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대한민국 대구에 거주하는 日本人 이케다 미에코(사진, 池田美江子) 씨가 <조갑제닷컴>에 기고한 수필입니다. 

1월 중순 동남 아시아 3개국 방문을 마치고 인천 공항에 돌아왔을 때였다.

'오늘 서울은 체감 온도가 영하 25도다.'

모르겠다...

아무리 상상해도 남국에서 돌아온 사람한테는 이해되지 않는 숫자이다.

지금 나에게 서울은 방문할 때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 주는 사랑스러운 장소가 되고 있다.

가능하면 그 때 그 <극한>을 깊이 경험하고 싶었지만, 시기적으로 무모한 일인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의 충고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인천 공항에서 대구 공항으로 향하게 되었다.

‘당시 이런 극한 속에서의 판자집의 생활이랑 도대체 ―.’

더위를 느낄 정도의 비행기 안에서 혼자 상상해 본다. 판자 한 장의 작은 오두막에서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체온만이 ―. 어머니가 아이를 품고 아버지도 아이를 품는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극도의 추위에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다음 번에는 꼭 달동네에 간다’ 라고 정했던 나에게 추위가 풀린 2월의 공기는 아주 부드러웠다.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혜화 역에 갔다. 혜화 역은 예전에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딸과 함께 연극을 보러 온 곳이다. 대구에서 서울에 와 설렘을 감추지 못하던 딸의 옆모습이 떠올랐다.

'이 역에서 걸어서 이화동 달동네에 갈 수 있다니 ―.'

이화동의 입구인 대학로에는 젊은이들이 <연극>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해서 발산하고 있다. 역동감 넘치는 학생의 거리는 건물에서도 주체적인 의지가 느껴졌다.

그 거리를 지나가면서 한 길 건너 비탈길을 올라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공기> 가 느껴졌다. 그 차이에 놀라서 무심코 뒤를 몇 번이나 뒤돌아 보았다.

언덕 위의 이화동은 어른들을 중심으로 <재개발> 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예술가 등의 도움으로 리 모델링하고 있었고 달동네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을 발산하고 있었다. 기존의 달동네 집에서는 위화감과 함께 수동적인 의욕이 느껴졌으며 그것은 희미한 희망이었다.

마치 한 순간에 시공간을 이동한 듯하다 ―.

병행 우주는 이런 느낌일까 ―.

겨울의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햇빛 속에서 나는 다른 차원의 시공간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 분위기에 취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갔다 ―.

그쪽 산 중턱에는 관광객으로 보여지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동시에 일본어도 들린다.

여기는 가이드북에도 실려있는 관광지인 모양이다 ―.

근대화의 그늘인 달동네가 세계에서 관광객을 받아들이는 관광지가 된 것이다 ―.

여기를 찾아온 관광객 중에 당시의 역사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

또 그런 관광객을 바라보는 이곳 주민들은 이 지역의 변화를 도대체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 보았다.

거기에는 <잘살기 기념관> 라고 힘차게 쓴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의 간판이 당시 이 지역의 존재를 제대로 주장하고 있었다.

‘잘살기 기념관’―.

살기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에 잘 살고 싶다라는 <삶> 에 대한 주체적 의지가 여기에  있었다!

<주어진 삶> <사는 것을 허락 받고 있다>라는 종교적인 절대적 존재에 의한 상대적인 인간으로서 <삶>이나 사상 철학에 따라 윤리 도덕적으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 라는 인간의 5감각에 의해서 만들어진 뇌, 그 뇌에 의해서 규정된 소극적인 인간의 <삶> 이 아니라

눈앞을 막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정면으로 마주 하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면서 적극적으로 열어 가는 <잘 살자> 란 존엄에 의한 주체적 의지!

이 간판의 이름 하나에 포함되는 말의 무게 속에 인간 개개인에 내재하는 강력한 존엄의 힘을 느꼈다―!

그럼 도대체, 현대인은 정말 <잘 살자> 라는 의지가 있는 것 인가.

1970년대 일본에서 <무기력*무감동*무책임> 이라는 ‘3無 주의’로 불렸던 젊은이들이 1980년대에는 그에 <무관심*무예의> 가 더해져 ‘5無 주의’ 로 불렸으며 이제 <무저항*무비판*무능력*무학력*무교양*무절조*무정견*무사상>이 추가되어 ‘13無 주의’ 라고 불리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매스컴 등이 요즘 젊은이들을 ‘N포세대’(*) 라고 부른다.

