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쳐 준 주소대로 네비에 찍고 왔는데 교회는 보이지 않고 공동묘지네요.”
“여기 교회 근처에 공동묘지가 없는데요.” 먹물같이 짙은 어둠 속을 카니발이 달리고 있었다. 이리저리 휘돌아 가는 산길에는 가로등도 없었다. 핸들을 잡은 아내가 헤드라이트가 밀어내는 좁은 공간을 노려보며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고 있었다. 공동묘지 부근이었다. 차 뒷좌석에 누군가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등이 오싹했다.

주소도 이상했다. 귀래리 47-3이었다. 한자로 ‘귀신이 나온다(鬼來)’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네비게이션 속의 여자 목소리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면서 안내를 중지한다고 했다. 이상했다. 산 속에 있는 작은 교회를 찾는 중이었다. 숲 속에서 몇 명의 신도들과 여생을 보내는 목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가구점을 하는 이 장로가 그 시골교회의 철야예배에서 간증을 한다며 오라고 했다. 가구점을 하는 그는 예수 같은 사람이었다. 평생 감옥에서 나와 오갈 데 없는 사람들에게 잠자리와 밥을 주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푼다는 믿음이었다. 선(善)을 행한다고 복이 오는 건 아니었다. 그는 60대 초에 중풍에 걸렸다. 마비가 어느 정도 풀렸는데 아직도 한쪽 손발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항상 행복했다.

그는 인도에서 우연히 시골교회 목사와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시골 목사도 특이한 사람이라고 했다. 평생 예수의 도(道)를 전하면서 해외로 떠돌았다. 나이 먹고 귀국해서는 원주 근교의 야산에서 작은 교회를 하고 있다고 했다. 큰 건물을 짓고 많은 신도들 위에서 존경받기를 원하는 목사들과 달랐다. 천연기념물 같은 그들을 보기 위해 해가 어스름해질 무렵 집을 출발했다. 그런데 도착한 곳이 엉뚱하게도 공동묘지였다. 싼 곳을 찾다보니 공동묘지 부근을 교회로 선택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앞에 갑자기 불빛이 환하게 비치고 차량들이 주차해 있는 공간이 보였다.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는 모습이었다.
“아이고 이제야 맞게 온 것 같네.”

철야예배가 진행되는 수련회라 늦은 시각이라도 차들이 주차장에 있다는 생각이었다. 예배당은 바로 그 옆에 있는 게 틀림없었다. 차를 댈 공간이 없는 것 같았다.
“옆으로 예배당 건물 있는 데까지 조금 더 들어가 봐.”

내가 운전하는 아내에게 말했다. 차가 그 옆으로 꺾어 조금 더 들어갔다. 이상했다. 예상했던 예배당은 보이지 않고 폐가(廢家)만 한 채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적막한 폐가에서는 으스스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차를 돌려, 서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좁은 길에서 간신히 유턴을 했다. 조금 전 주차장 쪽으로 서행을 할 때였다. 운전석의 반쯤 내려진 유리문에 갑자기 여자의 얼굴이 달라붙었다. 둥그런 눈에 뾰족한 턱을 가진 40대쯤의 여자였다. 핏기가 없어 보였다.
“불 있어요?”
그녀가 아내에게 말했다. 순간 ‘담배를 피려고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 없어요.”
핸들 잡은 아내가 앞을 보면서 대답했다.
“불이 없어요?”

그 여자는 이상하다는 듯 말끝을 올리며 되물었다. 조금 전의 사람이 웅성대던 장소로 갔다. 차들과 사람들이 깜쪽같이 사라지고 어둠만 짙게 들어차 있었다.
“아니 그 사람들하고 차가 다 어디 갔지?”

차를 돌려 나온 게 불과 일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차 문을 열고 나갔다. 주차장 자리에는 고목 한 그루만 서서 밤하늘에 가지들을 뻗고 있었다. 공기 속에 악취가 진동했다. 단순한 가축 똥냄새가 아니었다. 말기의 인간에게서나 나오는 쩔은 분뇨의 냄새였다. 나는 스마트 폰을 꺼내 이 장로의 번호를 눌렀다. 이 장로가 나왔다.
“가르쳐 준 주소대로 네비에 찍고 왔는데 교회는 보이지 않고 공동묘지네요.”
“여기 교회 근처에 공동묘지가 없는데요.”
“정말 이상하네요. 요즈음 네비게이션이 거의 오차가 없이 정확한데 어떻게 공동묘지로 안내를 하지?”
“주소를 정확히 찍은 거 맞아요?”

