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皇'이라는 고유명사로 부르지 않고 '日王'으로 쓰는 것이 옳은가. 민족적 자존심도 중요하겠지만 역사상의 단어에 불과한 말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닌가.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이 좁고 인구가 주변국과 비교할 때 많지 않아서 그런지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여론의 다양성이 부족한 듯하다.

특히 모든 신문이며 방송이 어느 회사 할 것 없이 다들 입을 모아 일본의 君主를 가리켜 '天皇'이라는 고유명사로 부르지 않고 '日王'이라고 부른다.

해방 직후부터 1980년대 초에 이를 때까지는 국내 언론사 모두 천황이라고 썼다. 그런데 80년대 말 한 언론사가 일왕이라는 표기를 쓴 뒤로 모든 언론사가 따라서 한다. 해방 이후로 시간이 지날수록 반일감정이 풀리는 게 아니라, 식민지 시절을 경험해보지도 않은 2세대, 3세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반일감정에 열을 올리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다.

적어도 주류 신문이나 방송뉴스중 한 군데 정도는 천황이라고 불러줄 수도 있는 것인데 그리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외교부 사이트에 가보면 '아키히토 천황'이라는 표기가 공식적으로 분명히 되어 있음에도 민간언론이 여기에 따르지 않는다. 일본과 관련된 일은 정부와 민간이 따로 노는 한국이라서 그런 모양인 듯도 하다.

그러면서 일본관광가이드 같은 책자에서는 '일왕의 皇居'라고 적는 웃지 못할 자가당착을 범하기도 한다.

정 그렇게 자존심 때문에 왕으로 격을 낮춰 적을 거라면 차라리 '日本國王' '日本王'이라고 적어야 맞을 것이다. 우리가 영국의 군주를 칭할 때 '英王' '英女王' 이라고 적지 않는다. 일본의 정식국호는 '日本國'이지 '日'이 아니다. 日王은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태양왕'이라는 해석이 된다. 이러한 표기를 굳이 쓰고 싶은가.

국내 언론사들은 보통 '아키히토 일왕' '히로히토 일왕'라고 천황의 이름을 직접 적시하는데, 잘못된 건 아니겠지만 昭和 천황이라고 연호를 붙여 부르는 게 맞다. 만일 아키히토, 히로히토 식으로 천황의 이름을 그대로 부를 거라면 초대 신무천황이나 근세의 명치천황, 대정천황도 이름을 표기해야 일관성이 있다 할 것이다.

20세기 초반 우리 한반도를 지배했던 일본이란 나라의 정식 국호는 '大日本帝國'이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가보면 앞의 큰 大 자를 떼고 그냥 '일본제국'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교과서나 언론에서는 흔히 일제라 쓰거나 제국주의 일본이라고 하는 식이다. '대영제국'이란 말은 쓰면서 '대일본제국'은 안된다고 한다. 민족적 자존심도 중요하겠지만 역사상의 단어에 불과한 말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