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시민이 보더라도 희한한 일이다. 쉽게 말해 13개 죄(?)를 묶어 하나의 탄핵사유로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럼 그 13개 사유 중 하나만 깨져도 나머지는 저절로 다 깨진다는 말 아닌가. 현재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관련, 가장 정확한 견해는 <탄핵심판에 관한 법조인의 추가 의견>이다. 여기에 다 들어 있다.

그 내용 중 ‘헌재는 9명 재판관 전원의 심리 참여가 헌법상의 원칙이므로, 헌재의 재판소장 및 재판관의 임명절차에 관여하는 기관들은 이미 퇴임한 박한철 재판소장과 퇴임이 예정된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을 조속히 임명하여 9명 재판관 전원 참여의 헌법정신을 준수하여야 한다. 헌재는 그때까지는 일시 재판을 중지하였다가, 전원 재판부를 구성한 연후에 재판을 재개하여 심리를 진행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공정한 재판진행 절차라고 본다.’는 부분을 잘못 이해하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9명의 재판관이 참여하는 것이 옳다

일전에 박한철 소장의 발언 요지에 공감한다고 쓴 바 있다. 나는 박한철 소장이 퇴임하기 전 탄핵소추에 대한 결정이 있기를 바랐다. 내심 기각될 것이라 전망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9명의 재판관이 있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옳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 측 변호인단의 전략부재로 인해 심리가 지연되었고 지금은 신임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기에 박한철 소장은 이정미 재판관 임기 중에 종결지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부분에 있어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고 헌법재판소를 향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헌법과 원칙에 맞지 않는다. 특검의 수사행태와 헌법재판소의 심리 진행에는 큰 차이가 있다. 헌재는 특검과 같이 무리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기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탄핵이 된 이상 대통령의 권위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위신에도 이미 금이 갔다. 이번 탄핵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제왕적 국회의 그야말로 쿠데타적 탄핵소추였지만 비록 대한민국 국격에 금이 갔더라도 헌재의 심리만큼은 헌법절차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8명이나 7명으로 심리를 하고 판결을 하는 것은 추후 기각이 되더라도 법률적으로 시비대상이 될 여지가 있다. 후세에까지 법리논란을 부를 위험이 있다. 이렇게 박 대통령 탄핵 문제가 거론된다는 것은 이승만, 박정희와 자유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세력에게 역사적으로 결코 이롭지 못한 일이다. 우리는 오늘만 사는 것이 아니다(보수원로들이 이상하게도 요 몇 년 사이 감정적이거나 이상한 데에 휘둘리거나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무엇이든 해석, 유추, 비판하려 하지 말고 원칙만 말했으면 한다). 그러므로 원로 大법률가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9명을 구성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9명을 구성할 수가 없다. 그것을 황교안 대행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쿠데타를 일으킨 야당과 바른정당이 200석 안팎의 의석을 차지하고 장난칠 준비를 하고 있다. 황 대행이 누굴 임명한다 하여 그 임명된 이가 정상적으로 취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설령 황 대행이 누군가를 임명한들 이 상황에서 선뜻 수락할 이도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황 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수월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정도의 상황이었다면 대통령은 탄핵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즉 박한철 소장이 말한 대로 하는 것이 옳다.


정치적 고려 없이 원칙적, 원론적으로 속히 처리해야 하는 이유

지금 헌법재판관들의 개인적 성향에 대해 왈가왈부 하며 재판 결과를 예단하고 심리를 지연시켜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데, 그래선 안 된다. 이런 혼란스런, 쿠데타적 상황에서 우리가 화가나 모진 수사를 하는 이를 비공식적으로(?) 한 대 쥐어박는 일은 할 수 있어도 정치적 계산에 따라 표면적으로 헌재를 공격하는 것은 좌파들이나 할 짓으로서 해서는 안 된다. 원칙대로 해야 한다.

악의 무리들이 아무리 날치기를 하더라도 원칙대로 헌재를 바라보아야 위대한 대한민국의 참 국민이라 할 것이나, 설령 정치적으로 계산하고 행동한다 하더라도 헌재의 심리가 최대한 빨리 끝나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다.

먼저 원칙적이고 원론적인 측면에서 따져본다. 다들 알다시피 전쟁 중인 국가가 아니더라도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있고 정치 문제가 아닌 중대한 현안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어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국가적 위기임이 틀림없다. 이는 그 누가 대통령인들 마찬가지이다. 대통령 권한 대행이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 많다는 사실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그러한 처리가 미루어짐으로 하여 직간접으로 고통 받는 국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해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의 직무정지 내지 파면 결정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빨리 결론이 나야 한다.