이 장로가 물었다. 나는 네비게이션의 목적지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맞아요, 귀래리 47-3이라고 되어 있어요.”
“거기 주소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 주세요.”

나는 조금 전 봤던 폐가의 주소가 75번지라는 걸 알아내어 불러주었다.
“알았어요. 찾아오시는 것보다 여기서 사람을 보낼 테니까 기다리세요.”

나는 어둠 속에 서서 기다렸다. 15분쯤 지나자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다. 낡은 승용차 한 대가 앞에서 멈추고 젊은 남자가 나왔다. 시골교회 전도사라고 했다.
“밤중에 공동묘지를 오니까 기분이 이상하네요. 제가 앞서 운전해 갈 테니까 따라오시죠.”

앞에서 가는 차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차는 새까만 어둠이 덮여있는 산길을 다시 올라가고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길 안내판이 반사되었다. ‘도깨비길’이라는 하얀 글씨가 튀어나올 듯 눈에 들어왔다. 차는 산길을 굽이돌아 10여 분쯤 간 후에 야산 언덕의 자그마한 교회 앞에 섰다. 열댓 명의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예배가 끝난 후 교회 구석에 놓인 탁자를 가운데 놓고 이 장로, 시골목사와 마주앉았다.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니까 어때요?”

내가 시골교회 목사에게 물었다.
“요즈음 보통의 목사들 어떻게 사는지 아세요? 밤이면 목사는 대리운전을 하고 그 사모는 음식점 주방에 가서 일을 하면서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어요. 그게 현실입니다. 이제 목사가 전처럼 대접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힘든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의 밀알이 땅 속에 파묻혀 썩어야 열 배 백 배의 열매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저는 시골교회에 있으면서 평생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맛보고 있습니다. 신도 수나 시설은 부족하지만 마음에 들어오는 충만감을 남들은 알 수 없을 거예요.”

마음의 평안과 행복은 세상의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많았다. 이 장로도 자기의 행복을 이렇게 고백했다.

“만약에 말이죠, 하나님이 저보고 중풍으로 쓰러지기 이전의 상태로 돌려준다고 하셔도 지금 영혼이 느끼는 행복감을 잃는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성령이 주는 행복은 무엇하고도 비교할 수가 없어요.”

그들은 쉽게 말하면 도가 통한 사람들이다. 영적(靈的) 세계의 신비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깊은 산 속의 네온 반짝이는 작은 교회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이 교회로 바로 안내하지 않고 도깨비 길 옆의 공동묘지를 가게 한 건 이상했다. 부부가 함께 봤으니까 연기처럼 사라진 사람들과 차는 분명 환상은 아니었다.

“여기 오는데 차로 산길을 10분 이상 달릴 정도로 네비게이션이 오차가 난다는 게 정말 이상하네요.”

내가 그들에게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차창에 얼굴이 달라붙었던 갑자기 나타난 여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굴러가는 차에 달려가 담뱃불을 빌리는 자체가 성립하기 힘든 논리였다. 밤에 공동묘지에 차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렇다고 새로 근처에 묘지가 생겨 상주(喪主)들이 남은 것도 아니었다. 이 장로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까 공동묘지에 계신다고 할 때 내가 기도해 봤어요. 요즈음 네비게이션이 그 정도 잘못될 리가 없거든요.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엄 변호사에게 귀신을 볼 수 있는 영안(靈眼)을 열어놓으신 것 같네요. 믿음이 한 단계 올라가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이 되라고 말이죠. 도깨비길이라는 이름도 단순히 지어지는 거는 아니라고 봅니다. 옛날부터 뭔가 나타났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 게 아닐까요.”

그날 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내게 물었다.
“공동묘지에서 갑자기 운전석 옆에 얼굴이 달라붙었던 그 여자 다리를 봤수? 귀신은 발이 없다고 하잖아?”
“당연히 안보였지. 만약 다리가 없는 게 보였다면 난 그 자리에서 뻣뻣하게 뒤로 넘어갔을 거야.”
“나도.”

아내의 대답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무래도 귀신을 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