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중학 동기생에게서 들은 얘기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5학년, 6학년 담임을 기피한다고 했다. 너무 의아해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한 마디로 대답했다.

“무서워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라는 TV 프로에 나오는 애들이 그대로 자라서 선생님에 못지않은 덩치를 자랑하는 5학년, 6학년이 되었을 경우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런 애들이 반마다 서너 명만 된다고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즉시 머릿속에 전깃불이 켜졌다. 이해찬이 뿌린 386 운동권 의식화의 씨가 민들레의 씨처럼 사방에 퍼졌다가 바야흐로 민선 교육감 시대가 열리면서 경기도에 이어 서울에서 장마철의 잡초처럼 무성히 자라기 시작했다.

 교육 역사상 어린이를 한 인격체로 대우하라고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루소다. 그는

<<에밀>>에서 가상의 자연 세계를 내세워 어린이의 순수함과 슬기로움을 최대한 살리고 기르는 방법을 제시했다. 막상 본인은 아이들을 모두 입양시켰다. 그의 이론을 실천에 옮긴 교육자는 페스탈로치다. 여기까지는 훌륭하다. 아름답다.

 <<삼총사>>의 달타냥에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듯이 서양에선 귀족들이 말귀를 알아들을 때까지 자식을 시골의 친척에 맡겨서 키웠다. 조선에서도 귀한 자식일수록 엄격하게 키운다고 서로 바꾸어 키우기도 했다. 어엿이 자라 청소년기에 아버지를 찾아가면, 비로소 아들로 인정받았다. 왕이 된 고주몽을 찾아간 유리 왕자처럼!

 뇌 발달 과정으로 보아, 대뇌피질이 별로 자라지 않은 시기에는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 그것을 한쪽에서 보면 순수 그 자체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악마 그 자체다. 선악이 동시에 존재한다. 옛날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린이의 순수 쪽보다는 악마 쪽을 많이 보았다. 계몽시대 이후로 이것이 달라졌다. 순수 쪽에 비중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관점이 바뀐 것과 비슷한 시기이다. 여성의 감수성과 변덕, 사랑과 질투, 지혜와 냉소 중에서 각각 감수성과 사랑과 지혜에 비중을 더 두기 시작한 것이다.

 균형이 중요한데, 이것이 사회주의 사상과 결합되면서 철저한 규율과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한 공산권의 교육계든 자율과 선택을 기조로 하는 자유민주권의 교육계든 급격히 무너졌다. 의식 세계는 악하고 무의식 세계는 선하다는 함의(含意)를 지닌 심리학도 자유민주권에서는 어린이에 대한 균형감을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국가가 교육에 깊숙이 개입한 한 것도 이른바 진보교육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의 생각은 한 마디로 말해서, ‘어린이를 작은 어른으로 만들 생각을 버리고 어린이가 원하는 대로 해 주라, 그러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세력을 이루어 전통적인 교육 방식을 일방적으로 기득권을 영속시키려는 케케묵은 지배욕으로 매도했다. 순수와 악마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심지어 식물조차, 자라는 환경에 따라 거의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라도 판이한 모습을 드러내는 수가 허다하다. 그것은 주위환경에 적응하여 나름대로 개체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유전자의 발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인간은 20여세까지 자라는 뇌 덕분에 환경에 놀랍도록 잘 적응하여 곧잘 환경을 지배해 버린다. 한두 살 아이도 본능적으로 끊임없이 허용 한계치를 시험하는 심리전에서 엄마 아빠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울음과 웃음 둘만으로 능히 인간이라는 환경을 지배해 버릴 수 있다. 버릇없는 애, 제멋대로 애가 바로 그들이다. 극단적인 경우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TV 프로에 나오는 애들이다. 그들은 이미 그런 식으로 뇌가 급속도로 발달하여 스스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 따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욕망은 그 자체로 선한 것이 아니다. 어른의 삐뚤어진 대리 욕망도 문제지만, 최적의 이익을 얻으려는 아이와 벌이는 무의식적 심리전에서 무조건 항복하고 사랑의 포로가 된 부모가 전쟁의 악마적 승자가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큰 문제다.

 절대 때리지 말라, 야만족들아, 말로 하라, 설득하라, 또 설득하라, 인내하라, 또 인내하라, 권위의식을 버리라, 어린이한테 배우라, 학생한테 배우라,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학생들을 공부 기계로 만들지 말라, 때리는 자는 무조건 신고하라!

 곽노현과 김상곤 등은 한국의 학교가 일제시대의 유치장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미 이해찬 세대부터 교실은 급격히 붕괴하여 학생들은 선생님의 종이호랑이 신세를 꿰뚫어보기 시작했는데, 학부모는 7급 공무원 교사를 로마시대의 그리스인 노예 교사 보듯 낮춰 보기 시작했는데, 이미 체벌은 거의 사라졌는데, 오히려 학생들이 교실을 잡담의 별 다방 내지 졸음의 달나라로 만들고 복도를 욕설의 난장판 내지 육상의 트랙으로 만들었는데, 담임이 아닌 한 심지어 담임도 웬만하면 못 본 척하고 넘어가는 상황인데, 마치 한국 학생들은 북한의 주민이 신년공동사설을 달달 외듯이 로봇처럼 공부만 하고, 교사는 일본 순사처럼 옆구리에 큰 칼을 차고 채찍을 손에 움켜쥐고 학생들이 눈만 옆으로 돌려도 사정없이 미친 개 패듯 패는 줄로 아는 모양이다. 그것은 마치 수영장에서 이미 손바닥만한 수영복만 걸치고 있는 수영 코치에게 자연으로 돌아가라며 그것마저 홀랑 벗으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그렇게 되면 수영장은 바로 룸살롱 또는 호스트바로 변할 것이다.

