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 어느 산골에 사는 한 할아버지 이야기.
최근 경북 봉화 어느 산골에 사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원래 고향이 춘천이기도 하지만 직업 군인이라 주로 강원도 일대에서 살았다고 한다. 장가를 경북 봉화 아가씨에게 들어 때때로 다녀오곤 했는데 좋더라고 한다. 처남들은 다 객지에 나가 있고 몇 년 전에 장인 장모가 다 별세하고 나니 처가가 빈 집이 될 판이었다. 늘 시골이 적성에 맞았다는 할마버지가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집을 지킬 겸 봉화로 내려가 살게 되었다는 게 대강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한 번씩 다녀올 때와는 달리 나이 먹어 막상 그곳에서 살아보니 인심이 아주 고약하더란다. 이유는 6·25 전쟁 통에 인민군들이 들어오면서 서로 고자질 판이 벌어졌다고 한다. 평소 사이가 좋지 못했던 상대를 무고하여 총살당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심지어 자생 위원회를 조직하여 완장 찬 이들이 다니며 예전에 부자였던 사람들을 추려 동네 사람들 앞에 세워 과거 죄를 이실직고하라고 닦달하여 끝내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등 못된 짓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니 이들이 서로 원수가 된 것이다.

현재 1세대는 다 죽어 없고 그 후손들이지만 부모나 조부모 등이 누군가의 밀고로 총살당하고 직접 죽창에 찔려 죽은 역사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승이 된 것이다. 그런 사이가 봉합되기란 어렵다. 지금까지도 서로 못 잡아 애라는 전언이다. 자기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지만 처조부모의 사연도 있고 이래저래 동네 사람들 심성들이 사납다는 것이다. 괜히 집을 맡았다며 후회를 했다.

노무현 정권 때였다. 지리산 자락의 어느 평온하던 마을이 소위 "과거사 정리"라는 것 때문에 뒤숭숭해졌다는 보도를 본 적이 생각난다. 역시 한국전쟁 때였으니 낮에는 국방군이 밤에는 인민군이 서로 상대편 부역자를 찾아 죽이고 죽는 짓을 반복하다가 한 동네 남정네들 대부분이 죽은 사건이 있었으나 전쟁이 끝나고 그 후손들이 이에 대해서는 일절 거론하지 않고 암묵적 화해로 수십 년을 평화롭게 살았는데 그놈의 '과거사 정리'가 불을 질러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는 내용이다.

우리 역사는 그리 자랑할 만한 무엇이 변변찮다. 가난에 찌들어 살면서 서로 지지고 볶다가 수 없는 외침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역사의 반복 아니던가? 그나마 박정희라는 걸출한 인물을 만나 한 때나마 국민통합을 이루고 가난을 몰아낸 역사가 있었다. 못된 것들은 지하로 숨고 대부분 국민들이 합심하여 희망가를 불렀다. 그러나 이도 잠시요 세상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