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중국은 중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한국을 깔보기 시작했다. 미국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 대한민국의 榮華는 끝이다. 한국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또한 일본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과하라'는 한국의 닦달에 지쳐가던 일본, 이제 태도가 달라져 가고 있다. 그저 온순하기만 하던 일본이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부터 발발하는 공기가 감돌았었다. 한국에서 요구하는 대로 대체로 순순히 대응해 오던 이전 정권들과는 달리 사과하길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했었다. 내 느낌에는 사과하기가 싫다기보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사과 요구에 넌더리가 난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재작년인 2015년 '韓日 위안부 합의'시 아베 총리는 기시다 일본 외무상을 총리관저로 불러 "합의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不可逆的)'이라는 문언이 들어가지 않을시 교섭을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지시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다. 아베 수상의 확고한 의지대로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고 합의했다. 우리는 합의서에 위안부 소녀상 문제는 들어 있지 않다고 발뺌을 하지만 너무 유치하고도 뻔뻔스런 변명이다. 한국이 위안부 소녀상을 일본 공관 앞에 계속 설치하겠다는 조건이라면 일본이 합의했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일본 입장에서 얼마나 넌더리가 났으면 외교문서에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문구를 넣을 생각을 다 했을까? 그래도 우리는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위안부 합의 1주년을 맞아 지난해 12월 28일, 부산지역 시민단체가 부산 동구에 있는 일본 영사관 앞에 기습적으로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했다. 무슨 합의든 1주년이 되면 양측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서로 덕담을 나누며 이를 기념하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1주년 기념일에 이렇듯 합의에 역행하는 행태를 보인 것은 어떤 이유로든 너무나 졸렬한 짓이다.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를 조롱한 셈이다. 일본 정부로서도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주한 일본 대사 일시 귀국을 포함한 네 가지 강경 조치를 발표했다. 주한 일본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 부산총영사를 일시 귀국시키고, 부산 총영사관의 부산시 관련 행사 참여 보류, 韓日 통화스와프(通貨 swap) 협상 중단, 韓日 고위급 경제협의 연기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것이 무엇을 예고하는지는 좀더 있으면 알게 될 것이다.

韓日 위안부 합의는 미국의 종용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일본은 이러한 강경 대응 조치와 함께 미국 측에도 “한국이 위안부 관련 한일합의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하니 사실인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길 바랐고 이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은 협조적인데 반해 한국이 늘 비협조적이었다. 韓日이 삐걱거릴 때마다 미국은 일본을 달래어 한국 뜻에 맞추도록 조정해 왔다. 그런데 이제 한계점 가까이 온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인들이 전세계 모든 일본 공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울 태세인데 이를 그냥 보고만 있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한국의 사드 배치와 정권 교체 가능성이 맞물려 묘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향후 전개될 정세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다만 우려스런 쪽으로 자꾸만 빠져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본은 지은 죄가 있지만 지금까지 이를 속죄하려 나름대로 노력을 보여왔다. 2015년 아베 총리의 담화에는 "전후 70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숨진 모든 사람들의 목숨 앞에 깊이 머리를 숙이고, 통석(痛惜)의 념(念)을 나타내는 것과 함께, 영겁(永劫)의, 애통(哀痛)의 마음을 진심으로 바칩니다."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日本式의 표현으로서는 최고의 禮가 아닌가 싶다. 일본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 발에 입이라도 맞추기를 바란다면 이는 천박하고도 도량이 좁은 사람들의 마음일 뿐이다.

지난해 12월 27일에는 아베 일본 총리가 미국 하와이 진주만에 있는 애리조나기념관을 찾았다. 75년 전 일본군의 공습 현장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동행했다. 美日 정상이 나란히 진주만을 찾은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해 5월에는 오바마가 원폭 도시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美日은 전쟁 당사자다. 서로가 엄청난 인명을 살상(殺傷)했다. 이제 이러한 구원(舊怨)을 풀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풀기 위해 노력하는데 우리 언론이 나서서 사과가 있었네 없었네 하며 풀릴까봐 안달을 했다. 아주 몹쓸 심보다.

해방된 지도 70여 년이나 지났건만 위안부 소녀상 앞세우고 '독립선언' 운운하는 일이나, 세월호가 침몰되고 관련 책임자들의 논죄가 끝난 지 언제인데 아직도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며 '진상규명' 운운하는 일이나 정말 지긋지긋한 국민성이다. 이제 중국은 중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한국을 깔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모로 대접 받았지만 앞으로는 냉대를 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변수로 남았다. 미국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 대한민국의 영화는 끝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도할 밖에.

로또복권에 당첨되어 하루 아침에 거부가 되었다가 몇 년만에 거지로 돌아온 사람들 얘기를 가끔씩 듣는다. 역사를 뒤져보면 국가도 그런 예가 많다.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 한 때 영화를 누렸으나 무능한 지도자나 사기꾼에 당해 어려워진 기록들이다. 지도자를 탓할 게 아니라 국민들의 분별없는 어리석음을 한탄해야 할 것이다. 감당할 능력이 없어서 빚은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