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이 점점 좌파의 정치 무기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갑자기 자유한국당 여상규 의원이 실시간 검색어에 떴길래 무슨 일인가 해서 봤는데, 여 의원이 1980년 판사 시절 석모 씨라는 피고인에게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일이 간첩조작판결 사건이라며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방송을 내보냈던 모양이었다. 해당 방송 프로그램 기자가 여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1심 판결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렸는데 죄책감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여 의원이 “웃기고 앉아있네” 하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이 비난을 퍼붓고 있다.

전화를 걸어 질문을 한 기자의 태도가 상당히 무례하다. 사실관계만 물어볼 일이지, 왜 다른 사람에게 마치 반성을 요구하는 듯한 질문을 하는가. 일개 방송사 기자가 무슨 권리로 국회의원에게 그런 추궁을 하는가. 여 의원의 반응은 보기에 따라서는 속이 시원한 잘한 반응이었다.

석모 씨란 사람의 사연이 정확히 어땠는지는 그 방송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만, 1심 판결만 받고 그때 바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것이 아닐 것이다. 여상규 의원은 1심 재판을 맡았을 뿐이고, 이후 다른 재판부가 담당하는 고등법원, 대법원 심리도 있었을 것이다. 그 상소심에서도 유죄를 뒤집지 못했기에 석모 씨는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던 것일 터다. 그리고 그 판결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도 뒤집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재심이 결정되어 무죄판결이 내려진 게 2009년인데, 당시 대법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었다. 이 대법원장의 재임 기간에 과거 정부 시절 유죄판결을 받았던 공안사범 상당수가 재심에 부쳐저 무죄로 바뀌었다. 재심으로 무죄를 받아낸 당사자들은 국가에 배상을 청구해 엄청난 액수의 돈을 받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재심은 박근혜 정부 초기까지 계속 이어져 마치 과거 우파정권 집권 시절은 사법정의가 훼손된 시기였던 것처럼 국민들에게 비쳐지게 하였다.

여상규 의원이 판사시절 내린 판결이 조작사건의 결과라면, 과연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 내려진 이 재심은 무조건 옳은 것인가. 사건이 발생한 지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과 검사들은 대거 공직에서 물러난 뒤였고, 재심 때 법정에 앉은 검사들은 당시 사건을 다루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세월이 흐르면 증거나 증언도 희석되기 마련이다. 석씨가 그 전에도 여러차례 재심을 청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석모 씨가 정말 억울했다면 왜 29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재심이 받아들여진 것인지 의문이다. 칼자루 쥔 쪽이 과거 있었던 일을 자기들 맘대로 재단하는 것이 정녕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일일까.

좌우지간 여상규 의원에게만 비난을 퍼붓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일이다. 2·3심을 맡은 합의부원과 대법관들도 모두 유죄로 판단한 것인데 1심을 맡았던 여 의원만 탓하는 것은 그가 자유한국당 소속 정치인인 탓이 클 것이다. 지상파 방송이 점점 좌파의 정치무기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다.