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발생한 김정남 독살 사건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를 통하여 북한의 소행(所行)임이 판명되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아직도 김정남의 사체 부검을 통하여 독살에 사용된 약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최종적으로 규명해 내지 못했지만 사인(死因)이 독살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과 아울러 이번 범행의 하수인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국적의 두 여성을 배후에서 조종한 남성 범인 가운데 체포된 자와 4명의 도주자(逃走者)가 모두 '북한 국적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데는 성공했다. 아직 계속되고 있는 말레이시아 경찰의 추가 수사를 통하여 범행의 전모(全貌)가 곧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겠지만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만으로도 이 사건이 북한의 범행(犯行)이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김정남의 죽음은 북한의 망나니 독재자 김정은(金正恩)이 자신의 이복(異腹) 형(兄)을 독살이라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殺害)한 엽기적(獵奇的) 사건에 불과하다. 김정남이 자신의 아버지인 김정일(金正日)이라는 독재자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이미 가족으로부터 추방(追放)되어서 20여 년의 세월을 해외(海外)에서 방랑(放浪) 생활을 영위하다가 비명횡사(非命橫死)한 비운(悲運)의 주인공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의 죽음에 애도(哀悼)는 물론 연민(憐憫)의 생각도 가질 이유가 없다.  

김정남은 1945년부터 북한지역을 ‘수용소군도’의 동토(凍土)로 만들고 1948년에는 한반도의 정치적 분단을 강요하여 1천만 이산가족의 한 맺힌 고통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6·25 전쟁이라는 민족적 참극(慘劇)을 야기(惹起)한 흉악한 전범(戰犯) 김일성(金日成)의 혈육(血肉)이라는 혈연(血緣)상의 멍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다. 더구나, 이른바 ‘백두혈통(白頭血統)’을 내세워 가문(家門)의 우상화(偶像化)를 조작(造作)함으로써 3대에 걸친 사이비 ‘독재왕조(獨裁王朝)’를 우격다짐으로 이끌어 온 김정남의 난가(亂家)에서는 이번과 같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골육상잔(骨肉相殘)’ 행위가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김정남의 애비인 김정일은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으로 귀순(歸順)한 그의 이질(姨姪)을 끝까지 추적(追跡)하여 대한민국에서 암살(暗殺)했고 이번에 말레이시아라는 외국에까지 가서 김정남을 독살한 그의 이복 형 김정은은 2013년 그의 권력 장악을 보필(輔弼)하던 그의 고모부(姑母夫)를 기관포로 살해하는 ‘천인공노(天人共怒)’의 만행(蠻行)을 저지른 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이번 김정남의 죽음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번 사건을 하나의 기회로 활용하여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이번 기회에 범행 현장의 소재지인 말레이시아 정부와 협의하여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ICC·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 기소하는 일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유엔인권이사회의 결의를 통하여 오스트레일리아의 전직 대법관 리차드 커비(Richard Kirby)를 위원장으로 하여 구성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Commission of Inquiry)가 2013년부터 1년 동안 북한의 인권 상황을 면밀하게 조사한 끝에 북한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광범위하고도 조직적인 인권 유린 행위들을 고발하면서 그 시정을 위한 조치의 하나로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정권을 ICC에 기소할 것을 건의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COI가 건의한 북한 독재정권의 ICC 기소는 ICC의 법적 근거인 ‘로마규정’(Rome Statute for ICC)에 규정된 ‘관할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발견하지 못한 결과로 그 동안 이를 실현시킬 수 없었다.  

‘로마규정’은 ICC의 관할권을 ‘로마규정’의 효력이 발생한 날인 2007년7월1일 이후에 발생한 사안으로 한정(제11조 1호)할 뿐 아니라 해당 범죄의 발생 장소가 위치한 국가들 가운데 최소한 어느 한 나라가 ‘로마규정’ 서명국이어야 한다는 제한 규정(제12조 2호의 a와 b)을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2014년 COI 보고서에서 거론된 북한의 인권 유린 행위들은 모두 2007년7월1일 이전에 발생한 것들인데다가 북한이 ‘로마규정’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이기 때문에 ICC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유엔인권이사회는 2014년부터 매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하는 북한 인권에 관한 결의안의 한 항목으로 COI 보고서를 안전보장이사회 안건으로 회부한다는 조항을 첨부하는 것을 관례화하기 시작했다.  

인권이사회가 이 같이 한 이유는 ‘로마규약’이 제13조 나항에서 앞에서 거론된 ‘관할권’ 문제와 상관없이 “안전보장이사회가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ICC가 처리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사회대로 장애물이 있었다. 그것은 ‘거부권’을 보유하고 있는 5개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어느 안건도 이사회를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을 ICC에 기소할 것을 요구하는 COI 보고서가 2015년부터 매년 안전보장이사회 안건으로 자동 상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이사회의 채택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번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김정남 독살 사건은 북한을 ICC에 회부하는 문제에 관하여 그 동안의 교착(膠着) 상태를 해소시킬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 주게 되었다. 사건 발생 현장 위치가 ICC 서명국인 말레이시아이고 더구나 발생 시점이 2007년 이후인 2017년이기 때문에 이 사건은 안전보장이사회를 거치지 않고도 어느 나라에도 ‘거부권’ 행사가 허용되지 않는 인권이사회에서 다수가결을 통하여 ICC로 회부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즉각 시민사회의 북한 인권 운동단체들과 협의하여 오는 3월 제네바에서 개최되는 유엔인권이사회 2017년도 춘계 이사회에서 이번 사건 발생 국가인 말레이시아와 함께 김정남 독살 사건을 ‘로마규정’의 ‘인도적 살인죄’로 ICC에 회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외교활동을 전개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국내의 여러 북한 인권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공동 대처 방안을 협의하는 한편 우선 유엔인권이사회의 서울사무소에 이 문제를 제기하여 제네바의 이사회 및 인권최고대표실(OHCHR·Office of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과 필요한 협의를 진행시키도록 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