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작은 테두리 내에서 부당한 일을 보면서도 침묵했으면서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더 넓은 세계의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나? 곧잘 하는 말이 있다. 기독교인들이 전도에 애쓰는 건 다 좋은데, 되도록 자기 주변부터 먼저 전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내 어머니, 내 가족도 전도 못하면서 멀리 전도하러 다니는 건 어딘지 모순이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보수우파 진영에서 이런저런 얘기하는 이들. 평소의 노력과 고생은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예컨대, 일전에 박원순 시장 아들에 대한 병역의혹 사건 때 조갑제 기자가 굉장한 인신공격을 당했는데도 가만있는 것을 보며 내심 혀를 찼다. 왜 가만히 있었을까? 조갑제 기자가 잘못하고 있다고 판단했을까? 그랬다면 조 기자께 정중히 의견 제시를 했어야 한다. 병역의혹 제기자들에 대한 조갑제 기자의 충고가 옳다고 생각했다면? 그때는 당연히 조 기자를 인신공격하는 자들을 나무랐어야 한다.

당시 조갑제 기자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하였나? 그래 뭐 박원순 아들에게 병역비리 혐의가 있다고 치자(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보지만). 그렇다 해서 신중하자고 했던, 공적기관의 말을 믿고 재판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던 우리 사회에 원로에 대해 사안 이상의 과도한 비난 내지 음해, 인신공격을 퍼붓는 것이 옳은가? 조갑제 기자와 가깝다는 이들이 그걸 보고만 있나?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정이 국회의원들의 변명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내 보기엔 새누리당 비겁자들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보수진영에서 조갑제 기자의 공(功)은 대단히 크다. 설령 조갑제 기자가 무슨 실수를 했다 치더라도 그간의 여러 공을 보아 그런 식의 매도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공격을 당하는 것을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활동가, 논객 상당수가 침묵하며 지켜봤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어떤 이유에서 가만히 있었는지를.

그런 이들이 걸핏하면 누군가를 비판하며 용맹이 없다느니 비겁하다느니 한다. 내가 살아가는 작은 테두리 내에서 부당한 일을 보면서도 침묵했으면서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더 넓은 세계의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나? 자기 교회 안의 난동꾼도 전도하지 못하면서, 진압하지 못하면서 이슬람교도를 전도시키겠다고 성도들 헌금 받아 교통비 써가며 천지를 돌아다니나?

박통이 중국 전승절에 간다 했을 때 이를 비판하던 사람들을 비판하던 이들은 요즘 뭐하나? 어떤 이는 전승절 참가에 긍정적이었던 이동복 선생과 비판적이었던 조갑제 기자를 비교하며 기본 예의도 지키지 않고 조 기자를 향해 악담을 퍼부었는데, 요즘은 열심히 활동하더구만. 뭐 다 좋다. 이해는 한다. 그렇지만… 해서는 안 될 정도의 발언을 했다면 사과 정도는 해야 교양인이요 신사 아닌가? 시간이 좀 흘렀다고 물에 물 탄 듯 넘어갈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거리를 두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당시 청와대의 전승절 참가에 그 무슨 심오한 뜻이 있었는지, 깊은 외교적 술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보수우파는 그와 관계없이 원론적인 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전승절 참가는 패착이 되었지만(이젠 언론 다수가 그렇게 평가한다), 설령 그것이 긍정적인 행보였다 하더라도 보수우파는 그에 대해 맹비판해야 중국 앞에서 우리 정부의 협상력이 더 생기는 것 아닌가.

보수우파는 몇 년에 걸쳐 여러 약점을 노정했다. 한편 박통은 정치를 잘했든 못했든 간에 그간 늘 여론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무슨 말이냐 하면, 청와대에서 어떤 판단을 하기 전에, 일정한 생각이 굳어지기 전에 보수우파로서는 보수우파가 원하는 결정을 하도록 잘 몰고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청와대에는 온갖 정보가 올라오고, 보수진영의 목소리는 네이버나 조중동 세력 또는 좌파연합 세력의 목소리보다 볼륨이 작았던 것은 사실이다. 보수우파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신중하고 침착하게 잘 판단해서 대처해야 하는데, 비판부터 먼저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우파정권 옹호 분위기로 돌아설 때면 청와대는 이미 그 전의 비판 등을 참고하여 일정한 판단을 하고 난 후였다. 이런 패턴이 계속되어 왔다. 속도 조절을 잘 못했고 보수우파 내부의 목소리도 늘 갈라져 있는 편이었다.

