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반영하고 이행하는 각료가 메모하는 것을 탓하는 것은 그만큼 일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를 비판할 때 언론들의 단골 소재 하나가 그의 회의 풍경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면 장관들이 메모를 열심히 하는 일종의 권위주의적이고 비생산적며 불통의 대명사인양 낙인을 찍었습니다. 여기 조갑제 닷컴에 수필을 게재하는 엄상익 변호사도 자기 친구가 박근혜 정부의 장관이었는데 그가 회의 때 둘러보니 다들 메모를 열심히 하는데 자기는 멀뚱멀뚱해서 일찍 짤렸다나 하는 글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회의는 어떤 주제나 안건을 갖고 회의 주제자가 참가자들로부터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대통령이 국정을 장악하여 국무회의를 일종의 집행 드라이브의 기회로 삼는다면 당연히 장관들이 대통령의 소견 발표를 청취하고 메모하는 것은 필요하고 또 생산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이 점은 민간회사의 CEO가 주제하는 회의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다 모여서 하는 회의란 것은 꼭 안건보다는 일체감을 갖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서양사람들이 하는 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많아서 늘 우리식 회의와 비교하여 어떤 것이 나은지 생각해 보았는데 서로 장단점이 있어 어느 식이 더 좋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대개 서양사람들 하는 회의에 들어가 보면 이 사람 저 사람 얘기하고 질문하고 답변하고 지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별 쓰잘 때 없는 얘기도 한도 끝도 없이 하는 것에 질려버렸던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항상 요약되고 필요한 안건을 준비하고 회의 주제자가 있으면 주제자의 소견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내가 하는 일의 방향이 잘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그야말로 박근혜식 회의에 젖은 사람이라 그런 서양식 회의를 비생산적이라 치부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도 질의 답변 과정이 많아서인지 서양사람들이 대부분 업무에 대한 이해도와 지식이 높고 그에 의거한 상황판단이 정확한데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다 장단점이 있는 것이고 어느 방식이든 잘 적응하여 최대한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데 있는 것이지, 누구는 말하고 누구는 열심히 받아 적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권위적이다 불통이다를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내각의 일원이 되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반영하고 이행하는 각료가 메모하는 것을 탓하는 것은 그만큼 일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