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충격에는 역시 큰 충격으로 대응해야 한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재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청와대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이 오늘 아침 사흘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구치소에서 서울중앙지검 별관으로 이송되었다. 언론을 통한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그녀의 모습을 국민들과 같이 박 대통령도 보았을까? 보았다면 심정은 어떠할까? 안타까워 가슴이 미어질까? 괘씸한 생각에서 분노에 떨까? 혹은 '모함'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세상을 원망하고 있을까?

박 대통령은 최순실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멘토였던 최태민에 대한 많은 의혹 제기에 대해 믿지 않았다. 아버지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중앙정보부 조사보고나, 아버지가 시해된 후 합동수사본부의 조사보고에도 이를 모두 부정했다. 가까이 하지 마라는 대통령이었던 아버지의 충고도, 최근 알려진 바로는 어머니 육영수 여사까지도 충고했다는데 역시 듣지 않았다. '모함'이라고 했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언론 인터뷰에서 '(최태민이) 죄가 없었기 때문에 감옥 가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최태민을 감옥 보내려면 박근혜 자신도 감옥에 가야 할 상황이었다. 박정희와 육영수의 딸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이 배려해 준 사실(필자 해석)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우매하다.

박 대통령은 최태민 父女에 꽂혀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신을 밀어준 대한민국 국민들을 배신했다. 내가 배신이라 쓰는 것은 최태민과 그의 가솔들과 엮인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 부인하며 철저히 속여 왔다는 것이다. 말이 나오면 심지어 '천벌을 받을 짓'이라고 까지 격앙하며 부인해 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40년이 넘도록 깊은 유대를 이어왔다는 데 충격 받지 않을 수 없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거짓말을 해도 박 대통령은 거짓말 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인식은 지지세력에게는 힘의 원천이요 반대세력에게는 절대적인 위협이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을 속여 온 것은 분명 배신이다.

어떤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적에게 핵개발 자금을 대 주고 사실상의 국경선(NLL)을 무력화 시키려 한 반역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반역질은 국민들에게 이미 어느 정도 면역이 되어 있었던 것이고, 박 대통령이 한 거짓말과 별 볼 일 없는 아줌마에게 농락당했다는 인식은 면역되지 않은 국민들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이제 애국보수 국민들에게 박근혜는 장기판에서 지켜야 할 '漢'이나 '楚'의 장수가 아니라 바둑의 '사석(捨石)'으로의 가치만 남았다. 큰 틀에서 박 대통령의 하야는 돌을 던지는 게 아니라 사석 처리로 봐야 한다. 즉 제물이라도 되는 게 그나마 남은 쓰임새일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이 불거지자 처음부터 주장했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자. 이제 버티어 봤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공무원들부터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국군인들 영이 서겠는가? 외국 사절들은 또 어떻게 맞을 것인가? 그야말로 국정 공백이다. 남은 1년 4개월은 임기의 30% 가까이나 된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이렇게 버티는 것은 박 대통령 자신이나 나라를 위해서 옳지 않다.

박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인식되어 왔던 반기문 유엔총장의 지지도가 독보적 위치에서 2위로 추락 당했다는 소식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애국보수 진영에서 누굴 내세워도 역부족이다. 이대로 가는 것이야말로 '돌을 던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큰 충격에는 역시 큰 충격으로 대응해야 한다. 판을 흔들어야 한다. 국방? 경제? 이 역시 이대로는 안 된다. 흔들어라! 어쩌면 대한민국이 재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