 그들은 일그러진 영웅의 소수 인권을 선량한 보통 학생들의 다수 인권에 우선시킬 정도로 인권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척하지만, 바람에 스치는 말로도 한국의 청송교도소 죄수도 당연히 누리는 인권도 보장 받지 못하는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서는 소리 없는 금붕어의 입도 열지 않는다. 그들은 무당이 대나무 흔들듯 한반도기를 신들린 듯 마구 흔들며 북한을 무조건 돕자고 악을 쓰지만, 막상 북한인권 얘기만 나오면 일제히 먼 산을 쳐다보거나 증거 없음을 중얼거리거나 미국과 유럽의 음모론을 내세거나 박정희/전두환의 인권 유린을 물고 늘어진다.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북한인권은 철저히 외면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은 무조건 돕자고 하는 것은, 김정일에게 독재용 통치자금과 적화통일용 군자금을 대 주자는 말과 동일하다. 에둘러 표현했을 따름이다.

 그들은 붉은 교과서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 세계에서, 김일성과 스탈린과 모택동이 자행한 전쟁의 잿더미에서 대한민국이 20세기 후반에 너나없이 피와 땀, 신뢰와 창의로 세계적으로 가장 빛나는 성취를 일궜지만, 일언지하에 그것을 노동자농민의 희생 위에 세운 사상누각이라고 매도한다. 그들의 눈엔 대한민국의 평범한 농민이나 웬만한 노동자도 하루 한두 시간만 찔끔 피뜩 수돗물과 전기가 들어오는 평양의 웬만한 노동당 간부보다 월등히 잘 살고 가족 중 일부를 반드시 인질로 남겨 놓아야 하는 북한 외교관보다 외국을 자유롭게 드나든다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눈이 아예 퇴화해 버리고 흔적 기관으로 남아 있는 그들의 외박이 왼쪽 눈에는 대한민국의 근대화 주역이 모조리 친일파 후손이자 독재자의 주구들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친일파를 근절했다는 북한의 선전선동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지주와 자본가를 3대에 걸쳐 씨를 말리는 북한의 3대 공산세습은 북한 주민의 자유로운 체제 선택으로 받아들인다. 요상하게 요런 데는 내정불간섭 원칙을 내세운다. 폴 포트보다 악랄하고 이디 아민보다 무능하고 로버트 무가베보다 탐욕스러운 김일성과 김정일과 김정은을 위해서라면, 한달음에 대변인이 되고 기꺼이 호위총국 전사가 되어 멍게설, 피로설, 민족핵설, 자주설, 평화설을 내세운다.

 대한민국의 40만여 교사도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일부 외에는, 몽땅 친일파 후손이요 독재 주구 전과자요 부정하고 부패한 기득권이다. 1만여 교장은 오늘의 악덕 지주요 흡혈 자본가이다. 대신 학생은 무조건 선한 천사로서 새 시대의 새 일꾼이다. 내일의 촛불 세력이다.

 결론은 이렇다. 그들 눈에는 대한민국의 근대화 주역은 모조리 정신개조의 대상이다. 교사라고 예외가 아니다. 감히 이런 자들이 어떻게 선하디 선한 학생들에게, 공짜로 점심 주고 입시에서 해방시켜 실컷 놀게 하면 대학에는 우수수 떨어질지 모르나 머잖아 정의감에 불타서, 불평불만에 가득 차서 우르르 그들 편이 될 학생들에게 손을 대게 한단 말인가.

 대신 그들은 북한인권에 대해 유엔에서 9년 연속 결의안을 통과시킨다고 할지언정, 그건 직접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으니까 뭐라고 말할 것도 없고, 굳이 말한다면 한국의 빨갱이 조작 전문 독재 향수병자들과 은밀하게 손잡은 미국과 유럽이 북한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건방지게 내정간섭하는 것이라고 또는 북한을 말살시키려는 것이라고 제국주의적 음모를 노골적으로 꾸미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 마음속에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대한민국에 정통성이 있는 게 아니라 친일파를 근절하고 지주와 자본가를 몰아낸 북한에 정통성이 있으니까, 북한인권은 북한이 생존 차원에서 초강대국에 당당히 맞서서 그 정통성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필요악 정도로 생각한다. 북한인권은 북미 평화협정만 맺으면 절로 해결될 문제로 생각한다. 1민족 2체제 평화 통일되면 절로 해결될 문제로 생각한다.

 김일성/김정일 편에 서면, 북한주민의 인권은 숫제 눈에 띄지 않는다. 반(反) 이승만/박정희/전두환 편에 서면, 한국 학생의 인권은 100배 줌 망원렌즈로 확확 들어온다. 학생들은 이미 민중사관과 주체사관에 의한 현대사 교육을 단단히 배운 데다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머리와 복장 등을 민주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게 해 주고 또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민주적으로 신체에는 절대 손대지 못하게 하면, 학생들은 머잖아 교육 선동가들의 강력한 후원 세력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호를 뒤집는 바다가 될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의 인권 문제에 이르면, 일그러진 영웅의 인성도 바로잡고 공포에 떠는 다수 학생들도 보호하는 손바닥 회초리 한 대도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같은 거대한 폭력으로 비친다.

 이처럼 북한인권과 학생인권에 대한 이중 잣대는 그 심층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단일 잣대임이 드러난다.

    (2011.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