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전혀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제가 열네 살 때 갑자기 산사태가 나서 그 자리에서 집에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매장당하는 걸 봤어요." 이따금씩 지압을 받는다. 십년 세월을 단골이다 보니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정이 들었다. 며칠 전 지압이 끝날 무렵 지압사가 이렇게 말했다.

“당분간 일을 못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상했다. 그는 매일 지압을 해야 가족이 먹고 산다고 했다. 손가락에 가족의 생명이 달려있어 미끄러져도 몸으로 부딪친다고 했다.

“왜 무슨 일이 있어요?”
내가 물었다.

“병원에서 암이라고 하네요. 수술을 받기로 했는데 회복이 되도 지압은 바로 하기 힘들 것 같네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이십년 전 담낭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던 때가 떠올랐다. 앞이 캄캄했었다. 기둥인 내가 쓰러지면 집이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살고 싶었다.

“두렵지 않아요?”
내가 위로조로 물었다.

“아니예요, 전 전혀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제가 열네 살 때 갑자기 천둥소리같이 큰 소리가 나면서 산사태가 나서 그 자리에서 집에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매장당하는 걸 봤어요. 지금도 검은 흙더미 속에서 어머니의 발이 하얗게 나와 있던 모습이 생생해요. 갑자기 고아가 됐죠. 그때부터 안 해 본 노동이 없어요.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는 등짐을 지고 돼지똥을 치우기도 하고 봉제공장에 가서 욕을 먹으면서 일을 하기도 했어요. 살고 싶지 않았어요. 삶에 애착이 없는데 뭐가 무섭겠어요. 험하게 싸우면서 살았죠.
그러다 스승을 만나 지압을 배웠습니다. 기술을 배우는데 십년 동안 참 설움도 많이 겪었습니다. 참아냈죠. 지압사가 되니까 참 좋은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따뜻한 방 안에서 일을 할 때면 얼어붙는 것 같이 추운 밖에서 노동을 하던 게 떠올라요. 은은한 향이 나는 방에서 손님을 모실 때면 돼지똥 냄새 때문에 토할 것 같던 때가 떠올라요. 나는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저는 지압을 하면서도 한 가지를 지켰어요. 좋은 손님만 받아 정성을 다하기로 한 거죠. 이상한 손님은 거절하고 자존심을 지켰어요. 좋은 손님들을 만나 지압을 해 드리면서 세상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그가 손님을 받는 방법은 독특했다. 지나가다 우연히 간판을 보고 들어오는 사람은 절대 받지 않았다. 무시하는 투로 반말을 쓰고 교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정중하게 돌려보냈다. 지압하는 그의 손길에 정성이 담기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가족이 마음에 걸리지 않아요?”
“딸 아이 셋을 다 키웠습니다. 큰 아이가 반도체 공장에서 조립 일을 하는데 한 달에 임금을 꽤 받습니다. 그걸 모아서 시집을 가면 될 거고 둘째 셋째 딸도 다 키웠습니다. 연립주택도 하나 샀어요. 거기다 타고 다니는 자가용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해볼 거 다 해봤죠. 죽어도 한이 없다니까요.”

고난이 그의 삶의 선생인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어떤 경지에 오른 것 같았다. 남과 비교해 부러워하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모두들 남을 보면서 세상의 흐름에만 편승하고 있다. 공무원이 되려고 하고 좀더 부자가 되지 못해 안달이다. 없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그러나 행복한 지압사 그는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