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경기에서 심판은 정의의 수호자이자 재미의 균형자이다. 인간의 속성상 실수는 없을 수 없지만, 그것이 거듭되면 둘 중 어느 하나다. 심판이 미숙하거나 일부러 편파적으로 판정하거나! 어느 쪽이든 그것은 경기의 정의(正義)를 훼손한다.

한편 반칙도 허용치가 있는데, 일절 이를 고려하지 않고 선수가 반칙 언저리에만 가도, 심판이 냅다 휘슬을 불어 젖히면, 경기에 찬물이 끼얹어진다. 이른바 어드밴티지 룰(advantage rule)은 박수 받는다. 사소한 반칙에 연연하여 경기의 흐름을 끊지도 재미의 고양(高揚)을 꺾지도 말라는 취지에서 장려된다.

큰 것과 작은 것 중에서 골라야 할 때는 큰 것을 선택해야 한다. 반칙은 당한 사람이 불리하니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상응한 벌을 주는 법인데, 반칙에도 불구하고 공격자가 유리하다면 그대로 진행해야 큰 정의를 실현할 수 있고 덤으로 보다 극적인 재미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정의와 재미, 이 둘을 예술적으로 조화시키는 심판이 명(名)심판이다.

심판도 심판을 받는다. 아무리 고의성이 없어도 실수가 잦으면, 그는 자격이 박탈되거나 일정 기간 경기장에 서지 못한다. 이것은 상위 기관인 국내외의 경기 협회에서 결정한다. 이전에 아무리 명성이 높았더라도 검은 돈을 받고 경기를 조작한 것이 들통 나면, 그는 영구 제명된다. 이 사항은 협회에서 다룰 수 없어서 사법부로 넘어간다.

스포츠는 모의 전쟁이다. 살인과 파괴의 요소를 배제하되, 작전과 재미와 극적 요소는 최대한 살린 모의 전쟁이다. 규칙에 따라 펼쳐지는 전율적 루두스(Ludus) 곧 유희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유희이다.

이 규칙은 선수와 심판만이 아니라 관중도 지켜야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해가 없는 약속된 전쟁이니까, 관중이 한쪽 편을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경기장에 난입해서는 안 된다. 선수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해도 안 된다. 때로 그것이 약속된 모의 전쟁이 아니라 진짜 전쟁으로 착각하여 관중이 경기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면, 심판은 즉시 경기를 중단시키고 경찰을 부른다.

정치는 전쟁과 스포츠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비교적 정치 스포츠의 규칙이 잘 준수된다. 살인도 드물고 물리적 정신적 폭력도 드물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엄정 중립의 경찰과 판검사가 심판자로 나선다. 기자와 교사와 교수와 시민단체도 심판 보조로서 정의 실현에 발 벗고 나선다.

이 중에 규칙을 가장 잘 어기는 자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정치 선수들이다. 그들은 틈만 나면 규칙을 어기려고 든다. 권력의 열매가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이다. 관중인 국민도 규칙을 잘 안 지킨다. 여차하면 정치 경기장에 난입한다. 폭력과 선동과 조작에 국민이 정치인과 한 패가 되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그 둘이 온전히 한 몸을 이룰 때, 독재 국가가 탄생한다.

나치처럼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으므로 선거에서 승리한 그들은 뻔뻔스럽게 독재를 민주라 호도한다. 이를 중간에서 막아 주는 심판이 바로 경찰과 군인과 판검사와 교원과 기자와 시민단체이다. 군인은 모의 전쟁이 아니라 진짜 전쟁을 담당하므로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황이 아닌 한 나서지 않는다. 민주 국가에서는 숫제 군인은 나서지 못한다.

한국은 1987년 형식적 민주주의가 거의 완성된 후에 오히려 실질적 민주주의는 퇴보하기 시작했다. 정치 스포츠에서 선수 곧 정치인과 관중 곧 국민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규칙의 가시 담장을 두고 언제든지 불의(不義)의 손을 잡을 수 있지만, 심판만 공정하면 드러난 갈등뿐 아니라 숨겨진 갈등도 해소할 수 있어 민주주의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가 있다.

그러나 중립이 생명인 심판들이 위장된 선수나 선동적 관중이 되면, 미친 민주주의(democrazy)가 태어난다. 우리나라가 바로 그러하다. 좌파가 진보의 몽둥이로 갑질을 일삼고 친북이 평화의 칼로 국민을 윽박지르면서, 진실 하나에 거짓 아홉을 보태 진실이 열인 양 설치면서, 심판들이 너도나도 여기에 몸을 담그면서, 우르르 대세를 이루면서, 진실이 국민정서에 아첨하는 거짓에 침묵하고 정의가 떼법의 눈치를 보게 되면서, 독선과 위선이 판을 치게 되었다. 드디어 악법의 악법인 연좌제가 부활하기에 이르렀다.

“내 편은 모두 천사, 네 편은 모두 악마!”

사법부의 우리법연구회, 민주노총 산하의 언론노조, 일선 학교의 전교조, 대학의 운동권, 좌편향적 시민단체, 경찰의 불법시위 비호 세력, 이들은 ‘광우병’과 ‘세월호’에서 어떤 거짓도 파헤치지도 않았고 산같이 쌓인 뻔한 거짓도 거대한 세력을 이루고 있으면, 일체 죄를 묻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진실과 생명의 깃발을 높이 들고 온갖 음모설에 뼈를 대 주고 살을 붙여 주고 보호막을 쳐 주었다. 어물쩍 넘기거나 이마에는 중립의 띠를 두르고 입에는 진실의 거품을 물고 주야장천(晝夜長川) 한쪽 편만 들었다.

그들의 일방적인 매도와 개탄과 분개에, 급기야 관망하던 다수 기연미연(其然未然) 중도파 국민들이 청개구리 심판들을 믿고, 쭈뼛쭈뼛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한쪽으로, 왼쪽으로 시나브로 발걸음을 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여야 불문하고 이들 조직적 초법적 촛불세력에 맞설 만한 조직도 세력도 없다.

과연 그 끝은 어딜까? 언제까지 저들이 승승장구할까?

살림살이가 외환위기 때처럼 팍팍해지고 13년 연속 인권유린 세계 챔피언 공산왕조의 비수가 목젖에 닿아야, 국민이 대오각성할지 모르겠다. 그때야 심판들도 제 본분을 자각할지 모르겠다. 홍수가 닥쳐야 청개구리 심판들이 비로소 진실을 말할지 모르겠다. 

 (2017. 1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