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경쟁을 만악(萬惡)의 근원으로 여기는 풍조가 생겨났다. 어린이의 등교 거부도 경쟁 탓, 청소년의 가출도 경쟁 탓, 주부의 우울증도 경쟁 탓, 가장의 폭력도 경쟁 탓, 처녀총각의 혼인 기피도 경쟁 탓, 무슨 일만 생기면 저마다 정신과 의사를 자처하며 온통 경쟁 탓으로 돌린다. 교통사고도, 방화도, 강도짓도, 폭력도, 자살도, 파업도, 실업도, 소득과 반비례하여 행복지수가 떨어진 것도 모조리 경쟁 탓으로 돌린다.

 경쟁사회를 협력사회로 만들려면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며, 경쟁의 싹을 자르는 작업은 학교에서 제일 먼저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경쟁은 시험에서 구체화된다. 학생을 시험으로부터 해방시키면 학생들은 서로를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협력의 상대로 볼 것이라 굳게 믿고서 또한 그들이 자라면 오순도순 협력사회가 절로 온다고 믿고서, 역대 정부는 시험을 폐지하거나 축소하거나 금지하는(수시모집 확대, 입학사정관제 도입, 추첨 강제도 포함하여) 것에 역사적 사명감을 느꼈다.

 중학교 입학시험 폐지, 대입 본고사 폐지, 고입 연합고사 폐지, 초등학교 정기고사 폐지, 일제고사 폐지, 중고등학교 배치고사 폐지, 고등학교 모의고사 폐지, 특목고 입시 폐지 등등 지난 40여 년간 역대 정부는 각종 시험을 폐지하는 것이 곧 교육 정상화요, 교육 민주화요, 교육 선진화인 양 떠벌였다. 그런데 이 중에서 40년이 지나도록 만장일치로 지지 받는 것은 딱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중학교 입학시험 폐지다. 그것은 입시경쟁을 완화시킨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실질적으로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확대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나 지금이나 한 번도 이의제기가 없었던 것이다. 경제개발의 혜택을 전 국민이 골고루 나눈 정책이기도 하다.

 그 외 나머지 시험 폐지는 경쟁에 의한 서열화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배운 것을 확인하고 그 결과를 기초로 다음 교육계획을 세우는 데 필수과정인 평가를 왜곡하게 되었다. 초등학교에서는 한때 시험을 치더라도 성적을 공개하지 않자, 학부모는 자기 자녀가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못된 짓하기와 공부 안하기에 활짝 열린 교실에서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난장판을 만들어 시도 때도 없이 놀다 보니까 대부분 꽝으로 변했는데, 부모는 다들 자기 자녀만은 보배인 줄 알았다. 시험은 학업에 대한 자극도 되는데, 시험도 없고 성적표도 없으니까 못 살고 못 배운 부모를 둔 학생은 그것이 지옥으로 이끄는 장미 꽃길인 줄 모르고 그저 날마다 천국이었다.

 여기서 암투가 벌어졌다. 암투에선 반칙이 최고의 전술이다. 많이 배운 학부모, 잘사는 학부모는 자녀의 수준에 맞춰 뭇 바보들이 신물 나게 시시덕거릴 때 신물 나게 사교육을 시켰다. 대대적으로 원화를 달러로 바꾸어 해외로 자녀를 무더기로 내보내기도 했다. 만났다 하면 싸우는 여야도 자기 자녀의 조기유학 문제에 이르면 서로의 세비를 올릴 때처럼 그냥 만장일치였다. 반미(反美) 장사로 벼락부자가 된 자들도 다투어 자녀를 원수의 나라라는 미국에 내보냈다. 마음의 조국인 북한에는 단 한 명도 안 보내고.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부터는 과목마다 교사가 다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배워야 할 내용이 폭증한다. 그래서 한 번 배움을 놓치면 여간해서는 따라가기 힘들다. 중학교 3년간 학업이 누적되면 그 후에는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따라갈 수가 없다. 엉터리 졸업장을 주고 다시 고등학교에 진학시키는 것으로 교육부는 온갖 생색을 다 내고 다시 그들을 대학입시의 정글 속으로 밀어 넣고 못 나오도록 가시 울타리를 친다. 교육장관도, 교육감도, 교사도, 학부모도 이제부터 열심히 하면 된다는 긍정의 세뇌작업을 또 3년간 계속한다.

 어느 날 보니까 공부 잘하는 애들은 대부분 부모가 잘 살고 부모가 많이 배운 집안 출신이다. 이른바 부르디외가 간파한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이 빵빵한 집안의 자녀다. 단계마다 평가가 꼭 따랐던 시절에는 잘도 나왔지만,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경쟁을 미워하고 협력을 사랑하는 혁신학교를 세운다는 곽노현도 교육의 암투에서 반칙을 일삼아 자기 자식은 오래 전에 외국어고등학교에 보냈다. 사춘기를 지나 뒤늦게 철이 든 고3 학생이 말 그대로 코피 터지게 공부하는 수도 있지만, 3년 많으면 6년간 공부가 누적되었을 경우 따라갈 리 만무하다.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노동자와 농민의 세상을 만든다는 이념이 도리어 노동자와 농민을 대물림하여 그 자식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소작농과 실업자로 전락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농업사회가 산업사회로 변할 때, 산업사회가 다시 정보화시대로 변할 때도 경쟁에 대한 몰이해와 억압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면 드러내놓고 경쟁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데서 암투가 벌어지고 반칙이 난무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새 세상이 펼쳐지고, 암투는 밝은 세상으로 나와 공정한 경쟁의 장이 마련되고 반칙이 사라지고 원리원칙이 자리 잡는다.

