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가 바뀌면 기업도 살아남지 못한다. 자위(自衛)수단을 갖지 않은 객체(客體)는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 좌익들에게 영합하거나 굴종하는 것은 자위수단이 못된다.
국내 대기업 그룹 오너들이 청와대에 불려나가 반강제적 요구에 의해 문화·스포츠재단 설립에 자금 출연을 했다. 이를 주도한 대통령에게 '강요죄'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반박하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러나 특검은 형량이 '강요죄'보다 훨씬 높은 '뇌물죄'로 엮기 위해 그 중에 가장 많은 돈을 낸 그룹의 오너를 구속시켰다. 그리고 다른 오너들도 엮으려고 검찰의 법기술자들이 묘안을 짜내고 있다.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취지가 나쁘지 않으니 별 생각없이 돈을 냈는데 이를 문제삼아 정치보복의 희생물이 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군부 독재'라는 권위주의 시대에도 없던 일이다. 당시에도 기업인들이 종종 쇠고랑을 차기도 했지만 모두가 개별적인 비리로 문제화 된 것이었다. 지금처럼 정부에서 무슨 재단을 만들겠다고 하여 경제인 단체를 통해 반공개적으로 지원을 했다가 엮여 감옥까지 간 경우는 없었다. 소위 '민주화 시대'에 들어와 새로운 권력자들이 '민주'라는 잣대를 지기들 편의대로 들이대며 정치적 보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추진한 '일해재단' 설립 경우에도 훗날 뇌물죄로 엮으려 했다. 그러나 그 때는 실패했다. 개별 기업이 대가를 전제로 돈을 낸 게 아니라 경제인들이 공동으로 출연한 것이기에 문제 삼으려면 전체를 문제 삼아야 하는 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제 삼으려면 이재용만 구속할 게 아니라 재단 설립에 돈을 출연한 기업들의 오너 모두를 구속해야 할 것이다. 같이 돈을 냈는데 누구는 대가가 있었고 누구는 대가가 없었다는 식의 선별은 표적수사, 기교수사라 아니할 수가 없을 것이다. 기업인들이 이렇듯 정치보복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인권 측면에서나 국가경제적으로 지극히 위험한 신호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 가운데 사업보고서를 낸 253개 사의 고용현황을 집계한 결과 1년 전보다 약 2만 명(2.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의 작년 실적은 좋았다. 국세수입 실적이 추경 세입예산보다 약 10조 원이나 더 걷혔다는 정부 발표다. 다른 요인도 있었지만 기업 실적의 개선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주요 기업들이 종업원 수를 줄인 것은 정치권의 지나친 간섭에 따른 불안감이 작용한 측면이 크다고 본다. 무분별한 '근로자 우선주의 노동정책'과 틈날 때마다 '법인세 인상 협박' 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을 수가 있을 것이다. 경제활동이 위축되면 고용시장도 냉각된다는 것은 상식 이하의 문제다.

앞으로는 기업(단체)들이 정치권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방어 마인드나 로비성 전략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좀 더 능동적인 방어 전략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본다. 정당이나 노동조합 등 압력 단체를 지금까지는 협력적 협상 대상으로 상대해 왔다면 도를 넘은 일방적 공격 앞에서는 싸워야 할 적대적 협상 대상으로 인식과 태도를 바꿔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정상을 교정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할 것으로 본다.

예컨대 '불법 노조 파업'에 지금은 거의 써먹지 못하고 있는 '사업장 폐쇄'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개별 기업을 넘어 '신규 채용 중단' 등으 경제단체 차원의 공동 대응도 고려해 볼 일이다. 또한 근로자들의 무기로만 인식되어 온 '잔업 거부'도 '잔업 폐지'라는 고용주의 무기로 전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잔업을 줄이면 생산 차질도 있지만 근로자들의 봉급도 줄어든다. 지금과 같이 생산 차질로 인한 손실에만 전전긍긍하는 소탐대실(小貪大失) 구도를 기업들 스스로가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본다. 체제가 바뀌면 기업도 살아남지 못한다. 자위(自衛)수단을 갖지 않은 객체(客體)는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 좌익들에게 영합하거나 굴종하는 것은 자위수단이 못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