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짓는 주상복합 빌딩이나 아파트에 트럼프라는 이름을 사용하자고 하니까 아예 바로 나오는 대답이 '얼마 줄래?'였어." 큰 공기업 사장을 거치고 지금은 책과 영화로 노후를 보내는 고교 선배와 사무실 아래 보리굴비 집에서 점심을 했다. 재벌기업의 사원으로 들어가 사장까지 거치면서 오랜 세월 기업에 몸담았던 경제인답지 않게 낭만적인 소년시절의 꿈을 지금도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가 밥을 먹던 중에 이런 말을 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 말이야. 철저하게 장사꾼이고 한국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는 인간이야. 그런데 언론을 보면 트럼프가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쓰고 있더라구.”

“트럼프가 어떻게 한국을 아는데요?”

“예전에 트럼프가 어려울 때 우리 그룹 회장이 5000만 불을 지원한 적이 있지. 그런 인연으로 골프장에서 그룹 회장 부인하고 같이 찍은 사진도 있어. 그 양반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물었다.

“옛날에 우리 그룹에서 한국에 짓는 주상복합 빌딩이나 아파트에 트럼프라는 이름을 쓰면 어떨까 생각했어. 그래서 미국의 트럼프에게 그 이름을 사용하자고 하니까 아예 바로 나오는 대답이 '얼마 줄래?'였어. 자기가 미국 스포츠 경기장에 나가고 이름을 사용하게 하면 백만 불을 받는다는 거였어. 그래서 깎고 깎아서 팔십구만 불에 결정을 봤지. 지금 한국에 트럼프란 이름이 들어간 건물이 일곱 군데 정도 있을 거야. 그거 다 트럼프한테 돈을 주고 정식으로 이름을 쓰는 거야.”

“그런 비싼 가격을 주고 이름을 쓴다고 어떤 이익이 있어요?”

나는 얼핏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소리하고 있어? 분양하자마자 아파트당 바로 오천만 원의 프리미엄이 붙었어.”

“그렇구나.”

나는 상상할 수 없는 기업세계의 일이었다. 그런 미국의 대통령에게 오늘날의 한국은 어떤 존재일까. 광우병 사태로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시위가 벌어질 때 나는 농수산부장관과 소고기 협상대표의 법률대리인으로 관여한 적이 있었다. 소고기 수입 협상과정을 체크하면서 우리에게 미국은 어떤 존재인지 미국에게 한국은 어떤 존재인지를 살피게 됐다. 미국에서 소고기를 생산하는 업자들이 정치자금을 대면서 대통령과 장관들을 압박해 한국이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도록 하는 구조였다. 생산되는 소고기의 판매망을 확대하는 전쟁이었다.

한국에게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산 물품을 가장 많이 팔아먹을 수 있는 시장이 미국이었다. 러시아나 인도 등 땅덩어리가 커도 미국같이 물건을 사 줄 수 있는 구매력인 돈을 가진 나라가 없었다. 만약 그런 시장이 되는 나라가 있다면 우리는 손님이 왕이라는 의식으로 얼마든지 그런 나라에 허리를 굽히고 영업용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 시장이면 물건을 팔기 위해 그들에게 친절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국가간의 관계도 윤리나 의리보다 경제적 이익이 앞서는 것 같았다. 전쟁은 총으로 하는 국제경제고 무역은 총 없는 전쟁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이 이런 세계에서 지혜를 가지고 이겨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