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유행하던 취미의 하나가 있었다. 한문 단어를 파자(破字)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정구죽천(丁口竹天)’ 같은 것이다. ‘정구죽천’은 한문 단어 ‘가소(可笑)’를 파자한 것이다. 누군가가 “정구죽천이구나”라고 하면 그 의미는 “가소롭다”는 것을 의미했다.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6월1일 제주시에서 열린 <제12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개회식에 보낸 영상 기조연설에서 “전쟁 위협이 사라진 한반도에 경제가 꽃피게 하겠다”면서 “남북이 아우르는 경제공동체가 대한민국이 만든 ‘한강의 기적(奇蹟)’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확장시켜 세계 경제지도를 바꾸는 ‘한반도의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호언(豪言)했다고 보도한 6월2일자 <중앙일보> 1면 톱기사 제목을 본 순간 필자의 뇌리에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떠오른 단어가 '정구죽천'이었다.   

“남북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서 ‘한강의 기적’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확장하여 ‘한반도의 기적’을 만들어 내겠다”는 문 대통령의 ‘말’은 좋게 보아 준다면 하나의 ‘몽상가(夢想家)’적 발상(發想)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운 좋게 ‘흥남철수’의 탈북 피난 대열에 합류한 그의 부모가 도착한 남한 땅 경남 거제도에서 1953년에 태어난 문 대통령과 달리 1945년 해방 이후의 파란만장(波瀾萬丈)했던 한반도 현대사(現代史)의 전개 과정을 직접 체험하면서 살아 온 많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이 ‘말’은 그 동안 70여 년에 걸쳐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전개되어 온 피땀 어린 역사의 흐름을 깡그리 무시하는 ‘무지(無知)’와 ‘몽매(夢寐)’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문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을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의 1일자 기념사의 해당 구절을 보면 문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은 마치 당연했던 일이고 그 ‘확장판’인 ‘대동강의 기적’은 그것도 그가 말하는 “남북의 경제협력 공동체”만 마치 낭중취물(囊中取物)처럼 뚝딱 이루어내면 아주 용이하게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문 대통령의 생각이 그처럼 안이한 것이라면 그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망녕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문 대통령이 오늘날 우리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미화(美化)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이와는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북한의 경제적 파탄이 1948년에 이루어졌던 남북한의 상반된 체제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과연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를 묻지 아니 할 수 없다.   

1945년 민족 의사와는 상관없이 분단된 한반도의 38선 이남 지역에 대한민국을 건국한 건국주역들이 미래지향적인 혜안(慧眼)을 가지고 온갖 역경(逆境)을 극복하고 선택한 체제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였다. 이들 건국주역들은 이 같은 체제 선택을 통하여 ‘경쟁사회’와 ‘개방’ 및 ‘국제화’를 대한민국의 진로로 설정했었다. 반면, 북한을 점거한 공산주의자들의 선택은 이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들은 구 소련의 소비에트 체제를 모방한 ‘공산주의 일당독재’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선택하고 ‘명령사회’와 ‘폐쇄’ 그리고 ‘고립화’를 그들의 진로로 설정했다. 더구나, 1994년 김일성(金日成)의 사후(死后) 북한의 공산당 일당독재는 김 일가의 가족들 사이에 전근대적인 권력의 세습 후계가 지속되는 ‘전제 왕조’로 변모하여 국제적 조롱(嘲弄)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의 남과 북에는 그 같은 남북의 상반된 체제 선택의 결과가 극적(劇的)으로 전개되고 있다.   

본래 1945년 해방과 분단이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시점에서의 남북의 경제는 대부분의 광물 및 동력 자원과 공업 기반이 북한 땅에 편재(偏在)한 가운데 ‘남농북공(南農北工)’과 ‘남경북중(南輕北重)’의 숙어(熟語)가 보편화되었을 정도로 북한의 경제가 남한의 경제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북한의 그 같은 전통적인 경제력 비교는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한 것이 오래 전의 일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여전히 인구 과잉의 자원 빈국임에도 불구하고 GNP(국민총생산)에서 세계 10위권을 구가(歐歌)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있다. 대한민국이 물질적 풍요만을 성취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삶의 질’을 나타내는 2016년 유엔개발기금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즉 ‘행복지수’에서도 산정(算定) 대상에 포함된 158개국 가운데 15위를 랭크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늘의 북한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사실상 총체적 파산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실패한 나라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민주주의 지수’는 세계 167개국 가운데 167위, ‘언론자유 지수’는 189개국 가운데 179위, ‘실패한 국가 지수’는 178개국 가운데 157위이고 유엔개발기금(UNDP)의 ‘인간개발 지수’ 산정 대상에는 숫제 포함되지도 못하고 있는 실격(失格) 국가다. 이것이 1948년 북한이 공산독재 체제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선택한 결과다. 대한민국이 모든 국가지표에서 10위권의 경쟁력을 확보하여 세계적 선망(羨望)의 대상인 ‘성공한 국가’인 반면 북한은 경쟁력이 세계 200여개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으로 바닥을 치는 실패한 국가인 것이다.

