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기(意氣)가 상통한 남북 당국자들끼리 해결해야 할 모종의 속내가 있는지 그것이 오히려 더 궁금하다.


<북측의 앞에만 서면 움츠러드는 이 나라의 당국자들>

북한의 현송월이 이끄는 관현악단의 연주 장소를 사전 점검하기로 약속했던 북한이 갑자기 이유도 없이 방남을 취소했다고 통보해오자 통일부에서는 마치 우리 언론들이 무절제하게 기사를 남발해서 저들을 노엽게 했기 때문이라는 듯 우리 언론들을 향해 추측성 보도나 비판적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사실 이와 같은 당국자의 언론에 대한 요청은 <여론관리를 바로 못 하고 입 건사를 잘못하다가는 잔칫상이 제삿상이 될 수 있다>라는 북한의 대변인 격인 조선중앙통신의 오만 방자한 위협이 나온 후의 일이라서 입맛이 씁쓸하다.

평창올림픽과는 전혀 무관한 관현악단(말이 좋아 관현악단이지 실상은 김정은과 그의 체제 홍보기관임은 천하가 다 안다)을 파견하겠다는 북측의 제의를 덥석 받아들인 것 자체가 문제였다. 지금이 한가롭게 그러한 제의를 받아들일 때인가?

강릉과 서울을 오가며 번갈아서 펼쳐질 김정은과 북체제 홍보용 연주에 온 국민이 잔치 기분에 들떠 있다면 이를 지켜보는 동맹국의 기분을 한 번쯤 생각해봤는가?

그렇게 물러터지니까 예의에 어긋나는 관현악단인지 선전단인지의 파견 통보를 태연히 저지를 뿐만 아니라 우리측에서는 사전점검단의 점검에 필요한 준비에 분주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사유도 밝히지 않고 다만 '파견을 취소한다'라고 했다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취소가 아니고 보내겠다'라고 마치 어린아이 소꿉놀이하듯 우리를 농락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언론에 재갈을 물리지 않으면 잔칫상이 제삿상이 되리라는 위협은 마치 종주국이 변방국에 대한 협박이나 선전포고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무례한 협박과 농락을 당하고도 당신들은 북의 눈치나 살피며 우리 언론의 일상적인 기사를 탓하며 눈을 부라리는가?

무엇이 당신들로 하여금 저토록 비굴하게 만들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당신들이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던 DJ도 '대통령은 국민의 머슴'이라고 했거늘 이 나라 언론을 어찌 보기에 주적의 눈치를 보기 위해서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가? 저들은 엄연히 우리의 주적임을 벌써 잊었는가?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우리 당국자들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북측의 앞에만 마주하면 예외 없이 쪼그라들고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거의 일상화 된 듯하다.

멀리는 DJ 정권 시절, 무엇이 그리도 아쉬웠던지 4억5천만 달러라는 거액을 국민 몰래 밀송해 주고는 평양까지 찾아가서 햇볕정책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경제지원을 약속하고서도 하다못해 단 한 명의 우리 국군포로나 강제 납북된 국민의 귀환 요구도 못한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나이 80의 老 대통령이 새파란 적장 앞에서 무엇이 두려워 그토록 작아진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해야 할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었는가?

또 전임 대통령의 뒤를 따라 평양을 찾아갔던 노무현 대통령의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을 보면 포복절도할 아부성 발언이 수두룩하지만 그중에서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북핵 문제였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도 북측의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이쯤 되면 그가 북한을 주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인지 김정일의 충견이거나 대변인인지 헷갈린다. 그뿐만 아니었다.

마치 변방국 군왕이 수하를 거느리고 종주국 황제를 배알하듯 일렬로 줄지어 서서 오만하기 짝이 없는 뚱땡이 김정일이 지나가면서 악수를 청할 때마다 마치 황송한 듯 두 손으로 상대의 손을 잡고 허리를 90도로 꺾고 몇 번씩이나 고개를 조아리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토악질이 난다. 그나마 다소의 위안이 됐던 것은 김장수 국방장관이 꼿꼿이 서서 한 손으로 악수만 한 것 정도였다.

이토록 친북성향의 대통령들뿐만 아니라 그 수행원은 물론이고 회담 당국자들도 마찬가지다. 남북한을 대표하는 당국자들의 회담에서도 거의가 회담의 주동자는 예외 없이 북측이었고 회담의 성패 역시 북한의 의도가 먹혀드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었으니 이를 어찌 설명해야 하나?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저들 앞에만 서면 그토록 작아지고 양순한 양이 되는가? 대통령의 의지가 그러하니 덩달아서 눈치를 보느라고 국가를 대표한 책임은 뒷전인가? 당신들이 그토록 적군 앞에서 기를 못 쓰고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을 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비참한 생각을 한 번쯤 헤아려 봤는가?

이번의 남북 고위급회담도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코자 우리 정부의 제의로 성사됐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회담 첫날 우리측 수석대표가 비핵화 문제에 관련된 말을 꺼내자말자 북측 수석대표가 험상궂은 얼굴 모습으로 회담을 끝내자고 일갈하자 우리측 수석대표는 뭐가 그리 잘못인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없던 일로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이번 고위급회담 결과도 역시 주는 것만 듬뿍 안겨주고 받는 것은 별무신통하리라는 예상이 맞을 것만 같다.

뜯기기만 하면서도 수모나 당하는 이러한 남북대화가 과연 필요하기나 한가? 아니 애시당초부터 북핵 문제 해결은 핑계일 뿐이고 의기가 상통한 남북 당국자들끼리 해결해야 할 모종의 속내가 있는지 그것이 오히려 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