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을 해 보니까 돈 있는 사람들은 로펌을 써서 고소를 하고 뜻을 이루는데 돈 없는 서민들은 어떻게 법의 보호를 받나 고민입니다."
찬송가를 웅얼거리면서 이른 아침 동네 공원 산책길에 나섰다가 안면이 있는 얼굴을 만났다. 32년 전 사법연수원을 다닐 때 보았던 사람이다. 30년 가량을 검사생활을 하던 그는 몇 년 전 언론에 검찰총장 후보로 오르내리던 게 기억났다. 사다리의 마지막까지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장점이 있었다. 그건 실력이 아니라 철저한 겸손함이었다. 어떤 조직이나 마찬가지였다. 남들과 대할 때 자기를 강조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저도 이제 30년 가량 변호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 30년 검사생활을 하다가 세상에 나와 보니까 어때요?”
내가 물었다. 권력의 옷을 입고 있다가 세상에 나오면 상당수가 박탈감을 느끼곤 했다.

“내가 하기 싫은 건 안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서 좋던데요.”
상당한 의미가 담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참여하던 형식적인 회의에 가기도 싫었을 것이다. 이취임식 같은 의전행사도 귀찮았을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게 힘들었을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업무 쪽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큰 로펌에서 고소를 대리해주는 팀을 지휘하고 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일을 해 보니까 돈 있는 사람들은 로펌을 써서 고소를 하고 뜻을 이루는데 돈 없는 서민들은 어떻게 법의 보호를 받나 고민입니다. 검찰에 고소하면 대부분 검사들은 그걸 그대로 경찰서로 보내요. 담당형사가 알아서 조서를 작성하라는 거죠. 수사권 독립이 정국의 이슈가 되니까 형사들도 달라졌어요. 같은 국가기관인데 우리가 왜 심부름을 해야 하냐고 생각하면서 성의 없이 대충 조서를 작성해서 다시 검찰청으로 보냅니다.
담당검사도 자기가 움직이지를 않아요. 변호사가 입맛에 맞게 내용을 써서 서류를 만들고 증거자료까지 정리해서 가져다 줘야 그걸 받아먹을지 말지예요. 자기가 몸을 움직여 수사할 생각은 별로 하지 않고 귀찮으면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가 없다고 결정을 내려버리는 겁니다. 그게 현실이예요. 그러니 실제 증거를 수집하고 증인의 진술을 확보하는 게 다 변호사가 하는 일이죠. 그게 공짜인가요? 비싼 돈을 받는 거죠. 그러니 돈 없는 서민은 고소도 하지 말고 죄도 짓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세상에 나온 그는 현실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이십년 전 제가 검사를 할 때는 도중에 나쁜 놈이란 걸 확신할 때는 큰소리치면서 피해를 변상하라던가 합의하라고 하면 움찔 하고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요즈음 나쁜 놈들은 그런 소리를 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아요. 제 경우는 전관예우로 의혹의 눈길을 받는 대상이기도 한데 요즈음은 철저히 주장하고 증거자료를 만들어 줘야지 예전처럼 후배에게 부탁한다고 일이 되는 게 아니예요. 검사가 재판관이 되고 변호사가 예전에 검사가 하던 일을 하는 거예요. 로펌 젊은 변호사들이 그 일을 맡고 있어요.”

“그거야 경찰서 형사도 마찬가지예요. 자리에 앉아서 당사자들 보고 증거를 다 가져오라고 하고 뒤에 양복을 걸어두고 판결을 하려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대법관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이 떠드는 경우도 많아요.”

세상에서 맡은 배역에 따라 각자 거기에 충실해야 한다. 경찰이나 검찰공무원이 수사를 하기 싫으면 앞으로 영국같이 ‘사인(私人)소추주의’가 실행되는 낫다. 진실을 제일 잘 아는 당사자가 법정에 나가서 싸우는 편이 껍데기 대리를 하는 검사보다 나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