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에 의하면, 9월5일 중국 항저우(杭州) 서호(西湖) 국빈관에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을 만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모두 발언에서 “1930년대 김구(金九)가 이끌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일전쟁의 와중에서 항저우에 한때 머물렀으며 이때 중국 인민이 한국 임시정부에 보호를 제공했다”는 사실과 함께 “김구의 아들 김신(金信) 전 한국 공군참모총장이 1996년 항저우 인근 하이엔(海鹽)을 방문했을 때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중국 고시(古詩) 구절로 그때의 일을 기억한 일이 있다”는 고사(古事)를 거론했다고 한다. 

시 주석의 이 발언에는 언외(言外)의 함의(含意)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과거 일제(日帝)의 한반도 강점 기간 중 중국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거론함으로써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금 한중 간에 첨예한 대치를 빚어내고 있는 사드(고고도 탄도탄 요격시스템) 한반도 배치 결정을 '음수사원'이라는 ‘보은(報恩)’의 차원에서 재고할 것을 주문(注文)하고 있는 듯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 주석의 이 같은 역사적 사실 인용에는 적지 않은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시 주석에게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 우선 가장 먼저 그에게 일깨워 주어야 할 사실은 1930년대 중일전쟁의 와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게 지원을 베풀었던 중국의 정치실체는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이 탄생하기 전에 중국 대륙을 통치했던 쟝제스(蔣介石)의 ‘중화민국(中華民國)’이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일제 강점 시대 중국에서 전개했던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음수사원’의 보은의 대상은 지금 타이완으로 쫓겨 가 있는 쟝제스의 ‘중화민국’이지 1949년10월10일 출범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다. 

이 같은 사실에 입각한다면 이번 항저우에서 시 주석이 입에 담은 ‘음수사원’은 그가 박 대통령을 상대로 중국의 고대 군담(軍談)에서 등장하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계책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사실은, 지금도 뒷맛이 개운치 않지만, 작년 10월 중국이 이른 바 ‘중국판 전승절(戰勝節)’ 기념 천안문(天安門) 광장 관병식(觀兵式)에 박 대통령을 초청했던 것에 관해서는 이 역시 시 주석이 박 대통령을 상대로 문제의 ‘차도살인’ 계략을 행사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시비가 없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중국의 ‘전승절’은 1945년 8월15일 일본 도쿄 앞바다의 미 전함 미주리호(USS Missouri) 함상에서 있었던 일본의 무조건 항복의 후속 조치로 중국 대륙을 침략했던 일본군이 현지의 중국 정부 당국에 항복 절차를 밟았던 것을 기념하는 날이고 따라서 이 ‘전승절’의 중국측 주인공은 역시 당시 현지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았던 쟝제스의 ‘중화민국’이지 그때까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중화민국’의 법통을 계승하지도 않은 ‘중화인민공화국’일 수 없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순수하게 이론적으로 말한다면,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중국의 ‘전승절’은 당연히 타이완의 ‘중화민국’ 정부가 주최하는 '전승절'이어야 하지 남의 것을 우격다짐으로 '들치기'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린 ‘중화인민공화국’의 ‘전승절’이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알면서도 그랬는지 몰라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진핑 정부의 ‘차도살인’ 전술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해준 결과가 되었었던 것이 또한 사실이다. 

사실은, 한중관계를 역사의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정부와 국민이 아직도 입안에 담은 채 내뱉지 못하는 쓰디쓴 대목이 있다는 사실을 중국인들이 무시하고 묵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6·25 전쟁의 어두운 역사다. 이제는 학계의 정설(正說)로 확립된 사실이지만, 중국은 1950년 러시아와 더불어 공산 북한의 배후세력이 되어 북한의 6·25 전쟁 도발에 공조했을 뿐 아니라 유엔군의 반격으로 북한이 와해(瓦解) 직전의 위기에 몰렸을 때 소위 ‘인민지원군’이라는 명칭으로 대규모 중공군을 한반도에 파견하여 엄청난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와 함께 전쟁의 교착 상태를 초래하여 결국 1953년 군사정전을 불가피하게 만듦으로써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시키고 통일을 가로막은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게 되어 있다. 

그 같은 행위의 주체가 시진핑 주석이 될 것인지 아니면 그 후임자 가운데 어느 누가 될 것인지 아직 예단(豫斷)할 수는 없지만 ‘중화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간의 국가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특히 중국의 6·25 전쟁 참전 문제에 관하여 언젠가 대한민국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내용과 형태로 중국측의 입장 표명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역사적 당위의 명제가 아닐 수 없다. 상황이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만약 중국이 이번 사드 사태를 ‘음수사원’의 ‘차도살인’ 계책으로 어물쩍하면서 중국의 입장을 대한민국에 강요하려 한다면 그것은 결코 용납되기 어려운 새로운 중국판 ‘대국주의’의 발로(發露)가 아닐 수 없다. 

시진핑 주석은 “(본인의) 넓지 않은 어깨에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밤잠을 자지 못하면서 걱정하고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절박한 심경 표명에 보다 허심탄회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결국, 문제는 박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것으로 귀납(歸納)될 수밖에 없다. 이번 시 주석과의 회담을 통하여 박 대통령은 ‘사드’ 문제에 관하여, 인과관계(因果關係)의 차원에서 가장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항저우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끝난지 1시간 후에 북한이 또 다시 사정거리 1천km의 미사일을 일본 영해로 발사했다는 것은 시 주석이 박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6자회담’을 통한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북한이 끌려 들어올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중국의 선택은 일단 대한민국이 ‘자위권’의 차원에서 결정한 ‘사드’ 한국 배치를 일단 수용하고 동시에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 대열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가할 뿐 아니라 중국만이 가지고 있는 대북 영향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박을 난파시킴으로써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사드’ 배비를 중도에 중지시키던가 아니면, 이미 도입, 배치되었을 경우, 이를 철거할 수 있게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