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은 20세기를 향해 다락방의 창문을 연 해다. 그 해 이탈리아의 G. 마르코니에 의해 무선전신이 발명된 것이다. 그것은 1980년대말 인터넷 상용화에 화들짝 놀라 21세기가 숨 가쁘게 달려온 것과 비슷하다.

 무선전신의 발명과 더불어 세계는 최소한 소리로써 하나로 연결되었다. 세계 어떤 오지에서 일어난 사건도 바로 전 세계로 알릴 수 있었다. 1860년대만 하더라도 남북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선혈이 낭자하게 싸운 일도 있었다. 그만큼 정보의 확산이 어려웠다. 그것이 이제는 아득한 추억의 세계로 사라졌다. 자연히 20세기와 더불어 비밀을 지키기가 어려워졌다. 더군다나 전화와 라디오와 TV가 등장하면서 이제는 기계음을 굳이 인간의 음성으로 변환할 필요도 없었고 상상으로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그릴 필요도 없었다. 신호정보(SIGMINT)든 영상정보(IMINT)든 곧장 전 세계의 안방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폭군이나 독재자가 더 이상 발을 못 붙일 것 같았다. 신나는 신세계가 펼쳐질 것 같았다.

 아니었다! 기계 위에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루스벨트가 지상의 좁은 방에서 마이크를 애무하듯 부드러운 입술을 달싹이며 아저씨의 목소리로 모든 미국인의 가슴을 촉촉이 적실 때, 히틀러는 지하의 좁은 방에서 마이크를 씹어 삼킬 듯이 딱딱한 입술을 부르르 떨며 구세주 같은 악마의 목소리로 패배감에 찌든 독일인의 가슴에 복수의 칼을 심어 주었다. 히틀러는 무선전신과 전화와 라디오와 영화와 책을 완벽하게 통제하여 도리어 역정보를 흘려 파리와 런던을 천년왕국의 도시로 만들었다. 바야흐로 전쟁은 영원히 끝난 것으로 믿게 만들었다. 거대한 침묵! 나치의 음모는 히틀러의 폴란드 침략으로 이내 밝은 해 아래 드러났지만, 나치의 만행에 대한 거대한 침묵은 2차대전이 끝나서야 속속 드러났다. 나라 없고 군대 없는 6백만의 동족이 파리모기 죽듯이 떼죽음을 당하고 나서야 나치의 만행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것은 살아남은 유태인이 2차대전의 최대 승리자, 미국의 언론과 금융과 학계와 할리우드를 장악하여 반세기가 넘도록 줄기차게 알리고 유혹하고 설득하고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거대한 침묵은 또 이어졌다. 그것은 2차대전 후 공산권에서 일어났다. 도합 1억 명이 유태인이 도살된 것 못지않게 단지 계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잘 산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권력에 어울리지 않거나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마지막까지 노동력을 착취당한 후에 개돼지보다 비참하게 학살되었지만, 세계는 침묵하고 침묵했다.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라디오에 이어 TV도 나왔는데, 왜 1억의 학살은 1단 기사로 처리되거나 가십거리로 처리되었을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공산권의 정보통제였다.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은 무선전신도 라디오도 TV도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통신기기도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는 한, 그것을 직접 본 사람이 밖으로 전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문에 지나지 않았다. 바람 소리와 진 배 없었다.

 둘째는 공산권에 동조하는 자들의 자체검열이었다. 스스로 엠바고를 걸었던 것이다. 그들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빌미로 스탈린과 모택동, 김일성과 차우세스코의 거대한 공산 군국주의 실험을 미화하고 찬양하고 그들의 인권유린은 숭고한 목적을 위한 아주 작은 일탈 정도로 치부하고 이를 널리 알렸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지켜보았다. 대신 숨길 수 없는 자유와 법치세계의 작은 인권유린과 남녀차별은 천 배 만 배 부풀렸다. 국가를 상대로 평등과 분배를 강요하였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자와 공화주의자가 서로 버성기며 자유와 법치 세계는 더욱 좋은 세상으로 변모하였다.