이 같은 상황 하에서 궁극적인 통일을 포함하여 남북한 간의 모든 협력관계는 남북한의 객관적 현실의 토대 위에서 강구되는 것이 긴요하다. 남북한 두 체제의 경쟁력의 극단적인 차이가 이처럼 명백한 이상, 통일은 물론 통일까지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일체의 협력관계는 경쟁력이 있는 대한민국이 주도해야 하는 것이지 경쟁력을 상실한 북한이 주도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역사 상 두 번째의 좌파 정권을 출범시킨 문재인 대통령이 그가 표방하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하면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요체(要諦)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 대통령이 말하는 “남북을 아우르는 경제공동체”가 가능해지려면 그에 앞서서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절대적인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북한의 민주화를 통하여 이미 실패하여 전 세계적으로 도태(淘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북한에서 계속 유지되고 있는 공산당 일당독재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해체하고 ‘명령사회’ 대신 ‘경쟁사회’, ‘폐쇄’ 대신 ‘개방’ 그리고 ‘고립화’ 대신 ‘국제화’로의 변신(變身)을 선택하는 체제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와 관련하여 ‘교훈’으로 참고해야 할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이 있다. 첫 번째 사실은 1987년6월12일 동·서 베를린을 가르는 베를린 장벽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있었던 로날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연설이다. 레이건은 이 연설에서 동독의 배후 국가인 구 소련의 미하일 고프바체프 공산당 서기장을 향하여 “고르바초프 서기장, 만약 당신이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이 문을 열고 베를린 장벽을 허물라”고 요구하는 사자후(獅子吼)를 토했었다. 이때를 전후하여 동독에서는 공산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가 전개되기 시작하여 확산된 끝에 그로부터 2년여 뒤인 1989년11월 동독의 공산정부는 민의에 굴복하여 베를린 장벽의 개방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두 번째의 사실은 동독의 붕괴가 진행 중인 1989년11월28일 서독의 헬무트 콜 수상이 ‘유럽과 독일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10개 항목 제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협상을 통한 ‘독일 통일방안’이다. 콜 수상은 문제의 10개 항목의 ‘협상 통일방안’을 제안하면서도 이를 토대로 동독과 즉시 협상을 개시하는 것은 거부했다. 콜은 그 대신 문제의 10개 항목 제안에 관한 협상의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동독의 민주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붕괴 일로의 동독은 이미 헌법 개정을 통하여 동독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포기했을 뿐 아니라 동독 공산당을 해체하기까지 한 상태였지만 서독의 콜 수상은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동독이 인구비례에 입각하여 복수의 자유롭게 결성되는 정당이 참가하는 자유 총선거를 통하여 새로운 민주 정부를 수립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동독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결국 동독은 1990년3월 공산당을 포함하여 다수의 정당들이 참가하는 총선거를 실시했고 이 선거에서 공산당은 10% 미만의 득표를 하는 데 그치고 급조된 서독 기독교민주당의 ‘짝퉁’ 정당이 70% 이상의 득표를 하여 로타 디 메지에르라는 반공 변호사가 이끄는 ‘반공 민주 정부’가 수립되자 콜의 서독 정부는 이 ‘반공’ 동독 정부와의 통일 협상을 개시했다. 이 협상을 통하여 양독 간에 이 해 8월 ‘독일 통일조약’을 체결되고 이를 양독 의회가 비준하자 10월3일자로 동독의 6개 주가 서독 기본법 제23조에 의거하여 서독에 편입하는 형태로 통일을 완수하게 되었다. 결국, 독일의 통일은 ‘반공 서독’이 ‘공산 동독’과의 협상을 통하여 이룩한 것이 아니라 동독이 먼저 반공 체제로 체제 전환을 이룩한 뒤 비로소 이를 상대로 ‘통일 협상’을 수행한 것이다.   

이 같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문 대통령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어쩌면 문 대통령의 6월1일자 제주포럼 기념연설은 ‘남북 경제공동체’·‘한강의 기적’·‘대동강의 기적’·‘한반도의 기적’과 같은 고혹적(蠱惑的)인 어휘(語彙)들로 국민들을 마취(痲醉)시킨 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일부 호사가(好事家)들이 ‘달빛정책’(Moonshine Policy)라고 명명(命名)한 문재인판(版) 대북 유화(宥和)정책의 시동(始動)을 걸겠다는 계산을 반영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문 대통령의 계산이었다면 그 같은 그의 계산은 분명히 오판(誤判)일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한의 체제 변화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을 아우르는 경제공동체”를 거론하는 것은 이름 좋은 하늘 타리처럼 현실성이 없는 ‘몽상’에 불과하며 오직 여전히 “남조선혁명을 통한 적화통일” 노선에 집착하고 있는 북한에게 ‘대남 통일전선 전술’ 구사(驅使)의 공간과 아울러 이미 국제적 현안이 되어 있는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진전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을 제공하면서 그 비용은 대한민국에 부담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문 대통령이 대북 ‘달빛정책’을 추진하고 그 일환으로 “남북 경제공동체”를 거론하고 싶다면 그에 앞서서 서독의 콜 수상이 1989년11월28일자 ‘유럽과 독일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10개 항목 제안’을 공표했을 때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서 북한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자유롭게 결성되는 복수의 정당들의 참가가 허용되는 민주적 선거를 통하여 북한 주민들의 진정한 민의를 대표하는 새로운 민주정부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그 같은 조건이 충족되는 것을 전제로 하여 남북한이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룩하는 문제를 포함하여 상호 모든 현안 문제를 협상을 통하여 해결할 것을 제의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