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먹고 살기 힘들어 평생 몇 번 못 보던 고종사촌 동생과 이렇게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만나게 됐다. 2017년 4월7일 아침 부산 동래의 온천장의 한 호텔방에서 잠이 깼다.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작은 공원의 나뭇가지에는 연두색이 풀어지고 있었다. 65세의 변호사인 나는 보다 본격적인 인생 제2막의 변호사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까이는 내 주변의 일가친척들부터 시작해서 멀리는 하나님이 보내는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내게 주어진 변론이라는 방법으로 돕기로 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영어나 일본어 교사가 정년퇴직 후 무료로 외국인들을 안내하는 것이나 같았다. 호텔 1층의 대중탕에 들어가 앉아서 눈을 감고 조용히 내면의 그분과 대화를 했다.

‘주님 이제는 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차비 숙박비 내 돈을 써서 무료변호를 하려고 여기 내려왔습니다. 굳이 교회에만 돈을 내야 헌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다. 진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법정에서 변론하는 게 나의 기도고 예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하나님? 세상 성직자라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율법에 굳이 얽매이기 싫습니다. 직접 하나님께 물어서 모든 걸 결정하려고 합니다.’

나는 눈을 감고 잠시 응답을 기다렸다. 마음 깊은 바닥에서 어떤 부드러운 느낌이 오는 것 같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글로 쓸 수 없는 그런 질감이 느껴졌다.

오전 10시30분 나는 부산지방법원 355법정 형사 3단독판사 앞에 피고인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검사가 공소장을 낭독하고 있었다. 택시운전기사끼리 비보호 좌회전 구역에서 시비가 걸려 몸싸움을 하다가 한 사람이 바닥에 넘어져 허리를 삐끗했다는 사안이었다. 의학적으로는 척추압박골절로 12주의 안정가료를 요한다고 진단서에 나와 있었다.

“검사의 모두진술에 대해 변호인 의견이 있으면 말씀하시죠.”

“이런 사건은 누가 잘못했던 간에 먼저 치료비라도 주고 합의해야 하는 게 도리인 줄 압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택시기사지만 그중에서도 빈곤의 바닥에 있는 사람입니다. 식당을 하다가 파산을 했습니다. 택시기사가 되어 월 80만원 받는 월급에서 매달 30만 원씩 빚을 갚고 있는 상태입니다. 나머지 50만 원으로 생활을 하는 입장이라 돈을 드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 돈을 쓰면서 부산으로 내려온 것이다. 내가 덧붙였다.

“피해자라는 분이나 법정에서는 그러면 어떻게 서울에서 변호사가 부산까지 내려와 변호를 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실 겁니다. 저는 피고인의 사촌형이 됩니다. 그래서 국선변호에 맡기지 말라고 하고 직접 이렇게 내려온 것입니다. 그 점에 돈이 있으면서 치료비도 주지 않더라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판사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가 증거목록을 재판장에게 제출하고 그 사본 한 부가 변호인석에 있는 내게 전해져 왔다. 난 이미 고종사촌 동생에게서 그의 입장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었다. 그리고 대충의 사건기록도 읽은 후였다. 돈이라는 꺼풀이 없이 마음을 비우고 기록을 보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는 수가 많았다.

“빈 택시를 운전해 가던 피고인이 승객을 태운 피해자가 운전하는 택시 앞에 좌회전을 하기 위해 서자 뒤에서 클랙션을 울리고 창을 열고 쌍욕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승객을 태운 상태에서 차를 세우고 나와서 시비를 걸었습니다. 성격이 지독히 과격한 분이 아니라면 보통의 상황과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욕 한두 마디 하고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승객을 태운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피고인의 주장으로는 피해자가 다가와서 의도적으로 부딪치고 뒤를 보더니 팔을 짚고 스르르 아스팔트 위에 넘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이 법정에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세 번째로 의문점은 피해자라는 분은 나이가 칠십 가까운 노인입니다. 척추압박골절이라는 진단은 골다공증의 노인에게 흔한 증상입니다. 그리고 전에 그런 증상을 이미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들을 본 변호인이 이 법정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피해자라고 한 운전기사나 승객의 검찰 경찰에서의 증거는 동의하지 않겠습니다. 법정에서 본 변호인이 직접 진실을 위한 신문을 해 보겠습니다.”

“그러시죠. 검사는 그 증인들을 다음 기일에 출석시켜 주시고요.”

내가 다시 한마디 덧붙였다.

“의료보험공단이나 건강심사평가원에 피해자가 전에 척추를 치료받은 기록이 있는지 사실조회를 신청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재판부에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데 공단측에서는 법원에서 사실조회 신청을 해도 개인정보라고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자세히 목적을 쓰시도록 해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증거신청을 하고 일차공판이 끝났다.

서울로 향하는 KTX 열차가 선로 위를 총알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황갈색 들판에 연두색 빛이 수채화같이 풀어지고 있었다. 서로 먹고 살기 힘들어 평생 몇 번 못 보던 고종사촌 동생과 이렇게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만나게 됐다. 이웃을 사랑하란 말은 예수님한테 들었지만 친척이 제일 가까운 이웃인 것을 등한시했던 것 같다. 내 돈을 써가면서라도 일을 주신 것에 대해 그분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