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문을 여는 그런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에이.” 그는 귀찮은 듯이 옷장으로 다시 가서 키를 꽂았다. 오후에 산책을 하다가 목욕탕이 보이길래 들어갔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몇 블럭이 떨어진 곳에 있는 조금 큰 목욕탕이었다. 옷장 문이 열리지 않았다. 카운터에서 받은 열쇠를 이리저리 바꾸어 꽂아보아도 옷장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구멍에 전자키를 넣고 돌리면 열리는 단순한 구조인데도 옷장 문은 열리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목욕탕 안을 둘러보았다. 종업원이 보이지를 않았다. 다시 카운터로 가서 열쇠를 바꾸려고 하는 순간 구석의 이발의자 뒤에 앉은 이발사가 보였다. 종업원은 아니더라도 항상 그곳에 있는 그는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열쇠를 넣어도 옷장문이 열리지 않는 데요.”
도와달라는 뜻이었다.
“열쇠를 구멍에 꼭 넣고 돌리면 열려요. 그렇게 하세요.”
하나마나한 말이었다.
“몇분 동안 열쇠를 넣고 이리저리 돌려봤는데도 안돼요.”
내가 말했다. 잠시 목욕탕 종업원이 자리를 비웠다면 그가 도와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에이, 그것도 못해요?”
그가 그렇게 툴툴대면서 옷장 앞으로 가서 열쇠를 꽂더니 문이 바로 열렸다.
“고맙습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 탕에 들어가 몸을 씻고 나왔다. 옷을 입기 위해 다시 문을 열려고 할 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혹시나 실수가 있을까봐 열쇠를 구멍 끝까지 밀어넣고 돌려보았다. 열쇠는 완강하게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이번에는 열쇠의 위치를 바꾸어 넣고 비틀어보았다. 열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상하를 바꾸어 보기도 하고 비트는 강도를 바꾸어보기도 했다. 몇 분이 흘렀다. 벗은 몸으로 카운터로 갈 수도 없었다. 아직도 목욕탕 종업원은 보이지 않았다. 손님이 없는 오후라 잠시 수면실에서 눈을 붙이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발사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다시 이발사에게 가서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해요, 또 문이 열리지를 않네.”
이발사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 돋아나면서 입을 열었다.
“옷장 문을 여는 그런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에이.”
그는 귀찮은 듯이 옷장으로 다시 가서 키를 꽂았다. 그가 키를 돌려도 순간 움직이지 않았다.
“그거 봐요, 안 열리잖아요?”
내가 말했다. 그가 다시 한 번 열쇠를 만지니까 열쇠는 스르르 돌고 문이 열렸다.
“영감님 이런 것도 몰라요?”
그가 짜증이 묻은 목소리로 비웃듯이 내게 말했다. 순간 불같이 화가 나서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아까부터 ‘그런 것도 몰라요?’하고 목소리에 짜증을 잔뜩 담아서 말하는데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영업장소에서 그렇게 불친절하게 해도 되는 겁니까? 왜 손님에게 화를 냅니까?”

말을 뱉어내는 순간 나는 후회했다. 화를 내지 말아야 하는데 화를 낸 것이다. 내가 기계에 둔하든지 나이를 먹어 그가 무시하면 무시하는 그의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가 화를 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턱없는 대우를 받고 분노했다면 화를 낸 나에게 인내가 없는 것이다. 젊어서 내가 그랬다. 노인들을 보면서 이것도 못 봐? 저 소리가 안 들려? 왜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거북이 같이 굼뜨지? 세월이 지나보니까 이제 알 것 같다. 마일리지가 거의 다 끝나가는 기계에서는 붉은 녹물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근처 예배당에 들어가서 쉽게 분노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