보수우파 내에서 보수원로를 대접할 줄도 몰랐다. 보수우파 내에서도 공로가 큰 분을 인정치 못하고 비판하기 일쑤에, 이것이 다 드러나 있는고, 보수우파 내부에서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외부에서 볼 때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이런 보수우파가 다른 넓은 세계의 일에 떠든다고 먹힐까.

보수우파는 지난 몇 년간 조중동이 조성한 왜곡 과장 보도에 놀아난 면이 있다. 이제 그들이 거짓말쟁이, 선동꾼인지 알았지만 그들로 인해 수년 간 누군가에 대해 머릿속에 박힌 관념은 바뀌지 않게 되었다. 언론을 못 믿으면서 그 언론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누군가를 불신하고 미워하게 된 감정 자체는 굳어진 것이다. 그런 개념 위에 또 다른 개념이 쌓이다보니 우리는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에 대한 비판은 개선의 정이 보일 때 효율적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선거는 다 차악(次惡)을 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택한 이상, 우리 손으로 집에 보내든지 아니면 우리가 보듬고 가는 수밖에 없다. 둘 중 하나다. 우리가 끌어내리거나 끝까지 보듬고 가거나. 비판이 안 먹힐 정도로 무능하다고 판단했다면 그건 그 사람의 타고난 역량의 한계니까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안 되는 일을 떠들면 뭐 하나. 입을 많이 대면 혼란만 가중된다.

비판이 먹힐 사람이라고 판단했다면, 그리고 그런 비판이 확실히 올바른 것이라고 여겨진다면 그것을 우회해서 전달되도록 해도 먹힐 것이다. 직접적으로,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지만, 비판이 안 먹힐 정도로 무능하다거나 독선적이라고 결론 내렸다면 말 그대로 비판을 해봐야 의미가 없다. 혼란만 더 일지.

예컨대 나는 지금도 세종시 이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권 때 세종시 이전에 대해 태클을 거는 박근혜 의원과 이회창 전 총리에게 내심 불만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명박 전 대통령도 박근혜 의원의 입장도 이해한다. 이런 나를 보고 주관 없는 사쿠라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그렇다. 물론 내가 그런 입장에 놓이면 어떤 선택을 분명히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누구든 이해한다. 이해하려 노력한다.

세종시 문제에 있어 나는 이명박, 박근혜, 이회창, 최병렬 등을 비판한 적이 없다. 그들로서는 모두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한다. 그런 망할 숙제를 안겨준 노무현을 원망했을 뿐이다. 우리는 왜 우리에게 문제를 던져 준 근본 원인 제공자를 원망치 않고 우리끼리 다투는가. 좌파도 우파도 모두 내부를 탓하는가. 왜 늘 탓만 하는가. 왜 늘 지나간 일, 다 끝난 일을 자꾸 곱씹는가. 박원순 아들 의혹문제, 친일문제,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하여간 거의 모든 문제에서 우리는 끊고 맺음이 불분명하다. 끝이 없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그 누구든 비난한다.

타인의 명예를 마구 훼손해놓고 사과도 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얼렁뚱땅 그 사람에게 다가선다. 개인 간에도 그렇고 단체 간에도 그렇고 심지어 국가적으로도 그렇다. 북괴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최소한의 복수도 할 줄 모른다. 시간 좀 지나면 까먹어 버린다. 은혜를 모르니 복수도 모른다. 한미관계, 대북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시간이 없다. 우리는 미래를 얘기해야 한다. 자기 가까운 사람부터 보호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도리와 의리를 지켜야 한다. 주변 정리부터 잘 해나가다 보면 더 넓은 것이 보일 수 있다.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우선은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비판은 시기가 중요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의미가 없다. 자학, 분열 행위밖에 안 된다. 때로는 격려가 가장 강한 우회적 비판일 수 있다.

두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