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박근혜 대통령의 심복(心腹)으로 통하는 이정현 의원이 새누리당 대표로 선출됐다. 지난 총선 밀짚모자와 자전거를 타고 농심(農心)을 자극해 승리를 거머쥔 그는 당대표 선출에서도 '우직하지만 개성 있는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부각시켜 새누리당의 '호남 출신 첫 당대표'라는 영예를 차지했다.

'이정현式 개성(個性)'은 청와대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도 발휘됐다. '대통령에게 맞서는 사람은 여당 의원 자격이 없다'라며 동지(同志)들에게 선전포고에 가까운 의중을 피력해 기겁하게 만든 것이다. ' 당내 계파는 없다'던 말이 귓전을 맴도는 와중에 비박(非朴)계를 조준한 모양새라 동료 의원은 물론 언론조차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개성을 넘은 오버(over)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옴직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관례에 따라 전직 대통령을 예방함에 있어 최우선인 전두환 前 대통령을 뒤로 한 채 이회창 前 총리를 찾아갔다. 이는 이명박 前 대통령 또한 뛰어넘는 괴이(怪異)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더 기가 찬 건 전두환은 끝내 찾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론은 '호남 출신이라 좀 불편했을 것..'이라고 분석했으나 본인 입으로 피력한 게 아니니 추측일 뿐이다. 여하튼 기본적 예의(禮儀)와는 거리가 먼 행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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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술 더 뜨는 일은 또 벌어졌다. 어제 김대중 前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DJ의 육성(肉聲)이 담긴 영상이 나오자 눈물을 보이더니 기자들 앞에서 '호남의 위대한 정치 지도자다, 어릴 때부터 롤모델이였다'는 신조(信條)를 쏟아낸 것이다.

이정현이 호남 출신이라 보수당에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애쓴 건 안다. 그간의 고충(苦衷)을 회상하며 울컥했을 심정도 이해한다. 다만 전두환은 엄연히 전직 대통령이고 새누리당의 원조(元組)격인 민정당을 창당한 정치 선배임에도 예방을 생략한 채 추도식에서 눈물까지 보인 건 이해할 수 없다. 그것도 영결식도 아닌 몇 년이 지난 추도식에서 말이다!

김대중은 재임 시절 '정치적 화해'를 강조하며 청와대 만찬에 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을 초청해 앙금을 해소하려 했다. 헌데 '호남의 위대한 정치 지도자'라는 말에서 보듯 이정현은 김대중의 뜻과는 반대로 '호남의 한(恨)'만 대변하듯 느껴져 불편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을 먼저 찾아간 것도 해괴한 일이지만 전직 대통령이면 싫든 좋든 대한민국의 대통령인데 '호남'을 운운한 건 부적절한 언사가 아닐 수 없다.

이정현은 당 대표가 되고나니 새누리당이 영남에 뿌리를 둔 보수정당이라는 걸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가? 만약 호남을 의식해 전두환을 찾지 않은 것이고 주군(主君)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명박에게 껄끄런 무언가가 남았다면 매듭을 풀던지 아니면 대표직을 내놓는 양단 택일을 하는 게 맞다. 박근혜 대통령도 새누리당의 일원일 뿐이다. 당보다 주군에 대한 충절이 우선이라면 입각(入閣)을 하는 게 당과 본인을 위해서도 낫다. 주지 스님이 됐다고 사찰을 점령(占領)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휘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