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불과 10일, 그 동안 지지자들의 열광에 도취되어 잔치를 벌리다가 잔치가 끝난 다음에는 홍준표의 말대로 “모두 함께 죽어버리자”는 것인가? 보수진영이 단단히 미쳤다

이재영

요즈음 보수진영을 보면 모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사분오열하고 있는 이 참담한 상황에 후보자 자신은 물론 지지자들이 제각기 대역전극을 자신하는 자기최면에 열중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그렇게라도 위로하지 않으면 너무 괴롭기 때문이라고 하자. 그러나 앞으로 꼭 10일 뒤에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받을 충격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가? 어느 저명한 보수 논객은 지지율 여론조사가 극단적으로 편향되어 있어서 신뢰할 수 없으며 실제로는 보수 유권자들이 회귀본능으로 모두 홍준표 후보를 찍고, 나머지는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으로 갈려서 홍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아주 논리정연한(?) 예측을 내놓았다. 어느 우파 정치인은 홍준표, 유승민, 조원진, 남재준이 단일화하면 필승이라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지지율이 1%도 안되는 후보를 지지하는 우파논객은 시종일관 홍준표와 유승민을 맹공격하고 있다.

나는 여론조사가 발표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그 수치가 실제와 크게 다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물론 조사 결과가 어느 정도 왜곡되었으리라고 추측되지만 그 정도는 우리가 희망하는 것처럼 그렇게 크지 않다. 혹자는 빅데이터상의 수치를 근거로 여론조사가 실제와 크게 다르다고 주장한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예로 든다. 트럼프가 여론조사에서는 뒤졌지만 빅데이터는 앞섰고, 결과를 보면 빅데이터의 분석이 여론조사 보다 정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미국 대선에서 여론조사가 실제의 결과에서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니다. 주별 승자독식이라는 독특한 미국 선거제도 때문에 트럼프가 당선되었지만 득표율에서는 클린턴이 2% 앞섰으며, 이는 선거일 전날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와 거의 일치한다. 오히려 빅데이터 분석이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한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도 있다.

어제 발표된 여론 조사 결과로는 우파 후보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15% 밖에 않된다. 그런데 숨은 보수표의 결집으로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앞으로 10일 뒤에는 40%정도 득표하여 당선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엄청난 자기최면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지난 몇 번의 TV토론에서 홍준표 후보는 매우 효과적으로 대처했으며, 훌륭한 대통령감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그의 모든 발언이 보수 꼴통인 내 마음에 쏙들었다. 그러나 중도나 좌편향 유권자의 시각에서도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지금 홍준표 후보의 유세현장은 열기가 뜨겁고 TV토론과 기자회견에서 보여주는 그의 대단한 입담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그것만 보면 홍후보가 이번 선거를 압도할 것만 같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의 40% 지지율은 터무니 없는 수치가 아니다. 그는 지난번 대선에서 48.5%를 득표했으며, 지난 4년간 우리사회는 좌측으로 더 기울었다고 보아야 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된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재 40대와 50대 중반까지는 예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80년대 대학을 다닌 486, 586세대이다. 나는 그 세대의 여러 사람들과 많은 격론을 벌인 경험이 있다. 그들은 대체적(80% 이상)으로 교조적인 이념과 사고로 머리가 굳어져 있으며 변화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안철수가 성공한 기업가이면서도 좌파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도 바로 그의 세대적 영향이 크다고 본다. 지난 4년간 드러난 문후보의 전력과 본인의 발언을 통해서 보수층은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신념이 더욱 확고해졌다. 그러나 50대 중반 이하의 젊은 세대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좌파 진영에서는 그들 세대들의 성향을 간파하고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당선은 그만 두고라도 선거뒤에 겪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보수진영은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오늘 아침에 김종인을 업고 안철수가 단일화 승부수를 던졌고, 홍준표와 유승민의 반응은 부정적이라는 기사 제목을 읽었다. 내용은 너무 뻔한 이야기라서 읽지도 않았다. 지금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혹시라도 단일화가 성사된다면 승산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 선거가 끝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그뿐 아니라 문재인 진영은 아마도 압도적인 승리를 주장하며 거세고 몰아붙일 것이다. 지금 홍준표나 유승민은 당선 보다는 선거 이후의 입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공황상태에 빠진 보수층 유권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이 자기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고집과 자기최면으로 일관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본인의 입신양명에만 몰두할 수 있겠는가? 이제 불과 10일, 그 동안 지지자들의 열광에 도취되어 잔치를 벌리다가 잔치가 끝난 다음에는 홍준표의 말대로 “모두 함께 죽어버리자”는 것인가?

운명의 시간은 잔인하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 모두의 운명, 그리고 우리 후손의 운명, 바로 우리 조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