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기원은 식량 약탈이다. 국가의 단위가 커지면서 식량 약탈은 인간 사냥으로 발전했다. 식량 약탈은 일회적 사건에 지나지 않았지만, 인간 사냥은 마르지 않는 식량 창고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농업사회에서는 노예 노동의 숫자와 국가의 부강이 일치했다. 외국으로부터 노예노동이 더 이상 유입되지 않거나(로마) 노예 노동을 효율적으로 부리지 못하면(중국의 역대 왕조), 아무리 과거에 강대했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오래 평화를 구가하더라도 그 나라는 급격히 쇠퇴했다.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노동력보다 자연자원이 더 중요해졌다. 인간의 노동력보다 수십 배 효율적인 기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대포와 군함으로 무장한 유럽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상대로 처음에는 식량 약탈의 변형인 금은의 약탈을 본업으로 하고 인간 사냥을 부업으로 한 것은 그 당시만 해도 농업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쟁은 숫제 상대가 안 되는 다른 대륙의 크고 작은 국가가 아니라 유럽의 작지만 강한 여러 나라끼리 장소만 바꾸어 끝없이 계속했다. 전쟁과 평화는 상존했다. 상선(商船)과 군함(軍艦)은 여전히 구별이 되지 않았다. 단 유럽 안에서는 공포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유럽 안에서는 전쟁을 않는다는 무언의 금기를 과감히 깬 자가 나폴레옹이다. 전장(戰場)을 식민지에서 유럽 본토 전체로 옮긴 것이다. 전방의 전쟁터에서 주력군을 빼내어 바로 적의 왕궁을 급습하여 왕을 사로잡는 식이었다. 바다 건너 영국 외에는 당시 유럽에서 프랑스를 능가할 나라가 사실상 없다는 것을 이집트에서 영국군과 싸우던 나폴레옹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그는 늙은 두 왕국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이름만 있고 주인(통일왕국)은 없었던 두 땅 독일과 이태리를 무인지경으로 짓밟았다. 그러나 영국은 버거웠다. 나폴레옹은 1803년 전비(戰費)를 마련하기 위해 신생 독립국 미국 전체와 맞먹었던 광대한 루이지애나(루이 왕한테 바치는 땅)도 단돈 1500만 달러에 미국에게 팔아치우면서까지 유럽에서 패권을 잡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그는 런던을 파리의 무릎 앞에 꿇리기만 하면 그까짓 정도의 식민지는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에 한발 앞선 영국한테 프랑스는 식민지 싸움에 이어 유럽 본토 싸움에서도 결국 무릎을 꿇었다.    

 자원 전쟁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유럽을 주무대로 한 제2차 나폴레옹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제1차 세계대전은 그 불씨가 커지고 또 커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단계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독일이 앞장섰다. 후발 산업국가 독일은 식민지 쟁탈전에 너무 늦게 뛰어들었기 때문에 자연자원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독일은 자원을 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화학공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영국과 프랑스의 자원 싹쓸이와 광대한 해외 시장에게 역부족이었다. 이 전쟁에서 독일이 거의 이길 뻔했으나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대서양 건너의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 못지않은 강국으로 등장한 것이다.

 자연자원과 과학기술과 인도주의와 두둑한 달러를 함께 갖춘 신생 강국 미국은 이 때부터 대영제국을 대신할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다. 팍스 브리타니카가 팍스 아메리카나로 넘어가기 전 팍스 게르마니카를 노리고 패전국 독일이 종이 호랑이 영국과 프랑스에게 위장 평화의 깃발을 펄럭이며 다시 한 번 유럽 전체를 포연으로 가득 채웠다. 이번에도 구원자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자원 쟁탈의 전쟁보다는 참여자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이익을 가져다주는 세계시장의 평화가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을 전 인류가 야만의 석기시대로 돌아갈 뻔했던 두 전쟁을 통해 깨닫고 핵우산과 달러와 인도주의로 세계의 절반을 개편했다. 한편 소련과 중공은 미국의 반대편에서 핵우산과 석유와 유물론으로 세계의 나머지 절반을 차지했다.  

 자연자원 특히 석유의 위력은 여전히 대단했지만, 그것은 갈수록 비중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국가 자산에서 자연자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지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 곧 각종 제도와 인간자본이 금융이나 부동산, 공장 등 실물자본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식경제의 시대가 온 것이다. 농업사회가 산업사회에 맥없이 무너졌듯이 초기 산업사회에 머물렀던 공산주의가 지식경제사회에 맥없이 무너진 것은 역사의 필연이었다.

 산업사회의 탄생을 위한 마지막 진통이 세계2차대전이었다. 그 이전에 나폴레옹전쟁과 세계1차대전의 진통이 있었지만 그 때는 두 번 다 죽은 아이를 낳았다. 세 전쟁은 모두 불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식경제의 탄생을 위한 진통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된 지금, 가장 잘 나가던 유일 초강대국이 양손에 핵우산의 창과 달러의 방패를 들고서 비틀거리고 있다. 우습게도 천하무적 핵우산의 창은 세계 최빈국 북한에 의해 조자룡의 헌 칼로 바뀌고 있다. 달러 방패는 언젠가는 대체될 석유의 나라 이라크의 사막에 들어간 이후 급격히 빛이 바래고 있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두 쌍둥이 적자가 그 때부터 헤어날 길 없는 수렁에 빠져들었다. 카우보이의 쌍권총과 양키의 쌍둥이 적자로 안보와 경제 양쪽에서 횡재한 전세계가 오지랖넓은 바보를 마음껏 조롱한다. 가장 큰 조롱은 다름 아닌 자기 나라 안에서 나온다. 국론이 남북전쟁 때만큼이나 크게 갈라져 있다. 서로가 링컨을 계승했다고 하지만, 어디에도 제2의 링컨은 보이지 않는다. 멕클레렌, 더글라스, 데이비스 비슷한 위선자일수록 각광을 받는다. 
--스스로 싸우는 집안이 아니 망하기는 쉽지 않다.  

 과연 전쟁 없이 전세계가 지식경제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까. 자살 폭격기의 배후 세력 하나 잡아들이지 못해 근 10년이나 허둥대고 조악한 핵폭탄의 협박에 15년을 질질 끌려 다니고, 빚잔치로 전국민이 흥청망청해도 아무도 따끔한 소리를 않고 저금리와 재정확대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붓다가 마침내 세계 2차대전의 빌미가 된 경제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처음에는 바다건너 불 구경하다가 바다를 건너 날아온 불똥에 전세계에서 경제 숲이 여기저기서 타기 시작했는데, 과연 모든 나라가 냉정하게 국가 이성을 찾을 수 있을까.

 아마 G7이 전장(戰場)보다 시장을 사랑하는 한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제각각 살기 바쁜 와중에 전세계에 걸친 경제위기의 긴장을 풀 작은 전쟁은 능히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사고방식이 아직도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넘어가는 단계에 머문 곳에서는 국지전이긴 하지만 그것을 감행할 제2의 히틀러가 나오지 않는다고 보장하진 못할 것이다. 미국을 상대로 크게 재미 본 빈 라덴과 김정일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본다.
         (2008.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