 이겼다. 조선과 동아의 침묵에 의해 운동권 2세대는 보수우익으로 국민들에게 슬그머니 각인되었다. 조선과 동아도 운동권 2세대가 주도권을 쥐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속은 게 아니다. 자신들을 투영한 것이다.

 운동권 정부냐, 대한민국 정통자유민주 정부냐, 하는 가름은 대북한 정책을 보면 금방 드러난다. 반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북한인권에 적극 나서면 대한민국 정통자유민주 정부이고, 그렇지 않으면 운동권 정부다.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도 운동권 정부다. 위장보수 정부다. 북한인권에 대해 선문답이나 주고받고, 북한 노동자 10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달러를 싸 들고 간 대한민국 국민이 새벽에 산책 좀 했다고 등뒤에 총을 맞았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남북화해의 도도한 강물에 심심한 인민군이 수제비 하나 뜬 것처럼 생각하고 바로 그 날 북한의 정통성을 대한민국의 정통성보다 우위에 둔 6·15선언을 계승하자고 제안했다.  

 운동권 정부는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국방도 잘하기 어렵다. 늘 출발선에만 맴돌기 때문이다. 자기 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자아도취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비판과 대안에 귀를 막고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포용력이 없기 때문이다. 무식하기 때문이다. 무능하기 때문이다.  
                    (2008.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