 공산사회에서는 무엇보다 불로소득을 뿌리 뽑는다며 직접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상인은 아예 씨를 말렸다. 판매경쟁을 완전히 없애 버리고 분배제도를 도입했다. 그러자 암투가 만연하고 반칙이 난무했다. 암투란 뒤로 권력과 줄을 대는 것이었다. 반칙이란 권력순위에 따라 몰래 때로는 뻔뻔하게 왕건이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판매경쟁이 없어지자 생산은 양만 채우면 되었기 때문에 불량품이 쏟아졌다. 판매경쟁이 없어지자 협동농장에선 시간만 때우면 되었기 때문에 식량은 만성적으로 부족했다. 겉으로 보면 조화로운 협력의 사회였지만, 암투와 반칙으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장소로 변했다. 인간 대신 악귀가 들끓었다. 그것이 북한에는 나날이 최악의 기록을 경신하며 지금도 계속된다.

 무생물은 경쟁도 없고 협력도 없다. 물리적 작용과 반작용, 화학적 반응과 결합이 있을 뿐이다. 생물은 그렇지 않다. 어떤 생물이든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수요소이다. 협력도 마찬가지다. 경쟁과 협력, 어느 한쪽이 낫고 어느 한쪽이 못한 게 아니다. 필요에 따라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한다. 동물만이 아니라 식물도 경쟁하고 협력한다. 사람이 잉태될 때도 최소한 5억 대 1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한 명의 남성이 두 명 정도의 자식을 낳는다고 할 때, 그 경쟁률은 거기서 다시 1500을 곱해야 한다. 여성의 질은 강한 산성이어서 5억의 정자가 들어오면 관문에서 바로 99.99%를 죽여 버린다. 거기서 살아남은 자만이 길고 긴 여행을 할 수 있다. 여행에 성공한다고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때로 정자끼리도 협력한다는 것이다. 특히 유전자가 다른 정자를 만나면 유전자가 같은 녀석끼리 힘을 합쳐, 꼬리짓으로 암묵적으로 선발한 대표 선수를 호위하여 거대한 도약(a great leap)의 랑데부에 성공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은 아마 양궁과 바둑과 여자 골프와 쇼트트랙 스케이팅일 것이다. 나란히 세계 1위, 2위를 다툰다. 거기서 경쟁이 너무 비인간적이니까 경쟁을 지양하자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바로 그런 일이 쇼트트랙 스케이팅에서 일어났다. 이른바 짬짜미라는 것이다. 당당한 경쟁이 아니라 사전에 선발선수를 정해 놓고 순위를 조작하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짬짜미는 일종의 협력이다. 협력이 경쟁보다 낫다면, 짬짜미는 좋은 것 아닌가. 아니다. 왜? 그것은 암투요 반칙이기 때문이다.

 경쟁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이냐 비열한 경쟁이냐, 그것이 문제다. 공정한 경쟁에 공정한 심판이면 누구든 승복한다. 승부는 언제든 변할 수 있으니까, 이번에 지면 다음에 이기면 된다. 공정한 경쟁에서 꾸준히 승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웅으로 존경 받는다.

 왜 올림픽 금메달은 방송에서 생중계하고 인터뷰가 쇄도하고 광고가 밀려드는데, 60만이 12년간 경쟁한 끝에 마지막 관문에서 정정당당하게 승리한 수능 전국 1등은 발표하지도 않는가. 공부 잘하는 사람과 운동 잘하는 사람 중에 장차 국가에 누가 더 공헌할 것인가. 경쟁을 부추긴다고 발표하지 않는단다. 그러면 왜 비슷한 또래의 김연아와 박태환과 여민지는 그렇게 떠받드는가. 그들은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가. 혹 그들이 수능 전국 1등보다 공교육을 더 착실히 받았는가. 한국에서 운동선수가 공교육 제대로 받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어쨌건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치열한 경쟁을 치르지 않았는가. 공정한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이처럼 누구든 박수를 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수능 전국 1등도 전 국민의 박수를 받아야 한다.

 그 대신 권모술수로 비열한 경쟁에서 이긴 자는 대통령이라도 손가락질을 받아야 한다. 왜 김정일과 김정은이 민족의 원수인가. 그들은 날마다 전 북한주민에게는 총폭탄 희생을 강요하고 일심단결 협력을 엄명하면서, 자신들은 대를 이어 오로지 암투와 반칙으로 2천만 노예의 주인으로 등극했고 등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정책이 5천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가. 청출어람이라더니, 그는 민주 링과 선진 링을 아랫입술 윗입술에 주렁주렁 꿰뚫어 달고 다니던 전임 대통령들을 단숨에 추월하여 공정한 경쟁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만 인사의 회전문을 들락거리며 서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 추켜세우면서 협력 또 협력하기 때문이다.

 경쟁을 사갈시하고 협력을 입에 달고 다니는 자들은 위선자이거나 독재자 또는 잠재적 독재자다. 그들은 막상 자신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라선 경쟁 사다리의 꼭대기에서 황금 지붕으로 폴짝 뛰어오른 다음 사다리를 걷어차고 권력과 부와 명예를 마음껏 누리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너희들은 제발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거드름을 피운다. 무릎을 꿇고 자신들을 하늘같이 떠받드는 자들이 있으면 그들에게는 반칙의 특권을 주고 나머지는 누구든 조금만 고개를 쳐들면 두더지 잡듯이 쇠방망이로 사정없이 내려친다.

     (2010.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