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9
이강호

2008년 광우병 소동 때 길거리에 나섰던 중고등학생들이 들고 나온 구호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스무 살까지는 살고 싶어요.” 그런데 미국 쇠고기를 먹고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학생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도 듣지 못했다. 당시 어떤 여배우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미국 쇠고기를 먹을 바에는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겠다.” 그러나 얼마 뒤 그 여배우는 청산가리를 먹는 대신 미국에서 햄버거를 사먹었다.

광우뻥 소동의 반성도 없이

광우병 소동 8년 뒤인 지난 7월 미국의 햄버거 프랜차이즈 하나가 한국에서 문을 열었다. 인파가 몰려 대기 줄만 500m에 달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무더위가 한창인 한여름 날이었다. 하지만 줄을 선 사람들은 매장 입장에 5시간을 넘게 기다리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했다.

이 미국 햄버거에 들어가는 고기 재료는 당연히 미국산 쇠고기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 송송 구멍 탁”이라 했다. 그런데 11월 14일 현재까지 이 햄버거 가게를 다녀간 사람들이 ‘34만 5천 명’이라 한다.

광우병 소동 당시 선동에 휩쓸렸던 대중들이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특별히 들어본 바는 없다. 하지만 예의 햄버거 가게뿐 아니라 기왕의 이러저러한 햄버거 패스트푸드점들이 여전히 성업 중인 걸 보면 ‘뇌에 구멍이 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음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 휩쓸렸던 ‘광우병 대중들’도 지금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광우병 소동은 분명 광우뻥 광란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점 대다수 국민들은 이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반성은 없었다. 대중들은 맘 편하게 잊어버렸고 ‘뻥’에 편승해 선동을 일삼던 야당 패거리들은 그냥 안면몰수일 뿐이었다.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을 세우자고?

다시 군중들이 광화문을 메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순실 사건이 야기한 실망과 모욕감이 큰 만큼 대중들의 분노에는 어느 정도는 합당함이 있다. 그러나 언론들이 연일 쏟아내는 갖은 의혹 운운을 보면 8년 전 광우병 광란 때의 ‘뻥’들과 차이를 느낄 수 없다. 그 뻥에 또 뻥을 더해 대중들을 선동하며 편승하려 날뛰는 야당 패거리들의 행태도 변함이 없다.

이번에도 중고등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앞세운 구호가 이랬다.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 - 중고생 혁명지도부. “중고생이 앞장서서 세워낸 혁명정권”의 통치를 받아들일 생각이 누가 있는지 궁금하다. 문재인, 안철수 등을 위시하여 아이들 손에 그런 플래카드를 들려 앞장서게 하고 함께 시위를 한 자들은 그런 용의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민 대다수는 그런 홍위병 놀음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을 것이다.

옳고 그름은 ‘쪽수’의 문제가 아니다

12일에 이어 19일에도 시위가 있었다. 언론들은 여전히 과장된 보도를 쏟아냈지만 시위 인파의 수는 줄었다. 12일에는 100만이라 하더니 19일에는 50만이라 하고 있다. 100만 50만 운운 자체가 턱없는 과장이지만 어쨌든 절반으로 준 셈이다. 열기도 약화됐음을 현장에 가본 사람들은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12일이나 19일 모두 적지 않은 수였다는 사실 자체를 외면할 이유는 없다. 다만 100만이 아니라 설사 500만이 집결해 시위를 했다 해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옳고 그름은 ‘쪽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광우병 소동 때는 지금 이상 가는 인파가 수개월 동안 그야말로 난장판을 연출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숫자가 날뛰었다 한들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대통령 스스로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를 한 만큼 대중들의 분노에 기본적인 정당성이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동기의 정당성이 그를 명분으로 한 주장과 행위 모두를 자동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명국가다움의 요체는 감정과 정서가 아니라 이성적 형식에 있다. 동기의 정당성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절차를 얼마나 잘 준수하느냐가 핵심이다. 그래서 모든 문명국가는 법치국가다. 법치국가는 범행 현장에서 체포된 현행범이라 해도 반드시 재판의 절차를 거쳐 형을 확정 짓도록 한다. 광장에서의 하야 퇴진의 외침으로 결딴을 내려 하는 것은 그 같은 법치국가적 원칙에 어울리는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인민재판에 의한 즉결처분과 다르지 않다.

인민재판을 좋아하다간

인민재판의 소동에 갈채를 보내는 자는 언젠가는 그 자신이 그러한 광란의 제물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중적 광기를 부채질해 그에 편승하려 했던 정치인부터가 그런 운명을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치인만이 아니다. 종래에는 대중 자신들도 한명씩 그런 꼴을 당하게 될 수 있다. 그런 것을 원하는가?

한국 사회에선 민중 대중이라는 말만 갖다 붙이면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민(民)이라고 다 같은 민(民)이 아니다. 단순히 시민(市民)으로도 부족하다. 국민(國民)이 아니면 안 된다. 국민은 국가를 전제로 한 개념이며 무엇보다도 법적 개념이다. 민중 대중은 국가나 법을 전제로 한 개념이 아니다. 국가의 주권자로서의 국민다움은 그냥 자동적인 게 아니다. 법질서를 지킴으로서 비로소 국민국가의 주권자로서의 국민다움이 완성된다.

야당들은 지금 혁명선동을 하듯이 날뛰고 있다. 이에 휘둘리는 건 광우뻥에 놀아난 바보 꼴을 또 다시 자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바보 꼴로 놀아나다간 정말로 “중고생이 앞장서서 세워낸 혁명정권”의 광기 아래 놓이게 될 수도 있다. 그러고 싶지 않다면 ‘무분별의 대중’이 아니라 ‘분별력을 가진 국민’의 자세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