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力한 비생산적 모럴을 깨라 내향적 수렴, 인사이더의 사고방식은 조선조 이후에 깊어진 한민족의 유전병이다.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거치며 상당기간 잠복해 왔지만 오늘날 민족의 원형질 안에서 또 다시 꿈틀거린다. 이어령 선생은 ‘한국인의 신화’라는 책에서 단군신화를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곰이 제 굴에서만 고통을 이겨내려는 인사이더의 사고방식. 어려움이 닥치면 그 어려움을 제거하고 넘어서려는 쪽보다 참고 견디는 자기희생 쪽으로 달려갔다. 여기에서 비침략적 평화주의를 신봉하게 되었지만 반면 실생활에서 無力(무력)과 비생산적인 모럴의 추종이라는 비극을 낳기도 했던 것이다”

삼국사기의 자주적 사관과 달리 삼국유사를 보면 無力한 비생산적 모럴이 번득인다. 신라 興德王(흥덕왕) 대 孫順(손순)의 효행을 적은 이야기는 얼핏 아름다운 소나타처럼 들린다. 손순은 시골에서 노모를 봉양하는 착한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가 음식을 많이 먹어 노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현실에 괴로워한다.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얻기 어렵다. 차라리 아이를 묻어 버리자...’ 이 끔찍한 생각은 실행에 옮겨진다. 손순은 아이를 생매장 하러 산으로 올라가는데 우연히 땅속에서 石鐘(석종)을 발견한다. 기이하게 생각한 손순은 아이를 버리는 일을 중단한 채 석종을 가지고 내려온다. 석종을 두드리니 아름다운 소리가 울리고 이 소리는 대궐까지 전해진다. 진상을 조사한 흥덕왕은 손순에게 해마다 벼 50석을 내렸고 그의 효를 널리 세상에 알려 숭상케 했다.

宗德王(종덕왕) 당시 向得(향득)의 설화도 유사한 플롯이다. 흉년이 들자 향득이란 효자는 거의 굶어 죽게 된 아버지에게 그의 넓적다리를 베어 먹였다. 인육을 먹는 끔찍한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들은 종덕왕 역시 향득에게 상을 내린다.

가난-희생-보은으로 이어지는 내향적 DNA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넓적다리를 자르고 아이를 파묻을 각오면 가난도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음식을 많이 장만할 생각을 하지 않고 왜 주어진 음식 내에서 먹는 입을 줄이려 했을까? 가난한 현실을 어째서 타개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

현대적 화법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왜 파이를 늘리는 대신 파이를 나누는 일에만 집착했을까? 왜 자유를 북진시켜 북한을 열고 강대국을 만드는 대신 이 좁은 남한 땅에 갇혀 평등, 평등, 분배의 노래만 하는가?

<멍에는 깨지고 빙하는 녹고 있다.>

이승만·박정희 시대의 가장 큰 업적은 민족의 유전자 변화다. ‘恨(한)’으로 상징되는 인사이더(insider)는 建國과 富國의 과정을 거치며 아웃사이더(outsider)로 체질을 바꿨다. 자유·개방·성장이라는 가치는 단순한 보수·우파의 가치가 아니라 우리의 고질적 유전병을 치료한 혁명적 패러다임이었다. 남은 과제는 평등의 확산이 아니라 휴전선 이북에 자유를 확산하는 것. 대한민국의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을 완성 짓는 일이다.

이승만·박정희 이후 국가의 깃발을 새롭게 제시한 지도자가 없었다. 어려운 게 아니다. 내향이 아닌 외향, 망해 가는 북한을 정리해 統一强國(통일강국)으로 가는 것이다. 서민과 중산층의 퍽퍽한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해법도 간단하다. 생존반경 자체를 넓히는 자유통일에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孫順(손순)과 向得(향득)의 길로 가면 민족의 미래는 없다. 성장이 아닌 분배, 수출이 아닌 內需(내수), 자유가 아닌 평등을 떠드는 작금의 흐름은 그래서 불길하다. 나라 전체가 안으로 썩는 형국, 북한은 없고 남한만 이렇게 살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언론은 어떤가?　보수매체라 하는 중앙일보의 김수길 주필은 1월4일 자 칼럼에서 94년 김일성 사망 당시를 적으며 “그때 조깅이든(김영삼이 방북해 평양에서 조깅하려 했던 것을 비유한 것) 조문이든 이뤄졌다면 남북관계는 크게 달려졌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남남 상황이 많이 변했다. 정부가 조의를 표하고 제한적이지만 조문단 반북을 허용했다. 남북관계도 오늘 우리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남북관계를 정립하는 데 남남의 지혜를 모을 때다”라며 이를 위해 “박정희 손바닥을 벗어나자”고 적었다.

칼럼은 “수출만이 아닌 내수를 키워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등 최근 이명박 정권이나 한나라당 기조를 그대로 읊어 놓았다. 북한에 민족의 정통성 일부를 떼 주고 적당히 잘해 보자는 것이다. 남한 국민의 불평·불만도 커지니 평등과 분배의 마약을 쓰자는 처방도 같은 맥락이다.

남한은 남한, 북한은 북한, 이대로 있자는 시각은 자칭 보수의 지배적 흐름이 되고 있다. 이런 주장은 북한 2400만 동족을 노예상태로 내버려 두자는 것이요, 아우성치는 남한 대중의 절망을 외면한 것이다. 이것은 正義에 반한다. 무엇보다 길을 열고 공간을 넓혀서 함께 잘 살아 보자는 민족의 통일 의지를 외면한 것이다.

북한이 열리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기 위해선 꼼수가 동원될 수밖에 없다. 이북엔 달러를 바치고 이남엔 조삼모사式 포퓰리즘으로 깨져 가는 한반도 현상을 막아야 한다. 결국 7천만 전체를 절망에 내모는 뻔뻔한 일이다. 지켜지는 것은 자칭 보수의 기득권뿐이다.

종북으로 가는 민주통합당, 이미 종북인 통합진보당은 절망의 사슬이 된 지 오래다. 20대 청년과 기회주의자들을 앞세워 개혁을 하자는 한나라당 역시 녹고 있는 빙하 위 북극곰이다. 이미 부서진 한반도 분단의 멍에를 보지 못하는 둔치들이다. 멍에는 깨지고 빙하는 녹고 있다. 이 땅의 청년이 진정한 비전의 통로가 자유통일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변화는 훨씬 더 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