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모두에게 묻는다. 국정농단 소동으로 반역행위의 문제점은 묻혀도 좋은가? 20161105
이강호

자연인 박근혜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자기 자신이 "저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픕니다“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근혜에 대해서라면 다르다.

대통령은 마음대로 그만둬서도 안 된다

대통령은 개인 이전에 헌법기관이다. 헌법기관으로서의 대통령직은 누가 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맡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직과 관련해 정말로 중요한 원칙은 하기 싫다고 해서 마음대로 그만둘 수 있는 자리도 아니라는 것이다. 대통령직의 임기는 그 권한의 기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책임의 기간이기도 하다. 대통령직을 맡은 자는 주어진 임기 동안 헌법상의 책무를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통령은 하고 싶다고 “해먹는” 자리도 아니지만 그 누군가처럼 “못해먹겠다”고 때려치워도 좋은 그런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이 “부덕의 소치”를 자인하며 하야(下野)를 하는 것은 그 순간은 정치적으로 그럴 듯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근대 입헌국가에 합당한 행위가 전혀 아니다. 그것은 법이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인치(人治)의 시대에나 어울리는 전근대적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전근대인 조선시대에도 함부로 그러지는 않았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봉건적 덕치의 구호로 통치가 이뤄지는 나라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의해 통치되는 법치국가이다. 법치국가는 법적 절차에 최종적 권능이 주어져 있다. 공적 문제를 법 절차가 아니라 정서와 감정에 기대서 푸는 것은 법치국가다운 자세가 아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나은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동정여론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 덕분에 오히려 최순실 사건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자연인 박근혜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인으로서의 박근혜는 정말로 용서받기 어려운 최악의 인물로 남게 될 것이다. 가혹하게 말하자면 하야는 결국 동정을 구하여 책임을 모면하고자 하는 ‘먹튀’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기록되게 될 것이다.

헌정의 안정성은 국민을 위한 것이다

지금 흥분한 적지 않은 국민들과 그에 편승한 야당세력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고 있다. 불순한 무리들은 늘 이러한 사태를 바라마지 않았을 터이니 새삼 논할 가치도 없다. 그들이 언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기는 했었나? 하지만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찾아야 한다. 박근혜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다. 하야를 외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정적 안정성을 해치는 자해행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의 헌법적 보장은 그 직을 맡은 자연인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법치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헌정적 안정성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정성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대한민국 국민 자신을 위한 것이다. 1987년 이후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임기 말이면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갖은 정치적 스캔들에 휩싸이며 지지도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일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문에 임기를 마치지 못하게 한 경우는 없었다. 그것은 그 개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

87년 체제는 수많은 약점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적어도 이제 대한민국은 헌법과 법률로 보장된 정치적 절차가 있고 그에 따라 정치적 심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소중히 하고 있었다. 그 질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반복되는 그 수많은 추문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통령들이 어떻든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걸어서 나올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헌정적 안정성을 위한 좋은 전통의 축적 과정이었다.

졸속으로 예견된 불행을 자초할 셈인가?

지금 길거리의 외침으로 대통령을 하야하게 한다면 1987년 이후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축적해온 그와 같은 안정적인 정치적 전통을 결정적으로 해치게 된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게 되는지는 하야를 외치는 야당세력들은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하야를 하면 이후 60일 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그에 어울리는 단어는 한마디로 ‘졸속’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야당은 분노한 여론을 등에 업으면 정권을 손쉽게 거머쥘 수 있다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졸속으로 치러진 대선으로 탄생한 정권이 과연 얼마나 정치적 안정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흥분은 결국은 가라앉기 마련이다. 냉정이 찾아들면 국민들은 졸속으로 치러진 대선으로 탄생한 정권을 직시하게 될 것이다. 정권을 잡은 자들은 희희낙락하겠지만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야당세력에 결코 마음을 주지 않는 반대편의 국민들은 정반대의 느낌을 갖기 시작할 것이다. “정권을 사실상 날치기 당했구나”라고.

새로운 정권이라고 해서 지고지순한 정권일 까닭이 없다. 아무리 경계를 해도 어디선가 추문의 폭발력은 축적될 것이고 또 터져 나올 것이다. 정치적 실수나 정책적 실패가 없을 수도 없다. 그러면 그때 졸속으로 탄생한 정권은 그에 어울리는 위기를 맞을 것이다. 똑 같은 논리로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 것이고 ‘새롭게 형성된 전통’ 즉 ‘박근혜의 선례대로’ 당연히 하야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또 반복될 것이며, 그런 과정이 되풀이 되는 가운데 대한민국은 급전직하로 추락할 것이다. 지금 하야를 외치는 야당세력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인가?

국정농단으로 하야를 해야 한다면 반역행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예견된 불행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야당세력들이 끝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밀어붙이겠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이 하야를 해야 한다면 적과 내통하는 ‘반역행위’를 한 정치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가가 최종적으로 절대로 용서 못하는 죄가 있다. 바로 반역행위이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차적 책무는 생존 자체다. 국가는 그 구성원인 국민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안정적 존립의 태세를 굳건히 해야 한다. 그래서 국가는 그 생존과 존립에 위해를 가하는 반역행위는 단호히 처단하게 된다. 그것은 권리를 넘어선 의무다.

자유민주 체제는 관용의 체제다. 그러나 아무리 자유민주국가라 해도 반역행위에 대해선 관용을 베풀 권리를 갖지는 못한다. 국가의 존립은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그 안전을 위협하는 반역행위는 국민을 위해 가차 없이 처단할 수밖에 없다.

국민 모두에게 묻는다. 국정농단 소동으로 반역행위의 문제점은 묻혀도 좋은가? 그리고 야당세력들에 다시 묻는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기 전에 문재인의 반역행위에 대해 ‘그에 합당한 조치’부터 먼저 자청할 용의는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단지 정권을 날치기할 불순한 의도 이상이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야당들이 대한민국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은 무분별한 선동은 거두어들여야 한다. 국민들도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스스로 사과하고 자인했듯이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사건과 관련해선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이 구체적으로 어떠하고 또 어느 정도인지 조사가 되고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할 것이다.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이제 법치가 작동하지 않고 더 이상 필요도 없는 나라로 전락할 것이다.

법치가 작동하지 않고 필요도 없는 나라는 이미 국가가 아니다. 그것이 곧 국망(國亡)임을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