역사적인 측면, 보수 세력의 추동력적인 면에서 볼 때도 빨리 결론이 나야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물론 탄핵으로 직무정지 되었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불미스런 일로 역사 속에 남게 되었다(이는 탄핵의결 전 야당 및 바른정당 의원들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이들이 종편에 출연해 유도하고 기대하던 대로 된 것이다. 탄핵 후 어느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역대 대통령 지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어떤 질문을 한 것인지 노무현이 1위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어느 좌파 정치인은 ‘박정희에 대한 그릇된 환상이 깨지고 이제 바로 잡혀가는 중’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허나 비록 탄핵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더라도 장기간 복직하지 못한 것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역사 속에 불명예스럽게 남더라도 최악은 피해야 한다. 조속히 복귀하는 것은 국가적 위기 면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면과 보수 세력의 운신과 결집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이다.


'박근혜는 싫지만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운다'는 말은 위선적이고 진부한 소리

보수원로들은 이승만, 박정희를 추앙하는 한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하여 ‘박정희 후광으로 집권한 사람’이라 평가하면서도 여성이라는 점, 자신들의 고정관념과 입맛에 꼭 맞는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인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크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만큼은 자신들이 평소 추측하고 비판했던 대로 남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 큰 영향을 끼치며, 설령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수 시민’의 정신적 결집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틀림없다. 박근혜가 박정희의 후광으로 정치인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한 면이 있다면 박정희의 업적과 정치는 79년 10월에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 된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박정희-박근혜’ 부녀는 그들의 정치적 평가 측면에서 불가분의 관계이다.

YS와 DJ의 자녀가 성공한 정치인이 되길 꿈꾸었지만 이루지 못했다는 점,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들이 박 대통령만큼 대중적 인기를 모으지 못했다는 점, 나이 차이, 연공서열 등을 매우 중시하는 우리 풍토에서 YS와 DJ는 사실상 윗사람이 없는 가운데 한세대가량 아래 사람들을 거느리고 정치한데 반해 ‘여성’ 정치인 박근혜는 자신보다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이들과 쟁쟁한 또래 정치인들 속에서 어쨌든 리더였다는 점 등을 종합해보면 그는 ‘박정희 후광’만으로 집권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박근혜는 자신의 역량으로 어쨌든 보수 세력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를 보수원로들은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박근혜 대통령만큼 보수적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인물은 앞으로 나오기 힘들다는 현실이 있다. ‘박근혜’에 대한 평가 문제는 그가 은퇴한 후 은둔하더라도 우리 선거에 일정부분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 보수 세력이 ‘탄핵사태 이후의 박근혜 평가’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이유이다. 좌파와 야당의원들이 근래 언론의 ‘박근혜 평가’를 재료로 ‘박정희 시대’를 부정하는 움직임을 보면 모르겠나? ‘최서원’을 ‘비선’으로 단정해놓고 ‘그런 비선을 두었으므로 탄핵될 수밖에 없고 그의 집권은 태생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모르겠나? 즉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보수 세력은 ‘박근혜 이미지’를 관리(?)해야 한다.

‘박근혜가 곧 보수 세력은 아니다’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피곤한 스타일 들이다. 남진, 나훈아, 조용필, 서태지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 가수들의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를 좋아하니 가수도 좋아한다. 물론 그들의 외모를 보고 좋아하게 된 경우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가수는 음악에 의해 평가된다. 요리사도 그렇고 운동선수도 그렇다. 무하메드 알리,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등의 인기의 근원은 경기력이다. 인간성, 선행 여부 등은 인기를 이루는데 부차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인의 인기의 근원은 기본적으로는 정치력이다.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떻게 활동했는지 등에 따라 평가받는다. 박근혜보다 젊고 예쁜 여성 정치인도 여럿 있었고, 그보다 학력이 나은 정치인도 쌔고 쌨었다. 그럼에도 그가 그토록 대중에게 인기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정치력이 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이에 대해 대중이 감성적이고 무지해서라 해석한다면 참으로 민의를 무시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탄핵된 후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뽑은 대통령을 제왕적 국회가 쿠데타적으로 탄핵시켰다는 이유에서이다. 이걸 두고 ‘박근혜는 싫지만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느니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짜증난다. 그런 발언이 바로 명분에 집착하던 조선조 먹물들이 하던 것 같은 지겨운 소리이다.

