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윗층에서 아이들이 뛰기 시작했다. 그치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콰당탕!'거렸다. 낮인데도 그 소음의 정도는 이 남자(윗집)가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인한 살인사건이 또 발생했다. 위층의 소음 때문에 시달리던 아래층 30대 남성이 위층으로 찾아가 60대 부부에게 흉기를 휘둘러 부인은 숨지고 남자는 중태라는 보도다. 흉기를 휘두르고 달아났다가 경찰에 붙잡힌 범인은 “층간 소음 때문에 경비실을 통해 위층에 얘기하면 조금이라도 시정해야 하는데 ‘알았다’고 대답만 하고 번번이 무시했다”며 “위층 사람들이 아래층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사람들은 "시끄럽게 한다고 사람 죽이면 어떻게 하느냐?"며 범인을 지탄한다. 공감한다. 그러나 그 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항의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정말 죽이고 싶도록 밉다. 그 때는 시끄러워서가 아니라 고통을 호소했음에도 무시하는데 대한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다. 특히 살인을 저지른 이 젊은이는 폐암에 걸린 노모를 간병하고 있었다는데 윗층의 배려가 더욱 절실한 형편이었을 것이다. 윗집 사람들이 배려해주지는 못할망정 의도적이든 아니든 사람 마음을 날카롭게 몰아간 것이다.

사람은 항상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혹 남에게 피해를 준 경우 충분히 사과하고 재발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이 타인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며, 공동체를 유지해 가는 구성원의 기본 소양이다.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본인들에게도 불행이 닥치고 상대방은 살인자로 만든 것이다. 안 겪어도 될 일인데 말이다.

오래 전 내가 직접 겪은 얘기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살 때였다. 위층 남자가 거의 매일이다시피 밤 자정이 넘어야 퇴근했다. 이 남자가 퇴근하면 조용하던 윗집은 갑자기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의 두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아빠가 아침 일찍 출근하는 바람에 하루종일 얼굴을 못 보고 기다리다가 드디어 한밤중에 아빠가 나타나면 아이들은 반가워 뛰며 난리를 친다. 아빠 역시 사랑스런 아이들 얼굴을 보는 순간 하루의 피곤이 풀리고 새삼 생기가 도는 듯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한밤중에 이 소란스러움을 겪으며 잠을 설쳐야 하는 우리 가족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몇 번인가 관리소를 통하기도 하고 직접 찾아가 조심해 달라고 부탁도 하였다. 어떤 때는 참기 어려워 밤중에 직접 올라가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 때마다 '죄송하다'고만 하고 변화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휴무일 낮에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이 남자를 만났다. 마침 잘 되었다 싶어 내 집으로 데려갔다. 아내한테 간단한 술자리를 봐 달라고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는 모 은행 전산센터에 근무한다고 했다. 당시 금융전산화가 급속히 개발되는 시기로 늘 퇴근시간이 늦었다. 그래도 그렇지 밤 늦게 퇴근했으면 아랫집을 생각해서라도 조용히 해줘야지 밤늦게 아이들이 뛰고 떠드는데 같이 분위기에 휩쓸리다니 생각이 좀 부족한 사람 같았다. 어떻게든 협조를 구하려 오히려 내가 저자세가 되어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는데 마침 윗층에서 아이들이 뛰기 시작했다. 그치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콰당탕!'거렸다. 낮인데도 그 소음의 정도는 이 남자가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남자의 얼굴이 그제서야 심각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후 확실하게 윗집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두어 달 후 그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아마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라면 1층을 얻어 갔을 것으로 여겨진다. 내가 출근하고 없는 날 이사를 가며 두 부부가 아내를 찾아와 '그동안 폐를 끼쳐 너무나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고 갔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그나마 결과가 괜찮은 편이다. 한밤중에 잠을 못 자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할 때는 정말 찾아가 흉기를 휘두르고도 싶은 충동이 솟는다. 한 순간에 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으로 이해할 만하다. 죽은 사람을 보고 차마 '죽을 짓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졸지에 살인범이 된 사람에게 동정이 안 갈 수가 없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지금 남의 사정을 배려하지 않는 풍토로 인한 흉흉한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지만 풍토 일신을 위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