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麝香)에 대한 내 상식이 깨진 뒤부터 나는 주장을 삼가려 노력한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큰스님과 시자(侍者)가 탁발(托鉢)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부지런히 마을을 향해 걸어가다가 개울가에서 서성이는 한 젊은 여인을 만났다. 여인은 개울을 건너가야 하나 장마철이라 불어난 물 때문에 건너지 못하여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시자는 도와주고 싶었으나 여인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계율(戒律) 때문에 망설였다. 그때 큰스님이 나서서 여인을 업었다. 그리고 개울을 건너가서 내려주었다.
여인과 헤어져 둘은 말없이 가던 길을 재촉했다. 시자는 큰스님의 행동에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왠지 불순한 생각인 듯하여 감히 말은 못 하고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한참을 가다가 드디어 더는 못 참고 입을 열었다. '큰스님! 수행자는 여인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면서 어찌하여 그 젊은 여인을 업었습니까?' 이에 큰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이놈아! 나는 개울 건너자마자 여인을 내려놓았는데 너는 아직도 업고 있느냐?' 그제야 시자는 무엇인가 깨달았다는 듯 혼자 머리를 끄덕이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발걸음은 한층 가벼워진 듯했다.>

어디서 본 이야기의 줄거리를 살려 내 나름대로 각색을 했다. 문득 깨달음이란 단어가 머리에 떠 올라서다.

이 이야기를 통해 깨달음이란 의문이 남지 않아야 하다는 뜻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어떤 정형이 있을 수가 없겠다. 사람마다 드는 생각이 다 다르니 어느 것이 진정한 깨달음의 세계인지는 특정해서 말할 수가 없을 듯하다. 다만 스스로 더 이상의 의문이 없어야 그게 바로 깨달음이 아닐까? '큰스님'들이 말하는 '깨달음'이란 '세상에 궁금한 게 없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까?(그런데 궁금한 게 없으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시체지.)

어릴 적 국민(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사향(麝香)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사향노루란 짐승이 있는데 배꼽에 상처가 나면 혀로 핥아 스스로 낫게 한다. 이를 반복하면서 배꼽이 커지고 특별한 약효가 발생되면서 사향이라는 약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 잘못 알게 된 상식이 깨어지는 데는 오래 걸렸다. 성인이 되어서야 우연히 어느 TV 방송을 통한 한의사의 설명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를 내 두 아들에게도 들려준 뒤였다. 그때부터 나는 주장을 삼가려 노력한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명하려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다. 이것도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일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