나 같은 경우 MB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가 서울시장이 되기 훨씬 전부터 그랬다. 광우병 사태 때 아침이슬을 불렀다는 소릴 듣고 좀 실망하기도 했고 좌파척결을 엄두도 못 내었을 때 많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참 좋아했다. 좌파세력이 그를 때리고 수사기관의 간부가 대놓고 MB를 조롱했을 때 적극적으로 형사고발을 했다. 그를 음해하고 비난한 공무원들을 고발하고 해당 기관에 항의한 것은 내가 단지 MB의 맹종주의자라서인가? MB를 피해자로 하여 수사기관 간부를 상대로 민간인이 고소, 고발을 하는 것에는 의외로 성가신 일이 많다. 어리석은 짓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나름대로는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었다.

MB를 좋아했던 것은 그가 대한민국을 이롭게 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MB의 정당한 통치에(비록 그와 이념을 달리하는 세력은 그 통치를 비판한다 하더라도) 도를 넘는 행위를 하는 자들을 고소, 고발하는 것은 그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곧 대한민국을 위하는 길이라 여겼다. 개인 이명박이 좋아서 일정한 행동을 하는 것이나 대한민국을 위해 그를 옹호하는 일정한 행동을 하는 것이나 그게 그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했다. 응원했다. 탄핵에 반대한다. 그렇다면 나는 박근혜 맹종주의자인가? 대한민국이 아닌 개인 박근혜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탄핵에 반대하고 그를 응원했단 말인가. MB도 응원했고 박근혜도 응원한 나는 사쿠라인가. 사실 나는 개인 박근혜에 대해선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를 좋아한 적도 없었다.

내가 보기에 박근혜는 싫으나 좌파는 더 싫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박근혜가 싫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실은 별로 없을 것이라 본다. 시민들이 추운 겨울에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보수 지식인이 ‘박근혜’를 미워하지만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경우는 있어도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이 ‘박근혜’를 싫어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 본다.

때로 비판을 하는 것과 아예 싫어하는 것도 다른 차원이다. 부모자식 간에도 트러블이 있을 때가 있고 서로 비판도 하질 않나. 생업에 종사하느라 바쁜 보수 성향 시민들 중에 MB나 박근혜를 좋아하지는 않는 이는 많을지 몰라도 싫어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라 본다. ‘좋아하지는 않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신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 대해선 관대한 편이다. 시민이 MB나 박근혜를 싫어할 정도면 사실은 보수 성향이 아닌 경우가 많다. 대통령을 싫어하면서도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은 거의 없을 것이라 보는 이유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현실적인 측면

헌법재판소는 형사재판을 하는 곳이 아니다. 국회의 탄핵소추는 누가 보더라도 얄궂다고 할 것이다. 대통령이 외환 또는 내란의 죄를 범한 사실이 있나? 대통령은 재직 중 내란 내지 외환의 죄를 범하지 않았을 때에는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다들 안다. 대통령이 설령 뇌물을 받았다 하라도 재직 중에는 처벌할 수 없다. 처벌 자체가 불가능한데 하물며 뇌물죄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겠나? 다시 말해 내란, 외환의 죄 외에 대통령의 형사상 범죄는 임기 중 파면될 수 없다. 즉 대통령의 개인비리로는 탄핵소추를 해서도 안 되고 한다 하더라도 인용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국회가 한 짓은 대통령이 형사상 죄를 범하였을 것이라는 검찰의 의견과 선동 언론의 보도(그것도 상당부분 허위, 오보로 밝혀진 것)를 근거로 한 것이고 그 사실 규명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원로 법조인들의 지적대로 법적 성격이 전혀 상이한 13개 탄핵사유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심의, 표결하지 않고, 일괄하여 표결하였다.

일반시민이 보더라도 희한한 일이다. 쉽게 말해 13개 죄(?)를 묶어 하나의 탄핵사유로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럼 그 13개 사유 중 하나만 깨져도 나머지는 저절로 다 깨진다는 말 아닌가. 누가 봐도 인용되지 않을 이른바 ‘세월호 7시간 건’을 다른 12건과 함께 끼웠는데 이는 13건 모두를 깨지게 하기 위함이라 해석해도 되겠네? 이게 국회의 뜻인가? 그렇다면 반장난식, 퍼포먼스 식으로 천만 명이 넘는 국민이 선택한 국가지도자를 탄핵소추 하였다는 얘기 아닌가. 그런 장난 친 이유는? 역사 속에 보수우파 대통령을 불명예스럽게 남기기 위해서? 통일을 늦추기 위해 조금이나마 직무를 정지시키려고? 기가 차고 황망하다.