 마침내 소련과 동구의 공산권이 무너졌다. 솔제니친의 강제수용소 얘기는 모두 맞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자, 이제 일단 기사에서 부활하여, 토막소식에서 끄집어내어 10페이지 100페이지, 8시 뉴스, 9시 뉴스, 특집 방송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러나 승리에 대한 환희만 있었지, 과거의 상처는 누구도 건들지 않았다. 이에는 크게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공산권에 사상의 뿌리를 박고 있던 자들이 일제히 먼 산 쳐다보기 발뺌으로 슬그머니 자신의 과오를 덮어버렸다.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그 정도인 줄 몰랐다, 이미 지나간 일 아닌가, 이제 와서 잘잘못을 가릴 필요가 무어 있는가, 문제는 현재와 미래 아닌가. 그들의 뻔뻔한 변명이었다. 이들은 언론과 문화와 학계를 70% 정도 장악했다. 그들이 여전히 주류였다. 그들은 살아남은 유태인이 아니었다. 땀 한 방울 피 한 방울, 피해자가 아니었다. 또한 자신의 과오는 죽어도 인정하기 싫었다. 그 순간 자신의 창창한 여생이 수치와 굴욕의 구렁텅이로 빠지기 때문이다.

 둘째, 공산권의 새 지배층이었다. 그들은 국유 재산의 사유화 과정에서, 공산당 유일무이당의 찬반 투표가 자유민주 다수당의 비밀투표로 바뀌자 재빨리 변신하여 새 지배층으로 옷을 갈아입는 데 성공했다. 거의 같은 사람으로 이뤄진 새 지배층이 자신들의 과오를 굳이 들출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 유태인 같은 피해자가 아니었다. 나치와 똑같은 가해자였다.

 셋째, 중국의 존재였다. 중국은 경제에서만 시장경제를 일부 받아들였지, 정치에서는 자유민주를 일점일획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공산당 일당 독재를 자유민주의 대안이라며 독특하게 유지한다. 따꺼(빅 브라더)로서 라디오와 TV와 영화와 휴대폰과 트위터와 인터넷을 거의 완벽히 장악한다. 모택동에게 7개의 위업을 바치고 면피용으로 겨우 3개의 과오를 지나가는 말로 슬쩍 흘림으로써, 대도약의 이름으로 대추락하여 자국민을 3천만 이상 학살한 악행에 대해, 히틀러 5배의 악행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다. 그럼으로써 한 패거리였던 공산당의 과오에도 함께 일반사면령을 내렸다. 모택동에 비할 수는 없지만, 자유와 법치 세계에서 보면 경악할 인권유린이 중국에서는 지금도 아무런 느낌 없이 국가의 안전과 사회의 안정을 위해 공권력을 집행한다는 명목으로 태연히 자행된다. 옛날에 주인이 종에게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아무 때나 채찍을 휘둘렀듯이!

 이제 세 번째 거대한 침묵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그것은 북한의 인권유린이다. 중국은 죽의 장막을 걷어 압록강과 두만강에 죽의 보호막을 둘렀다. 김정일은 철의 장막을 동서남북 빼곡히 둘렀다. 서방세계가 스탈린의 거대한 사디즘에 침묵했고, 모택동의 거대한 추락에 침묵했듯이, 한국은 그리고 미국과 일본과 유럽은 중국에 아첨하고 북한에 윙크하며 거대한 침묵으로 일관한다.

 가장 나쁜 쪽은 당사자인 한국이다. 대놓고 김정일의 독재와 인권유린에 민족의 흰 옷을 입혀 주고 화해의 붉은 꽃다발을 안겨 준다. 정계와 언론과 방송과 학계와 문화와 인터넷은 이런 자들이 70% 이상 차지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무늬만 자유민주이다. 무늬만 정통우익이다. 그들은 사탕발림도 없다. 혼신을 다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성취 중의 하나인 대한민국은 헐뜯고 욕하기 바쁘다. 그럼으로써 비난의 화살이 북으로 일절 향하지 못하게 한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선제공격 수법이다. 그러면서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로 10여년 연속 북한을 규탄하는 UN에 동시 가입한 것을 들먹이고, 김정일이 먼저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고 수시로 조롱하고 짓밟는 남북회담 눈속임 약속을 사방의 벽에 크게 붙여 놓고 독재자의 독재자 김정일은 꼬박꼬박 00위원장이라 부른다. 백두산에 방사능이 날고 동해에 불기둥이 떨어지고 서해에 국군의 시신이 어지러이 떠돌아도 말로만 세 배, 열 배 보복한다. 말로만! 말로만! 불벼락 열흘도 안 되어 독재자의 독재자로부터 눈도장을 찍지 못해 안달이다. 언론에 비밀 접촉을 흘리고 여론을 떠본다. 여론이 괜찮으면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아니면, 헛소문이라며 시치미 뗀다.

 3대를 이은 김씨공산왕조의 독재의 독재에 대한 거대한 침묵은 유럽의 거대한 침묵이 히틀러의 군홧발을 불러들였듯이, 60년 전에 이미 한국에 피의 바다를 자초했듯이 결국은 거대한 파멸을 불러올 것이다. 피와 독초를 뿌리고 심고 가꾸어 놓고 벼의 황금물결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2011.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