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보수이념’이란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 물론 미래 지향적인 理想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이 보수의 기본가치인 경험과 전통까지 통합하는 상징적 용어로 부각돼선 안 된다. 이념이란 말은 어쩌면 전체주의 용어이다. 그 독점체제가 바로 북한이다.  

수령주의이념, 주체이념, 선군이념, 심지어 강성대국 이념이라고까지 온갖 허구를 이념화한다. 각이한 견해와 생각을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이상으로 몰아가는 이념의 집중 성질을 최대한 악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념은 출발부터 목표까지 그 주도권한의 일방적 진실로 편애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늘 새롭고 싶은 ‘진보’라면 미래로 부추기는 비슷한 두 용어의 조합인 ‘진보이념’이 맞다. 하지만 보수가 ‘보수이념’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경험가치와 상상가치가 충돌하는 모순용어이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나는 그 ‘보수이념’의 폐단을 직접 목격할 기회가 있었다. 보수 원로 한 분이 민감한 주제와 관련하여 과감하게 옳은 지적을 했다. 그러자 평소 팬이라던 사람들이 즉석에서 반발했다.  

그들이 흥분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한마디로 보수이념을 배신해서라는 것이다. 그 기준이란 자기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는 것뿐, 진실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팩트가 과학적일수록 더 야단쳤다. 평소 자기들을 자유주의라고 열변했던 그들이 남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모습들이었다.  

개인이 아닌 '우리의 이념'으로 못 박아놓은 집단세뇌 결과 개인적인 사고의 자유를 빼앗긴 듯했다. 보수의 경험과 전통은 진실과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가치로 평가되는 것이지 결코 이념으로 선동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보수는 보수이념이 아니라 보수가치를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