확실히 현대는 당시와 비교하면, 물질적으로는 풍족해져 남부럽지 않게 살아 간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마음 깊이 <잘 살고 있다> 라고 과연 말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잘 살고 있다>, <잘 살고 있지 않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당시 6.25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은 한국 국민은 전쟁으로 목숨까지 잃은 사람 몫까지 ‘살아야지’ 라고 강력하게 생각한 그 <기력>과 <책임>과 그에 따른 <감동>이 투명한 희망과 함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당시처럼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고, 사소한 일에도 감동할 수 있는 만남 그자체 로서의 <삶>을 얼마나 현대인이 지금 여기에서 느끼며,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관광지 <이화동 벽화 마을>로서 새롭게 변모한 달동네는 바로 40년도 안 되는 기적적인 짧은 기간 내에 경제 성장을 달성한 대한민국의 진취적 패기를 제대로 보여준 서울의 한 모습이다. ―.

내 기대에 결코 어긋나지 않은 <서울> 이라는 도시에 또 매료된다 ―.

 이 <잘살기 기념관>은 1965년 당시 대학 3학년이던 마대복씨가 불우한 환경에 놓인 옛날 자기 모습과 같은 아이들에게 구두닦이 등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배움의 장소를 제공한 야외 학습의 현장이었다.

불안정한 계단을 조심하면서 내려갔다.

계단 도중에 있던 3색의 가스 계량기와 페트병 뚜껑 2개로 만든 3명의 경비같이 보여지는 아이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치 미터 부분의 입에서 금방 수다 소리가 들릴 것 같다 ―.

여기의 리 모델링은 마대복씨와 함께 홍익대학 산업디자인 학과 학생들이 맡았다.

생명감 없는 곳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바로 이것이 예술이라는 창조의 힘이다 ―.

리 모델링(재생)은 그것을 다룬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 일어나는 자유로운 발상 속의 ‘놀이’이며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즐겁게 하고, 기쁨을 주기도 한다―.

계단을 다 내려간 곳에 당시의 사진과 설명문이 있었다.

당시의 사진을 응시한다 ―. 50년 전의 달동네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이 사진 속에 달동네에서 본 당시의 서울이 있었다. 이 사진의 주체가 존재하는 장소인 이곳도 <서울>이다.

특히 그 기념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삭발의 어머니, 채찍을 들다>라고 쓴 시와 그림 이다.

쑥쑥 자라나는 아들의 모습으로

숯 장사도 즐거웠습니다

팥죽 장사도 즐거웠습니다

남의 집 식모살이도 즐거웠습니다

머리를 잘라서 아들의 밥 그릇을 채우고

연탄을 팔아서 양은 대야로 기념하신 당신

당신의 행복은 그것이었습니다

한복을 입고 머리가락이 없는 머리에 천을 두르고, 오른손에 긴 채찍을 휘두르는 어머니.

그 앞에서 바지 자락을 걷어붙이고 종아리를 어머니를 향해 있으며 목을 움츠리고 있는 11세 아들.

이 시와, 이 그림의 배경은 이랬다.

대복 소년은 6.25전쟁으로 초등학교 5학년때 중퇴하고 매일 4km 떨어진 산에 올라 나무나 숯을 받아 다시 8km 걸어가서 나무를 팔아 생활을 계속하였다. 많은 짐을 짊어지고 매일 10km이상의 산길을 걷는 것은 11살의 대복 소년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그런 고통을 잊기 위해서, 형들이 가르친 담배를 대복 소년은 숨어서 피웠다. 어느 날 몰래 피우던 담배를 어머니한테 들키고 만다.

어머니 “아직 어린 나의 아들, 대복! 네가 나의 희망인데-!!”

대복 “학교도 못 가는데 무슨 희망이 있어요? ―”

어머니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굶어 죽어도 대복을 학교에 다니게 할거야...”

어머니로서 쑥쑥 자라나는 아들을 위해, 있는 것 이라곤 약간 길어진 머리 카락 뿐이었다. 그 머리를 잘라 가발 가게에 팔아서라도, 귀한 아들의 한끼를 채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어머니 ―.

그런 희망 그 자체인 아들이 미래를 비관하고 담배를 피우며 생활의 괴로움을 달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어머니의 마음은 도대체 ―.

그런 아들을 보며 울면서 채찍을 손에 들고 작고 둥근 종아리를 향해 그것을 엄격하게 강하게 휘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때의 어머니의 심정은 ―.

<삶>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그 것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시 어머니들은 <삶>이라는 <의지>를 몸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바로 이런 어머니의 모습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이 나라는 이런 어머니들의 아이를 위한' 살아 가게 하다 '라는 존엄의 의지 그 자체인 무한한 절대적 사랑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한편<잘살기 기념관>에 온 젊은 사람들은 당시 교복을 빌려서 입고, 마음에 드는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 찍기에 바빴다.

지금 이 나라에는 이 시와 이 그림의 메시지를 받아 들을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풍부한 마음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도대체 있을까 ―.

