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요?” “일선에서 위험을 가리지 않고 취재하고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 부장이 되어 데스크에 앉은 이후부터는 그런 보람은 없었던 것 같아" 아내와 동네 식당에서 늦은 저녁으로 생선구이를 먹고 있을 때였다. 아내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이웃에 사는 대학 선배 부부였다. 차나 한 잔 같이 하자는 것이다. 동네 작은 교회에서 만나 정을 나누게 된 사람들이다. 우리 부부가 밥을 먹을 동안 교회 앞 정원에서 밤 산책을 하면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주로 혼자 있고 성격이 소극적인 나는 마음은 있어도 남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럴 때면 하나님은 좋은 이웃을 보내주시는 것 같다. 잠시 후 우리 부부는 선배 부부와 함께 교회 근처의 찻집에서 아메리카노와 작은 케익 조각을 앞에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노년의 즐거움이다. 두 집 다 장가를 들지 않은 아들에 대한 걱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고는 공통된 화제는 건강에 대한 걱정이다.

“내가 당(糖) 때문에 고생한 이후로 아무리 먹어도 몸무게가 늘지를 않고 점점 말라 가.”

선배는 마른 고목같이 바짝 말라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마다 모두 어딘가 고장이 나고 부품을 고정시켰던 나사에서는 녹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풍화되는 자연현상이 아닐까. 그 다음 우리는 미래의 꿈이 아닌 과거를 얘기하게 된다. 선배가 기자 시절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견됐을 때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파키스탄과의 분쟁이 있을 때야. 한국의 종군기자로 나 혼자 그곳에 들어갔어. 말도 통하지 않고 전화나 통신 등 모든 시설이 불통이 된 그곳이었지. 눈에 살기가 도는 수천 명의 난민들이 내 정체를 몰라 적대감이 뿜어져 나올 때면 맞아죽어서 어디 묻혀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공포가 엄습하더라구. 나는 취재한 걸 기사를 썼는데 서울의 본사로 송고할 방법이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우리 대사관의 통신 담당관한테 부탁했어. 통신 담당은 그 기사를 암호화해서 종이에 구멍을 뚫고 그걸 서울 외무부 본부로 송신하면 외무부에서는 그걸 다시 풀어서 신문사에 알려준 거야. 서울에서는 내가 쓴 아프가니스탄 기사를 읽는데 내가 그렇게 사지(死地)에 들어가 목숨 걸고 쓴 걸 아무도 모를 거야.”

병색이 얼굴에 돌던 그가 과거 기자시절을 얘기하는 순간 눈에 빛이 나고 피부에 윤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의 영혼은 과거의 전성기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그 후 신문사의 부장을 걸쳐 고급관료로 자리이동을 했었다. 청와대에 근무하기도 하고 차관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접었다.

“일생에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요?”
내가 물었다.

“기자가 되어 일선에서 위험을 가리지 않고 취재하고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 신문사에서도 부장이 되어 데스크에 앉은 이후부터는 그런 보람은 없었던 것 같아.”

지난 시절 생각하면 경쟁사회에서 우리들은 사다리를 타면서 하나라도 더 높이 올라가려고 노력했다. 그게 성공이고 보람이라고 착각을 했었다. 각 분야에서 사다리 끝까지 올라간 친구들도 많았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 다음에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가 없었다. 그 마지막에서 팔을 활짝 펼쳤다가 추락하는 경우도 있었고 허무의 깃발만 꽂아 놓은 채 하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목표가 성취된 순간이 아니라 온 마음을 기울여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일을 하던 때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