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그릇밖에 안되는 인간에게 志士 레벨의 용기와 소신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대만 총통인 차이잉원(蔡英文)의 젊은 시절 의정활동 동영상을 보면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여유있는 표정에 조리있는 말솜씨가 일품이다. 얼굴 붉히며 언성 높이고 흥분하는 상대방이 오히려 왜소(矮小)해 보인다. 이렇게 온화하고 차분한 사람이 중국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대만 독립노선을 견지해 가는 모습을 보면, 外柔內剛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사람은 이래야 한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부드럽지만, 속은 굽힐 줄 모르는 신념으로 꽉 찬 이런 사람이 매력있고 멋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 촛불시위 때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 불렀다는 소릴 들으며 우리는 얼마나 실망하고 절망했던가? 케네디 대통령은 인간을 평가하는 모든 덕목중에서 제일 중요한 덕목은 '용기(勇氣)'라고 말했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아무리 머리에 든 지식이 많아도 가슴속에 용기가 없다면, 신념이 없다면, 소신이 없다면, 그 사람은 그 순간부터 양아치에 불과하다.

부산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용기없는 소심한(spineless) 인간을 또 한 명 본다. 바로 부산 동구청장 박삼석이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계속되는 릴레이 시위에도 불구하고 일본 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허가를 내주지 않고 버티는 걸 보고 겉보기와는 달리(?) 속이 꽉 차고 소신있는 사람인 줄 생각했다. 학력이나 경력이 별로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不當한 압력에 고개 숙이지 않는 강단(剛斷)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사람 잘 못 보고 섣부르게 내린 완전한 오판이었다. 촛불세력이 전화질을 하루 해대니까 죽은 x같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장에 나와 “시민단체가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한다면 묵인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한다는 소리가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는 국가 간 일이기도 하지만 지자체장으로서 더는 감당하기 힘든 입장”이라고 용인하는 이유를 밝혔다.

배석한 시민단체와 시민이 구청의 소녀상 강제 철거와 폭력적인 농성자 해산 과정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데 대해 역시 군소리없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 소녀상 철거를 누가 지시했느냐는 질문에 담당 과장이 한 일이고 자신은 잘 몰랐다고 말해 자질이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럴 바에야 지난 1년간 허가 안해주고 버틴 것이 무슨 의미인지 동구청장에게 묻고 싶다.

000 그릇밖에 안되는 인간에게 志士레벨의 용기와 소신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대통령도 촛불에 놀라 뒷산으로 도망하고, 국회의원도 촛불에 정신이 혼미해져 촛불에 타죽고 싶으냐고 게거품을 무는 마당에 일개 구청장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작금의 불필요한 한일 외교마찰을 보며 책임있는 자리에 앉은 한 사람의 용기가 그렇게도 아쉽다.

용기없는 보수, 겁먹은 보수는 종북좌빨들의 밥이다. 약하게 물러서는 모습 자꾸 보여주면 저들은 2배. 3배 더 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