그 기념관을 나와서 길을 따라 가다 보니 재개발된 <벽화 마을>의 모습에 압도 당했다.

달동네 자체가 하늘 캔버스가 되었다―.

이것도 재개발이라는 창조의 <의지>에 의한 혁신적 힘의 결과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조금 더 올라가니 성벽을 따라서 길이 있었다.

멍하니 그 길을 걸었다.

그렇다, 500년간 이어졌던 조선 시대 당시에는 여기도 훌륭한 성내였다 ―.

머릿속에는 중세·근대·현대라는 시대가 무질서 하게 교차 되는 ―.

지금은 도대체 언제인가 ―.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가 ―.

이화동의 신기한 시공간은 나를 완전히 시대의 미로에 빠지게 한다 ―.

또 하나의 달동네인 성북동으로 향했다.

달동네는 달이 손에 닿을 것 같은 정도의 높은 곳에 위치하는 마을을 의미한다.

저번에 경상북도에 있는 구룡포에 친구와 함께 갔을 때 '일본인은 평지에 살고 한국인은 고지에 살았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높은 곳에 사는 의미를 알게 된 것을 기억한다.

바닷가 고지대의 별장이나 아파트의 고층은 평수가 넓고 전망이 좋다는 이유로 가치가 있고 비싸다라는 개념 밖에 없었던 나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일제시대 때 이방인인 일본인은 살기 좋은 평지를 잡고 그 땅의 주인인 한국인들은 생활하기 어려운 산의 위쪽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당시 그 사실을 알고 가슴 아파했던 일본인은 있었을까 ―.

결국 이 달동네도 이 시대에서 내몰렸던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시대에 밀려 살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비둘기에 비유해서 지은 시가 이 성북동에 있다. 그 <성북동 비둘기>를 만나고 싶어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갔다.

성북동의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라고 시작한 시는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는 김광섭 작 <성북동 비둘기>이다.

이 시는 당시 근대화에 따른 자연 파괴와 인간성 상실이란 사회 문제를 표현 하고 있다.

집을 세우기 위해 바위를 부술 필요가 있는 성북동.

그 성북동 비둘기는 돌을 깨는 메아리 소리에 떨면서 안도할 장소를 잃어버리고 쫓기는 존재가 되고 만다 ―.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라는 정체 불명의 거인은 존엄성 그 자체인 자연과 인간을 소외하고 무참히 잡아먹어 버린 것 같다 ―.

그런 시대를 견디고 살아 낸 성북동의 주민들이 모여있는 장소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끌리듯 왔다―.

따뜻한 햇빛이 쏟아지는 오후의 달동네.

갓 태어난 강아지를 필사적으로 지키는 엄마 개와

그 엄마 개를 부드럽게 지켜보는 달동네의 할머니.

이 모든 광경을 통해서 이 땅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온 <삶>에 대한 존엄의 강한 <의지>와 절대적 사랑의 힘이 느껴진다 ―.

그때 근처 작은집 대문에서 '할머니!'라고 하며 나오는 대학생 같은 손자가 문 밖에 앉아 있던 할머니에게 다가가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의자에 앉아 계신 할머니의 눈길은 그 청년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아아.., 이 할머니가 그<삭발의 어머니>였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그 시대에 어렵지만 힘껏 살아 와서 어린 아들을 키우고―

그 아들이 대학에 가서 사회에 나오고 결혼해서 가정을 갖고 애를 낳고 ―

한국 수도인 서울의 주민으로 이 나라의 근대화를 이끌며 그 토대를 만들어 ―

그 토대 위에 지금은 이런 믿음직한 손자와 함께 <살아 있다>!!! 라고…

이 할머니의 모든 것을 살아 낸 그 따뜻한 시선 깊숙한 곳에 있는 행복이란 도대체 ―.

세상에 존재하는 부유층, 자산가, 부자로 불리는 물리적으로 아무런 불편 없는 <행복>과 이 달동네의 할머니의 <행복>과는 비교하는 것 조차도 불가능하다 ―.

살아있는 지구의 중심에서 뜨겁게 용솟음치는 마그마처럼

한 인간을 존재시키는 조용히 용솟음치는 어머니의 사랑 ―.

인류는 모두 이런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 속에서 존재하고<살아 있다>!!!

인류역사의 토대에 맥맥히 흐르는―

너무 짙어서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

너무 깊어서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

너무 관대해서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

너무 숭고해서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

그런, 존엄의 의지에 따른 어머니의 사랑이야말로

바로 이 대한민국의 자랑 이자 인류 역사의 자랑이다!!!

마음 깊이 결심했다 ―.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어머니의 모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

 2016년 4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