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때 친일파를 청산하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위원회가 생기고 무덤 속에 있던 수천 명이 파헤쳐져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됐다.
검찰청에서 조폭 두 명이 조사를 받다가 한 명은 맞아죽고 다른 한 명이 조사실을 빠져나와 검찰청 비상계단을 타고 내려와 나의 법률사무소로 도망을 온 적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 나는 고문과정을 들어보았다. 사람을 눕힌 상태에서 양다리를 들어 올려 머리통 뒤쪽까지 가게 누른 다음 낭심을 뜯더라는 것이다. 물론 등 뒤로 수갑을 찬 채였다.

언론은 처음 고문근절 및 수사기관의 책임을 물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조폭사건 수사의 어려움이 강조되는 쪽으로 보도의 논조가 바뀌었다. 여론이 바뀌면 사건이 그냥 묻혀 버렸다. 법정에서 고문을 폭로해도 그게 인정된 적이 없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사소하게 보여도 적어도 사법부만은 관심의 긴장도를 늦추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맞아죽지 않을 절차적 정의를 지켜주는 게 법원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되면서 예전의 고문 대신 즉흥적이고 혼탁한 여론의 거센 물결이 사법부의 둑을 넘어 범람하는 것을 보곤 한다.

단군 이래의 최고의 사기꾼이라고 언론에 대서특필된 인물이 있었다. 이미 언론재판이 끝났다. 턱없는 탐욕을 부린 피해자라고 불린 사람들의 책임은 슬쩍 넘어갔다. 숫자가 많은 쪽이 선(善)이었다. 재판장은 선고를 하면서 이렇게 입장을 표명 했다.

“우리 형법상 사기죄는 다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인의 생각과 법원이 적용하는 의도가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판장인 저 역시 이 시대를 사는 이상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판장의 그 말은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사기죄를 고무줄같이 확장 해석해서 여론의 타겟이 된 인물을 처단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여론이 죽이라고 하니까 죽인 것이다. 어떤 여론이 들끓던 법원은 튼튼한 방파제가 되어 법의 본분을 지켜야 했다. 여론의 저주를 받은 피고인에게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그 사건에서 주심을 맡았던 배석판사는 나중에 내게 이런 내막을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재판장인 부장님과 의논해서 비교적 경(輕)한 형으로 봐주려고 했어요. 부장님도 그러라고 하셨구요. 그런데 주심판사인 저에게 로비가 들어오는 겁니다. 친구 변호사가 찾아왔어요. 법정에서 뻔히 할 수 있는 말을 사적으로 만나서 하는 거 보면 뻔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히려 제가 형을 높여 징역 12년을 건의했어요. 재판장인 부장님도 그렇게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형량이 결정됐는데 본인에게는 좀 미안한 면이 있죠.”

노무현 정권 때 친일파를 청산하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국회에서는 친일파 자손의 재산을 국가에서 환수해 버리자는 법을 통과시켰다. 소급입법을 금지하는 헌법에 위반하더라도 표를 의식하는 정치권의 체질이기도 했다. 위원회가 생기고 무덤 속에 있던 수천 명이 파헤쳐져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됐다.

일제(日帝) 말 영화에 출연해 대사를 한 마디 한 배우도, 무대에서 전쟁노래를 부른 가수도 친일파가 됐다. 법원은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위원회가 지목한 사람들을 그대로 친일파로 인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내가 본 사법부의 한 단면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여론 등 ‘다중(多衆)의 횡포’로부터 소수자를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사법부의 역할이다. 사법부는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우리 법원도 이제 그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