탄핵사유 중 그럴듯한 것은 민간인 최서원 씨를 비선으로 만들어 국정에 참여시키는 등 ‘국헌을 문란케 했다’일 것인데, 이는 탄핵소추 사유로 삼을 수는 있을지언정 인용사유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평균 수준의 이해력을 가진 시민들의 생각일 것이다.

자. 정리해보자. 고영태 녹취록이니 뭐니 하는 것은 최서원 씨가 논란이 된 재단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 최서원 씨는 형사처벌 받을 만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소명하기 위해 해당 형사재판에서 사용할 수는 있겠으나 대통령이 탄핵소추 될 정도의 내란, 외환의 죄를 범하였는지 살피는 데에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심리에 관심을 가지는 국민들을 향해 대통령이 무고하다고 어필할 수 있는 홍보자료로 쓸 수는 있을 것이나 그렇게 되면 이 역사적 심리가 희화화 되며 대통령 변호인단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통령이 더 우습게 되어 버린다. 최서원 씨가 무죄 받을 수 있도록 그 변론을 하는데 쓰일 수 있게 하기 위해 검찰로부터 녹취파일을 받아낼 방법으로 헌재를 이용하는데 그쳤다면 그것으로 족했다고 본다. 최서원 씨의 무죄는 곧 박 대통령의 정치적 평가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고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박정희에 대한 평가 및 보수 시민의 결집에도 상당하나 영향을 끼치니까. 그렇지 않고 고영태 등을 증인으로 신청하고 더 나아가 그러한 증인 신청을 명분으로 시간을 끄는 것은 국가적, 소송 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하고 대통령이 복직한다 할 경우 특히 바람직하지 못하다.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헌재가 판단할 부분은 의외로 간명하다. 사건기록이 수천, 수만 페이지라 하더라도 대부분은 살펴보지 않아도 될 것들로 보인다.

이번 탄핵소추 건의 경우 헌법재판관들이 일찌감치 일정한 결정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난해한 사건들과는 달리 법리적, 법철학적, 현실적인 면에서 깊이 사고해 보아야 할 부분이 없지 않은가? 대통령이 외환 내지 내란, 국헌문란 행위를 하였는지 여부만 살피면 그뿐인 것이니.

헌법재판관들이 내심 일정한 결정을 한 상태라면 아무리 시간을 끌어봐야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헌법재판관들의 결정은 중대한 외부적 변화가 있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 세력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겠는가? 물론 국회의 소추가 인용된다면 난리가 나야겠지. 자 그럼 기각이 되면 ‘이제 안심이다’ 하면서 웃을 것인가. 아니지 않은가? 기각이 된다 해도 ‘이제 시작’ 아닌가. 할 일이 얼마나 많나? 보수 세력은 인용, 기각 여부에 구애 없이 계속 하던 일을 하면 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인데, 인용 된다 할 경우 헌재가 일찍 선고하는 것과 늦게 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겠나? 늦게 선고가 이루어진다 한들 그동안 보수 진영에서 특별한 대선 후보라도 만들어 놓을 수 있나? 일찍 선고가 있을 경우 좌파가 당선되고 늦게 선고될 경우 우파가 당선된다는 보장이라도 있나? 내가 보기엔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보기에 따라선 일찍 인용 결정이 있을 경우 격분한 보수 세력이 총결집하여 뜻하지 않은 보수 진영의 승리의 결과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하튼 헌재의 판결은 역사적인 면에서나 국가가 위기라는 점에서 원칙대로, 가능한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이 복귀한다고 할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대통령이 밀린 인사를 하는 등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이라도 전열을 가다듬어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황 대행은 어디까지나 대행일 뿐이다. 박 대통령에 버금갈 수는 없다. 그는 어쨌든 아직까지는 박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라는 점을 우리는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살펴본 바와 같은 이유로 헌법재판소는 빨리 선고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보수 세력은 하던 일이나 계속하면 된다. 대통령 자신은 최서원 씨가 비선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최 씨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럼에도 과도한 비난을 받고 있는 최서원 이미지 관리나 하자. 이걸 논리비약이라 하지 마라. 그게 박정희을 추앙하는 보수 세력을 공고히 결집시키는 방법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